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Ⅱ. 백제의 변천1. 한성시대 후기의 정치적 변화1) 한강유역의 상실(1) 왕위계승 분쟁과 왕권의 쇠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1. 백제의 기원
          • 1) 백제 초기사를 보는 시각
          • 2) 건국설화
          • 3) 건국집단의 기원과 주민구성
            • (1) 건국집단의 기원
            • (2) 주민구성
        • 2. 백제의 성립과 발전
          • 1) 백제국과 목지국
          • 2) 백제국 성장의 배경
          • 3) 백제국의 성장
          • 4) 정복전쟁과 마한통합
      • Ⅱ. 백제의 변천
        • 1. 한성시대 후기의 정치적 변화
          • 1) 한강유역의 상실
            • (1) 왕위계승 분쟁과 왕권의 쇠퇴
            • (2) 개로왕대의 왕권강화 시도와 파탄
          • 2) 백제와 신라의 동맹
        • 2. 웅진천도와 중흥
          • 1) 동성왕의 활동
            • (1)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 (2) 웅진시대의 정치적 변화상
            • (3) 동성왕의 왕권강화책과 신진세력의 등장
          • 2) 무령왕의 활동
            • (1) 무령왕의 출자와 즉위과정
            • (2) 무령왕의 왕권안정을 위한 시책
        • 3. 사비천도와 지배체제의 재편
          • 1) 성왕의 사비천도
          • 2) 정치체제의 개편
            • (1) 5방제의 실시
            • (2) 22부사의 설치
        • 4. 지배세력의 분열과 왕권의 약화
          • 1) 집권체제의 모순
          • 2) 귀족세력의 분열
          • 3) 대외관계의 변화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1. 중국왕조와의 관계
          • 1) 대중관계의 시작
          • 2) 대중관계의 전개
            • (1) 한성시대
            • (2) 웅진시대
            • (3) 사비시대
            • (4) 멸망 이후
          • 3) 대중관계의 성격
        • 2. 백제의 요서영유(설)
          • 1) 요서영유설에 대한 여러 견해
          • 2) 요서영유 기사의 분석
          • 3) 남북조의 백제·고구려관
          • 4) 낙랑·대방의 요서이동과≪송서≫·≪남제서≫
            • (1) 낙랑군과 대방군
            • (2) 낙랑·대방의 요서이동과≪송서≫·≪남제서≫
        • 3. 왜와의 관계
          • 1) 대왜관계의 시작
          • 2) 대왜관계의 전개
          • 3) 대왜관계의 성격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제
          • 2) 행정조직
          • 3) 왕도조직
          • 4) 귀족회의체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1) 담로제
            • (2) 방·군-성(현)제
            • (3) 촌락사회의 편제
          • 2) 군사제도
            • (1) 군사제도의 정비
            • (2) 군사권의 행사와 위임
            • (3) 군사조직과 병력의 충원
          • 3) 성곽시설
        • 3. 경제구조
          • 1) 토지제도
            • (1) 지배층의 토지지배 유형과 성격
            • (2) 농민의 토지소유
          • 2) 조세제도
            • (1) 세제의 내용
          • 3) 산업
            • (1) 농업생산력의 발전
            • (2) 수공업의 발달
        • 4. 사회 구조
          • 1) 신분제
            • (1) 왕족·왕비족
            • (2) 귀족·관료
            • (3) 민
            • (4) 노비
          • 2) 법률과 풍속
            • (1) 법률
            • (2) 풍속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왕비족의 교체와 상좌평제의 설치

