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한국사의 주인공인 한민족이 과연 어떤 기원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가 하는 민족 계통론에 대해서는 종래 역사학을 비롯하여 고고학, 민속학, 형질인류학, 국어학 등 인접 학문분야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만족할 만한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 주지하듯이 민족이란 역사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깊은 자각에 의해서 뭉쳐진 하나의 문화적 개념인데, 이 같은 민족의식은 대개 근대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하여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 시기에는 흔히 인종 혹은 종족과 같은 개념을 쓰고 있는데, 이는 신체의 유전적 특성에 기초한 다분히 생물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민족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여러 종족, 민족(ethnos)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인류의 생존양식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이와 동시에 생존양식의 법칙성 내지 규칙성을 발견한다거나 혹은 그 생활 양식들의 역사적·계보적 관계를 추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편 민속학은 기록되지 않은 근대 이전 전통사회의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구조, 신앙과 의례, 각종 기술 등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 민속학 발달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학과 민속학 양자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여 그 차이를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민족학에서는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문화라고 하고, 문화를 공유하면서 ‘우리’ 의식으로 뭉쳐 있는 인간집단을 민족이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인은 한민족과 同義語로 사용될 만큼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단일민족이다. 한국사에서 한국문화 내지 한민족의 출발점을 어느 때로부터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겠으나, 일단 신석기시대를 한국문화의 원점, 청동기시대를 한민족 및 한국문화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민족의식은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보여지며,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에 따라 국토가 한반도로 고정된 뒤로부터 사회의 급속한 동질화 현상이 진행되어 단일 민족의식이 대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보여진다. 그 뒤 고려 초에 歸附해 온 발해 유민을 흡수 통합하고 아울러 같은 시기에 정력적으로 추진된 북방 개척에 따라 고려에 편입된 국경지대의 女眞人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써 한민족 형성의 최종적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민족의 기원 내지 계통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은 形質인류학적 방법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경우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초기의 人骨자료를 갖고 비교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한국의 토양은 산성을 띠고 있는 지역이 많은 까닭으로 해서 그 遺存 상황이 매우 不良하여 한국인의 형질을 계기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인의 신체적 특징을 여로 모로 計測한 수치를 주로 이용하고 있으나, 역시 유효한 것은 혈액형 유전자에 의한 비교 검토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에는 A·B·O式 혈액형 분류에 따른 수치를 갖고 한민족의 유전형질상의 특징을 다른 민족의 그것과 대비하여 상호간의 친연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쳤으나, 최근에는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말미암아 가령 혈청 속의 抗體분자인 免疫 글로불린-감마(Gm)에 관한 유전 표지의 유전자 빈도라든지 ‘사람 백혈구 抗原(HLA)’에 관한 유전자 빈도, 혹은 미토콘드리아 DNA(mt DNA) 단편의 자료 분석에 의한 비교 검토 등 집단유전학 부문의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연구는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며, 한국인이 일본인과 더불어 북방계 몽골인종집단으로 분류되지만 한편 남태평양 집단의 유전자도 일부 이어받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외에 한민족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추구하는 데 직접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질인류학의 방법을 제외한다면 현재 한민족의 계통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학문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언어에 의한 연구이다. 이는 언어의 구분은 대체로 민족의 구별과 일치한다는 命題에서 출발하여 한국어의 특징을 주변 여러 민족의 언어와 비교한다. 실제로 오늘날 집단유전학자들도 언어와 유전자 사이에는 의미있는 유사점들이 많이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의 고대 문헌에 보이는 山東방면, 만주(중국 동북지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지만, 편의상 만주라는 호칭을 사용함) 그리고 한반도에 거주한 여러 종족의 이동 내지 이합집산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한국의 선사시대 및 고대의 문화적인 특징을 고고학과 민족학적 입장에서 동북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남태평양 각지의 그것과 비교 검토하여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본서에는 중국문헌과 고고학적 자료에 입각하여 한민족의 계통을 다룬 글이 실릴 예정이다. 또한 한국어의 특징과 그 계통에 대한 專論이 역시 수록될 예정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민족학분야에 국한하여 그간 역사학계와 민속학계에 축적되어 온 한민족·한국문화의 기원과 계통에 관련되는 여러 연구성과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즉 종래의 연구사를 개관한 다음 특히≪三國志≫魏書 東夷傳의 민속 관련 기사들을 주로 문화계통의 측면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