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4 전환기의 삶과 음악03. 식민지 근대의 대중문화

대중스타로서의 기생

유성기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스타나 가수들을 탄생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기생들이 유성기 음반을 취입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는 기사나 경성지점의 레코드 회사에서 취입한다는 기생 명단과 사진이 실리는 등 당시 기생들이 신문물의 상징인 음반을 취입한 사례는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화될 만큼 문화적인 뉴스거리였다. 또한, 기생들은 당시 유명한 명창들이었다.

대중문화가 한참 절정에 다른 1930년대는 인기가수 투표도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신민요와 유행가를 히트시킨 몇몇의 기생 가수들은 레코드 가수로서 대중잡지 『삼천리』에서 매달 시행된 인기가수 투표에서 5위 안에 드는 활약상을 보였는데, 왕수복, 선우일선, 박부용, 김복희, 모란봉, 이화자 등이 그들이었다.

<권번 산하의 평양기생학교 학생들>   
<유성기에 소리 넣은 기생>   
당시 모 일간지에 ‘유성긔에 소리 너흔 기생’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사진 속 기생들은 김산월, 도월색, 리계월, 백모란, 길진홍 등 당대의 유명한 명칭들이다.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에 대한 광고>   
『삼천리』 7권 1호, 1935년 1월
<레코드가수 인기 투표 결과>   
『삼천리』 7권 2호, 1935년 2월, p.315

이렇듯 기생은 음반 및 각종 무대를 중심으로 여성 창자내지 여성가수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기생에 대한 문화적 평가는 두 가지의 이중적 면모가 혼재되어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기생을 윤락녀와 동일하게 보는 일제의 공창제도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생들은 문화 예술사에서 여성 음악가로서 또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로서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식민 지배속에 ‘제국=남성’ 중심의 시선 속에 ‘식민지 조선=기생’은 타자화(他者化)된 대상으로 동일시되며 성적 욕망과 소비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기생들 스스로도 한편으로는 억압된 전통사회에서 여성 민중들의 사회 참여가 어려웠던 시절에 봉건적 관습과 억압의 고리를 끊으려는 여성 해방의 기수로서 자각하는 모습을 보였다.223)

<1939년 일본 잡지 『모던일본』 조선판의 표지>   
조선의 기생으로 식민지 조선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일본인의 시선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울러 기생들은 사교댄스, 요리집, 유행가 등 새로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최첨단의 소비 주체로서, 혹은 일본의 비행기 헌납을 위한 기금 마련 공연 등의 일제 식민지 통치에 능동적으로 동원되면서 ‘총후부인’을224) 모방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왜곡된 형태로 나마 사회적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등 다양한 색깔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기생은 사회의 주변인로서, 식민지 문화의 타자화된 장식물로서 예술을 통해 주체의 객관화를 실현하는 근대적인 자아라고 하는 이중적이며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는 단지 기생 고유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대적 자의식을 갖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모습에 끊임 없이 대중문화 속에 강제된 욕망을 소비함으로써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내적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모던 걸’의 분열적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 이소영
223) 기생명 花中仙의 「기생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시사평론』1923년 3월호에는 “개성을 전적으로 살리는 점으로 보아 육을 팔더라도 심을 파는 신사들보다 제가 훨씬 사람다운 살림을 산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결론이 맺어진다. 당시 ‘신사’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비판과 타자화된 기생이 자기를 상품으로 소유하는 남성을 오히려 조롱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전복을 꿈꾸는,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인 선언이 잘 나타나 있다.
224) 일제 전시동원체제하에서 전방을 남성이 맡는다면 여성은 후방을 담당한다는 것으로, 원래 총후부인은 전시체제하에 여성에게 사회적 역할을 배분한다는 미명하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기생들의 비행기 헌납 운동을 위한 자선모금 음악회 등은 다양한 기금 마련으로 전시체제에 동원되고 협력한 총후부인들의 일련의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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