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02. 조선시대의 주요 서예가조선 후기 주요 서예가

22.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김정희는 자가 원춘(元春)이고, 호가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노과(老果) 등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24세 때 자제군관으로 부친 김노경을 따라 연경(燕京)으로 가서 당대의 거유(巨儒)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섭지선(葉志詵) 등을 만나 경학·금석학·서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수준 높은 경학과 실사구시의 고증학, 금석학 외에 불학(佛學) 등 폭넓은 학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의 시·서·화를 완성시켰다. 그는 두 차례의 유배를 거치면서 독특한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특히, 금석고증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함흥의 황초령(黃草嶺)에 있는 신라비와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고증하여 밝혀냈다. 문집으로 『완당집(阮堂集)』이 있고, 저서로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완당척독(阮堂尺牘)』 등이 있다.

<김정희 예서 <호고연경(好古硏經)> 대련>   
<김정희 예서 <화법서세>>   

그는 예서·해서·행서·초서에 모두 뛰어났으며 그 중에 예서가 가장 절묘하다. <호고연경>의 “호고유시수단갈 연경루일파음시(好古有時搜斷碣 硏經婁日罷吟詩)”는 금석학을 중시하고 경학과 시문을 바탕으로 성립한 그의 서예정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추사는 예서를 매우 좋아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는데 동한의 팔분예(八分隷)의 바탕이 되는 서한의 고예(古隷)를 중시하였다. 그는 서한의 와당과 동경, 전명 등을 통해 고예를 익혔으며, 이를 통해 매우 독특한 결구(結構)와 선질(線質)을 구사할 수 있 었다.

<김정희 해서 <묵소거사자찬(黙笑居士自讚)>>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강조한 그의 서예정신은 예서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화법서세>의 “화법유장강만리 서세여고송일지(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는 그의 서화관을 표현한 것으로 졸박하면서 웅장한 필세를 바탕으로 절묘한 조화미를 이루어 예서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다. 이처럼 그는 학예일치(學藝一致)를 바탕으로 하는 수많은 창의적인 서화작품을 남겨, 전통 서예를 집대성하였으며 후대에 동아시아 제일의 서예라는 평을 들었다.

[필자] 이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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