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01.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조선 후기 서예 동향2. 18세기 서예 동향

석비와 두전의 변화

[석비와 두전의 변화]50)

18세기의 조선 후기 석비와 두전은 제액식 두전·두전·전면표제양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액식 두전은 드물며, 대표적으로 <송시열 수명유허비(宋時烈受命遺墟碑)>(1731, 민진원 전) 등이 있다.

두전은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대전·소전·예서·해서로 썼다. 대전으로 쓴 두전으로 <척주 동해비>(1709, 허목 전)·<통도사 사리탑비>(1706, 권규 전)·<선암사 중수비>(1707, 권규 전)·<정역 신도비>(1708, 정중만 전) 등이 있으며, 대부분 미수전 혹은 그 서법으로 썼다.

<<척주 동해비>, 삼척>   
<<정철 신도비>, 진천>   
<<유홍 신도비>, 하남>   

소전으로 쓴 두전은 진전(秦篆)인 소전과 당전(唐篆)인 이양빙 전서를 많이 썼다. 진전으로 쓴 것으로 <박동선 신도비>(1706, 최석정 전>·<정철 신도비>(1717, 김수증 전)·<김국광 신도비> (1726, 김진상 전)·<조여 신도비>(1726, 민진원 전) 등이 있다. 이양빙 전서로 쓴 것으로는 <숙종 명릉비>(1720)·<김국광 신도비>(1726, 금진상 전)·<이경류 묘갈>(1728, 금진상 전)·<김인후 신도비>(1742, 김진상 전)·<이주국 신도비>(1800, 유한지 전) 등으로 가장 많다.

예서로 쓴 두전 중에 당나라 예서풍으로 쓴 것으로 <용암서원 묘정비>(1752, 오철상 서) 등이 있다. 한나라 예서풍으로 쓴 것으로 <이협 묘갈>(1750)·<이경석 묘표>(1751)·<유홍 신도비>·<김무택 신도비> 등이 있으며 17세기 보다 증가하였다. 해서로 쓴 두전은 <체화당 사적비>(1719)·<홍차기 효자비>(1795, 이가환 서) 등으로 많지 않다.

전면표제양식은 주로 전서, 예서, 해서가 사용되었다. 전서는 주로 왕과 왕족들의 석비에 쓰였으며 소전을 주로 썼고, 예서는 한나라 예서를 주로 썼으며 매우 적다. 해서로 쓴 것이 비교적 많으며 일부 해서를 집자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필자] 이성배
50) 손환일, 앞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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