 아신왕이 죽자 왜에 인질로 체류하고 있던 태자 전지가 8년만에 귀국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전지왕(405∼420)의 즉위과정에 또 다시 왕위계승 분쟁이 발생하였다. 즉 아신왕의 맏아들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을 가진 태자 전지가 아신왕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길에 오르고 있을 때 큰아우인 訓解가 일시 섭정을 하면서 태자 전지의 환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작은아우인 碟禮가 왕위계승의 원칙을 무시하고 자의로 형 훈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한성사람 解忠과 그의 지지세력에 의해서 진압되었고, 이어 전지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전지왕의 즉위과정에서 백제의 지배세력은 전지 옹립파와 설례 지지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자의 경우 훈해로 대표되는 일부 왕족과 전지가 귀국할 때에 그를 호위하였던 100명의 왜군162) 및 해충으로 대표되는 해씨세력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설례의 지지세력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진씨세력을 꼽을 수 있겠다. 진씨세력이 전지왕의 즉위를 계기로 한동안 정계에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씨세력은 4세기 후반 이래 병관좌평과 좌장을 역임하면서 병권을 장악하여 대고구려전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아신왕 5년(396) 전투의 예와 같이 백제가 대고구려전에서 참패를 거듭하게 되자 진씨세력도 크게 타격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아신왕 7년의 인사에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의 패전책임을 물어 병마지휘권을 담당하는 좌장직이 진씨세력 진무로부터 沙氏세력 沙豆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광개토대왕릉비문>의 영락 6년(396) 작전의 참패로 일부 진씨세력의 유력한 귀족들이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졌을 가능성도163) 상정된다. 이로 인해 진씨세력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진씨세력은 자신의 거듭된 패전을 호도하고 실추된 세력을 만화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설례를 옹립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진씨세력에 의한 이러한 책동은 전지를 지지하는 해씨세력 등으로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전지왕이 설례 일파에 의한 왕위찬탈의 책동을 분쇄하고 즉위하자 이듬해 정월에 즉위의례적인 성격을 가진 동명묘의 배알과 범부여족의 공통적 제의인 제천사지를 동시에 거행하였다. 이것은 새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천명하고 그동안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내분을 수습하여 지배세력간의 광범위한 결속을 다지고자 한 것이었다. 이어 즉위에 따른 논공행상적인 인사를 단행하였는데, 서제인 餘信을 내신좌평으로, 解須를 내법좌평으로, 解丘를 병관좌평으로, 그리고 옹립의 공이 매우 큰 한성사람 해충을 달솔로 각각 임명하였다. 전지왕 4년(408)에는 내신좌평 여신을 새로 신설된 재상직인 상좌평에 승진·임명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치의 실권이 진씨세력에서 해씨세력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해충은 전지왕 옹립에 관여한 공로로 달솔관등에 오르고 漢城租 1,000석을 지급받았으며, 그 밖에 해수·해구 등 해씨세력이 병관좌평 등 중요한 요직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부상하였다. 해씨세력은 백제 왕실과 통혼하여 마침내 왕비족에 올라「解氏王妃族時代」로 불리울 정도로164) 한동안 성세를 누렸다. 王戚인 해수는 내법좌평에 기용되었다가 비유왕 3년(429)에는 상좌평으로 승진되었고, 解丘도 병관좌평이 되어 병권을 장악하였다. 옹진천도 직후에 병관좌평이었던 解仇가 전횡을 일삼았던 것도165) 이에 해당된다. 반면에 지금까지 왕비족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던 진씨세력은 웅진시기 초까지 한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어 전지왕 즉위 초의 정변에 연루되어 설례를 옹립하려다가 결국 세력을 잃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로써 5세기 전반의 권력구조는 종래와 같이 왕족-왕비족 사이의 연합체제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다만 전지왕대를 기점으로 하여 지배귀족이 진씨세력에서 해씨세력으로 교체가 이루어진 점에 주목된다.

