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1 고대의 문자생활과 서체

03. 통일신라·발해의 문자생활과 서체

[필자] 손환일

통일신라는 당의 불교문화와 중앙관제, 복식 등 많은 문화를 수용하였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불교문화의 대중화는 사경문화와 함께 서사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 발달된 서사문화는 금석문의 발달과 함께 문자생활의 질을 높여주었다. 왕희지·우세남·구양순·저수량·안진경 등의 서체가 우리나라에 전해져 서법에 혁신을 가져왔다.

통일신라의 명필로는 한눌유(韓訥儒), 김생(金生, 711∼?), 김육진(金陸珍), 영업(靈業), 김원(金薳), 김언경(金彦卿), 혜강(慧江), 요극일(姚克一), 김임보(金林甫), 김일(金一), 최치원(崔致遠, 857∼?) 등이 있다. 이들은 당에서 유행하던 왕희지나 구양순의 필법을 수용하여 유행시켰다. 그 중에서도 신라의 김생은 왕희지체를 배워 일가를 이루었고, 최치원은 구양순·유공권의 필법을 따랐다.

이 시기부터 당(唐) 회인(懷仁)이 왕희지의 글자를 집자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672)를 모방하여 집자비를 만들었다. 특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명필의 글씨를 자본으로 집자하였는데 시대별·개인별로 그 취향이 다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왕희지의 글씨 를 집자한 <경주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慶州鍪藏寺阿彌陀佛造像事蹟碑)>(801)·<선림원지 홍각선사비(禪林院址弘覺禪師碑)>[886, 김원(金薳)·운철(雲徹)·최경(崔瓊)전액·혜강(慧江)] 등이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는 왕희지체를 주축으로 해동 신필로 일컫는 김생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태자사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郞空大師白月栖雲塔碑)>를 비롯하여 몇 본의 집자비와 글씨가 전해진다.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677) 탁본>   

서사문화와 관련해서는 사경문화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경으로는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이 있다. 사경은 삼보의 하나로 숭배의 대상이 되므로 모두 단정한 해서로 썼다. 사경문화는 금석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구례 화엄사의 <화엄석경>이 대표적이다. 판본으로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발해는 알려진 바 적지만 <광개토왕릉비>의 예서로 쓰여진 압인와(押印瓦)가 많이 남아 있고, <정혜공주묘비>와 <정효공주묘비>는 구양순체를 구사하였으며, <함화4년명 불상(咸和4年銘佛像)>은 고구려에서 유행한 북조의 필법이다. 그리고 대간지(大簡之)는 송석(松石)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이러한 절지법은 글씨에도 응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손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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