한국문화사 제5장 개항기 외국 여행가들이 본 조선, 조선인3. 오리엔탈리즘과 왜곡된 조선 인식

찬란한 과거 속에 문명 퇴화하는 현재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인이 위대하였던 시기는 ‘과거’였다. 동양인은 정지 상태를 집요하게 고집하여 필연적으로 쇠퇴하였고, 현재의 문명 퇴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명국의 지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 다.406) 이러한 논리는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조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을 때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후진적인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미술품, 건축물 등 문화유산을 접하고, 유럽의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한민족이 이미 그것을 사용한 것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의 문자를 발명하였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면서 조선을 ‘찬란한 과거’를 가진 나라로 인식하게 되었다.407)

<거북비와 대리석탑>   
1903년에 조선을 방문한 에밀 부르다레가 지은 『한국에서』에 실려 있는 사진이다. 현재 탑골 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를 촬영한 것이다. 두 기념물을 통해 오랜 왕국의 비장한 말년을 담은 듯한 느낌을 준다. 부르다레는 “조선의 찬란한 과거를 알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고 기술하였다.

1903년에 조선을 방문하여 80여 차례 내륙을 여행한 경력이 있는 프랑스인 에밀 부르다레(Emile Bourdaret)는 그의 저서 『한국에서(En Corée)』에서, 조선의 ‘찬란한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고 하면서, 이는 조선이라는 작은 왕국이 외부에 알려질 가치가 충분함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408) 커즌은 “조선이 과거 일본에 문명, 과학, 종교, 예술 등을 전수해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신은 이 모든 것의 흔적을 상실하였다.”고 하여 과거와 현재를 대비 설명함으로써 현재의 ‘문명 퇴화’ 상태를 강조하였다. 그에게 조선의 현재는 “문명화된 사회로 진입하고는 있으나, 오랜 휴면으로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의아스러운 서양 문명의 빛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태”였다.409)

한편 ‘찬란한 과거’는 ‘문명 퇴화’된 현재를 조롱하는 소재이기도 하였다. 즉, 흰옷을 입는 이유가 이 민족이 누리던 ‘과거의 영광을 애도’하기 위해서라거나,410) 현재 그 선조인 고구려의 정열과 힘을 전적으로 상실한 듯하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의미하는 국호가 조선인에게 어울린다고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411)

[필자] 홍준화
406)에드워드 사이드, 앞의 책, 68쪽.
407)박지향, 앞의 책, 173∼176쪽.
408)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앞의 책, 175쪽. 에밀 부르다레의 조선에 대한 여행기 『한국에서(En Corée)』는 1904년 출판되었다.
409)조지 커즌, 앞의 책, 44쪽.
410)박지향, 앞의 책, 178쪽.
411)새비지-랜더, 앞의 책,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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