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5장 개항기 외국 여행가들이 본 조선, 조선인3. 오리엔탈리즘과 왜곡된 조선 인식

게으름과 가난, 그리고 과중한 수탈

조선인의 게으름, 무기력함, 무감각, 가난 등은 여행기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용어였다. 겐테는 조선인의 ‘게으름’을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아무리 가난한 거리라도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줄 알았다. 우리처럼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서양의 미개인들은 돈의 개념으로 시간을 환산하고 시간에 인색해하며, 마치 삶이 시간에 의해 길어지며 풍요로워지는 듯 여긴다. 시간에 관한 한 모든 조선인은 풍요로울 뿐 아니라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째지게 부자라는 것이다.”421)

일본인들의 여행기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조선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 도 바로 게으름과 무기력함이었다.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조선인을 ‘참으로 게으른 인민’이라고 하면서, 낮의 3분의 2는 낮잠을 자든가 담배를 피우면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언급하고 있다.422) 특히 석 자나 되는 긴 담뱃대를 항시 물고 있는 조선인의 모습은 게으름의 상징처럼 보였다. 겐테는 이 긴 담뱃대를 문화적 장애 요소로 지목하였는데, 때로는 그 길이가 너무 길어서 물부리를 입에 대고 있으면 팔이 긴 긴팔원숭이조차 대통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조선인이 담뱃대와 그 길이를 고집하는 한 결코 서양처럼 일을 할 수 없으며,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의 의미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하였다.423)

<흩어져 돌아가는 신포 마을 촌장들>   
『그래픽』 1886년 10월 30일자에 ‘흩어져 돌아가는 신포 마을 촌장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삽화이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에 그린 그림이다. 양손에 부채와 지팡이를 들고 입에는 담뱃대를 문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조선 남성이 긴 담뱃대를 늘 물고 있는 모습은 외국인 여행가들에게 나태함과 게으름의 상징으로 보였다.

『고쿠민신문(國民新聞)』 기자 마쓰바라 이와고로(松原岩五郞)는 자신의 여행기 『정진여록(征塵與錄)』(1896)에서 조선인의 ‘게으름’을 주제로 다음과 같이 악담에 가까운 서술을 하였다.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조선인, 전 세계 중에서 놀고먹기를 좋아하기로 한인을 따라올 자 없다. 그들은 평소 혼자 있을 때는 잠만 잔다. 두 명이 모이면 농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 명이 모이면 필시 오락을 시작한다. …… 대개 한인의 일반적인 습관은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다는 식이다. 생활하면서도 저축할 생각이 없고, 분발하여 자신의 지위와 처지를 개선하려는 관념은 더더욱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죽는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424)

그런데 이러한 조선 백성의 ‘게으름’이 천성이 아니라 위정자의 과중한 수탈로 인한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죽도록 일해서 돈 벌어 봤자 뭐 합니까?”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425) 관리들의 과중한 수탈이 조선 백성들로 하여금 노동과 축적 의욕을 저하시키고, 나태와 가난을 초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먹여 살리고 옷을 입힐 정도로만 생산하는 데 만족”하거나,426) “차라리 백성들이 빈둥거리며 노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427)

비숍은 이러한 상황 때문에 중산층이 성장할 토대(土臺)가 마련될 수 없었고, 따라서 조선 사회는 단지 두 계급, 즉 약탈자와 피약탈자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 계급과 인구의 나머지 5분의 4를 차지하는 문자 그대로 ‘하층민’인 평민 계급이 그것이라는 것이다.428) 특히 그녀는 시베리아로 이주한 한인 농민들의 활기 있고 열정적인 모습과 비교하며, 조선 백성들이 오로지 과세(課稅)를 위한 지배가 아니라 산업의 발전을 위한 지배 아래에 있었다면 이와 같은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분석하였다.429) 과중한 수탈 체제에 대한 이러한 비숍의 언급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하나의 근거로서 조선과 관련된 외국의 많은 기록물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되었다.430)

[필자] 홍준화
421)지크프리트 겐테, 앞의 책, 103쪽.
422)박양신, 앞의 글, 124∼125쪽.
423)지크프리트 겐테, 앞의 책, 210쪽.
424)박양신, 앞의 글, 125쪽.
425)새비지-랜더, 앞의 책, 150쪽. 새비지-랜더가 직접 만나서 들은 것은 조선인이 한탄하는 목소리였다.
426)비숍, 앞의 책, 101쪽.
427)조르주 뒤크로, 앞의 책, 119쪽.
428)비숍, 앞의 책, 511∼512쪽. 비숍의 이 언급은 잭 런던 등 이후 조선과 관련된 글을 쓰는 여행가들, 혹은 기자, 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인용문이 되었다. 잭 런던, 윤미기 옮김, 『조선 사람 엿보기』, 한울, 1995, 55쪽 ; 이지은, 앞의 책, 279∼280쪽 참조.
429)비숍, 앞의 책, 381쪽.
430)이지은, 앞의 책, 263∼28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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