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후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는 좁고 긴 돌날이 등장함으로써 시작되는 시기이다.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략 3만년 내지 5만년 전에서부터 약 1만년 전의 빙하가 끝날 무렵까지의 시기에 나타난다. 돌날은 흔히 쐐기를 대고 때리는 간접타격이나 가슴눌러떼기의 기법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가공에도 눌러떼기의 기법이 대단히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돌날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소형석기들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석기로는 끝긁개와 손잡이가공칼 등의 석기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彫刻刀라는 특이한 석기가 발달하게 되는데 이는 골각기제작을 위한 도구로 알려져 있다. 골각기가 대단히 증가하게 되는데 특히 16,000년 전에서 시작된 프랑스의 Magdalenian문화에서는 작살 등의 풍부하고 다양한 골각기가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는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북쪽의 추운 지역에서는 대형동물의 사냥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동부시베리아에서는 이 대형동물을 좇아서 베링해를 건너 신대륙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 시기에는 사냥과 채집생활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사회조직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술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장신구·조각품이나 동굴벽화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후기 구석기문화는 약 1만년 전에 나타나는 細石刃으로 대표되는 중석기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한반도의 후기 구석기문화에서는 석인기법이 출현하고 또한 소형석기의 가공이 눈에 띄게 정교해지며 석재는 입자가 고르고 치밀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석장리·만달리·굴포리·수양개·상무룡리·창내 등의 유적에서 후기 구석기공작이 발견되었는데 밀도가 고른 석재들을 사용하고 2차가공이 분명하게 남아 있고 일부 석기들은 가압법으로 다듬어 석기가 앞선 시대에 비하여 훨씬 정교하다. 만달리·석장리·상무룡리 등의 유적에서 흑요석이 채집되었는데 흑요석은 이 유적들 주위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어서 백두산 등의 화산암지대로부터 상당히 원거리를 운반하여 온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석기들을 보면 석인의 끝을 가공한 이른바 밀개라는 것이 특징적이며 석인을 제작하기 위한 쐐기형 또는 배모양의 석핵이 보인다. 수양개유적에서는 자루가 달린 화살촉 또는 창촉 같은 것들이 다량 발견되었다. 일부 석기들은 가압법으로 가공되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만달리의 석기는 모두 13점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9점이 흑요석이다.022) 간접타격법과 가압법에 의해 가공되었고 쐐기형의 석핵이 포함되어 있는데 석인기법의 연구의 좋은 자료이다. 상부 홍적세 말기 또는 충적세 초기의 중석기문화로 보고 있으며 골기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 보고자는 이 유적을 약 2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굴포리의 상층문화도 후기 구석기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 유적에서는 뚜렷한 석인기법은 보이지 않으나 석기의 모양새가 가압법에 의해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여 후기로 분류되고 있다. 북한지역에서는 용곡동의 상층문화도 후기 구석기로 분류되고 있다.
수양개유적은 석장리와 함께 남한지방의 최대의 후기 구석기유적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문화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舟形석기, 즉 배모양의 밀개는 석인석핵의 한 종류인데 발굴자는 이러한 전통이 북중국지방의 석인석기전통과 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면가공의 주먹도끼와 함께 Aurignacien기법의 밀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유적 역시 연대가 분명하지 않아서 앞으로의 과제인데 발견된 단구의 연대를 추정하여 석기공작의 연대를 밝히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지만, 이 유적에서 출토된 有頸式석기나 배모양의 밀개 등으로 미루어 연대가 후기 구석기의 후반에 속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상무룡리에서도 흑요석을 포함한 후기 구석기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의 연대를 약 5만년 전에서 1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023)
석장리의 상부 3개 문화층이 후기 구석기로 구분되었다. 아직도 불확실한 점이 많지만 이 문화층은 새기개와 밀개들이 특징적이며, 이 문화층과 연관된 유구로 주거지유구가 보고되었는데 이 유구내에서 많은 석기들이 채집되었으며 배모양의 밀개라고 하는 석인석핵류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후기 구석기층 중에서 오래된 것으로 판단된 제10문화층에서는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 30,690±3,000년 전의 연대가 그리고 집자리유적에서는 20,830±1,880년 전의 연대가 나온 바 있다. 그래서 적어도 후기 구석기의 연대적인 범위는 밝혀진 셈이다. 이러한 유적들 이외에도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한다고 보는 석기공작으로 금굴의 상층·창내유적·대전리유적, 금평유적 등이 있다. 이러한 유적들도 정확한 연대는 없으나 석기의 형태나 지형적인 위치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한반도 후기 구석기공작의 출현시기와 그 발달과정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불충분한 상태이다. 이 석기공작이 전기·중기의 원시적인 특성을 가진 석기공작들과 어떠한 연속적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고찰과 함께 고인류의 확산과정을 고려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당면한 또 다른 과제의 하나는 후기 구석기의 석인석기공작과 세석인석기공작과의 관계이다. 그 변화에 시기와 기원에 대한 검토가 후기 구석기 후반의 문화적 양상과 중석기의 시작을 이해하는데 관건이 될 것이다.
<裵基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