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3 정신세계의 통합공간 불교건축05. 산간에 들어서는 비보사찰

항마설화와 비보사찰

<부석사 선묘각>   
안에 선묘의 초상이 있다.

통일신라 때 지은 산지가람의 창건연기는 개산조의 영험한 신통력으로 반대세력을 항복시키는 항마설화(降魔說話)가 많다. 마치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할 때 욕계 제 6천왕이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난폭하게 위압하고 괴롭게 굴었지만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창건연기에서 반대세력은 주로 독룡이나 개구리, 또는 권종이부로 표현된다. 신라에 대항하는 반란세력이나 동남해안의 침탈을 일삼던 왜구, 또는 불교를 신봉하지 않는 집단을 지칭했던 것 같다. 어느 경우든 그 무렵의 절박했던 사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의상이나 자장이 개산조였던 사찰들에서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송고승전』 의상전에는 의상이 화엄사상을 펼치기 위해 부석사를 창건할 때 선묘라는 여인이 용과 부석으로 두 번이나 화신해서 그를 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첫 번째는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중국에서 신라로 오는 의상의 뱃길이 무사하도록 도왔고, 두 번째는 부석으로 화신하여 원래 그곳의 소승에 집착하는 5백의 사교 무리를 쫓아낸다. 선묘의 화신은 분열된 세계의 통합과 불완전한 지기의 보허를 위한 일종의 비보적 행위였던 셈이다.

<자장이 연못을 메우고 쌓았다는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부산 범어사 3층석탑>   
사찰 창건 때의 유일한 흔적이다.

범어사의 창건연기에는 왜구의 침탈이 보다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범어사창건사적』에는 왜인 10만이 병선을 거느리고 침공하려 하자 흥덕왕이 의상으로 하여금 사찰을 짓고 화엄 법력으로 격퇴시키게 했다고 기록된다. 그곳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금빛 우물(金井)이 있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梵魚)가 노닌다 해서 금정산이라 하고, 범어사라 지었다. 금강산이나 오대산 이름을 따온 것과 같은 식이다. 왕과 의상이 7일 7야(夜) 동안 화엄신중을 독송하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모든 불상과 천왕·신중·문수·보현상 등이 병기를 들고서 왜구를 물리쳤다고 했다. 그래서 불전에 모신 미륵석상이나 좌우보처·비로자나불상·사천왕·문수·보현보살상·향화동자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병기를 든 모습으로 만들고, 승려들은 화엄신의를 공부하면서 왜구를 진압했다고 썼다. 이제 비보사찰이 단순히 허한 지기를 보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구를 막는 실질적인 병영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짐작케 한다.

<통도사 대웅전 앞의 연못>   
일명 ‘구룡지’라 한다. 자장이 법력으로 구독룡을 항복시켜서 이 연못 속에 살게 했다고 전해진다.

통도사의 창건연기는 한층 흥미롭다. 643년(선덕왕 15) 자장이 종남산 운제사에서 기도할 때 문수보살이 현현하여 부처의 가사와 진신사리 등을 주면서 신라로 돌아가 계단(戒壇)을 쌓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곳에 독룡이 독해를 품어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기 때문이었다. 귀국 후 자장은 사찰터를 찾아 은거하던 암자에서 쌀을 씻을 때 공양수를 흐리면서 훼방하는 개구리에 이어 독룡들을 감화시키고는 금강계단을 쌓게 된다. 이를 통해서 개구리와 독룡은 각기 금와보살과 천룡이 되어 사찰을 호위한다. 선종이 전파되기 전 전국 산간에 비보사찰들이 세워지게 된 배경을 잘 말해 준다.

[필자] 서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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