 그리고 전지왕 즉위 초의 정변으로 왕권 자체도 동요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재상직인 상좌평을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전지왕 4년에는 餘信을 새로 신설된 상좌평에 임명한 사실이 눈에 띈다. 상좌평의 설치는 전지왕 즉위 초의 정변에 따른 왕족간의 분열을 수습하고, 또 왜에 오랫동안 체류하였던 관계로 긴 정치적 공백을 가졌던 전지왕을 보필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처로 이해된다.166) 이러한 의미에서 상좌평의 설치는 전지왕과 그의 지지세력간에 이루어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측면도 있다. 또한 상좌평체제는 왕족과 유력한 귀족세력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도 가졌지만,167) 한편으로는 왕권과 일정한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과 왕비족에게 대귀족에 대한 통제력을 위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국왕의 지위를 상징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조처로 이해된다. 처음 설치된 상좌평에 전지왕이 신임하는 왕족 여신이 임명되었다는 점이나, 상좌평은 신라의 상대등제와 같이168) 국정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귀족세력을 일원적으로 통솔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 설치에는 왕권강화의 측면이 보다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5세기 백제의 권력구조는 왕족과 왕비족인 해씨세력을 기축으로 한 상좌평체제를 중심으로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지왕은 상좌평제를 신설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죽은 뒤에 오히려 왕권이 약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전지왕에 이어서 구이신왕(420∼427)이 16세 정도의 어린 나이로169) 즉위하였는데, 그의 재위기간이 8년에 불과할 정도로 단명하였을 뿐 아니라≪일본서기≫에는 목씨세력이 국정을 농단하였던 사실을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이신왕이 연소함에 따라 왕모인 八須夫人의170) 영향력이 강화되자, 木滿致가 왕모와 정을 통해 왕모의 권위를 등에 업고 국정을 멋대로 휘둘렀던 것이다.171) 구이신왕대에 목씨세력이 대두하게 된 배경은 전지왕의 옹립 이후 실권을 잡았던 왕족 여신과 해씨세력을 견제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172) 목씨세력이173) 구이신왕대에 정치실권을 장악한 점은 기존의 유력한 귀족세력인 진씨와 해씨세력 중심의 권력구조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어 즉위한 비유왕대(427∼455)에는 왕비족인 解須가 상좌평에 임명된 사실로 보아(429) 정치실권은 목씨세력에서 다시 해씨세력으로 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해씨세력이 구이신왕대에 정치실권을 장악했던 목씨세력을 물리치고 비유왕을 옹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5세기 전반에는 왕족 이외에 진씨·해씨·목씨세력간에 정치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왕권이 극히 쇠약해져 대귀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삼국사기≫에 비유왕의 죽음을 흑룡의 출현과 관련시키고 있음을 볼 때 비유왕도 이러한 와중에서 어떤 정변에 의해 희생되었을 것으로174) 여겨진다. 개로왕이 즉위한 직후에 “선왕의 陵이 제대로 조영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고 한 것을175) 보면 비유왕의 죽음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162)전지가 귀국할 때에 동원된 왜군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던 정치세력으로 목씨세력을 상정하는 견해도 있다(文東錫,<4·5세기 百濟 政治體制의 變動>, 慶熙大 碩士學位論文, 1993, 35쪽). 이에 따르면 목씨세력도 전지 지지파로 분류될 수 있다.
163)李道學, 앞의 글, 290∼291쪽.
164)李基白,<百濟王位繼承考>(≪歷史學報≫11, 1959), 31∼35쪽.
165)≪三國史記≫권 26, 百濟本紀 4, 문주왕 2년 9월.
166)梁起錫,<百濟 腆支王代의 政治的 變革>(≪湖西史學≫10, 1982), 22쪽.
167)盧重國은 상좌평 설치를 5세기경 백제왕권의 쇠미현상과 관련시켜 지배세력들의 이익과 의사를 대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파악하고 있으나(앞의 책, 141쪽), 일단 귀족세력을 일원적으로 통솔하기 위한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상좌평과 내신좌평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좌평이 수석좌평으로서의 내신좌평의 위치를 제도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盧泰敦,<三國의 政治構造와 社會經濟>,≪한국사≫2, 국사편찬위원회, 1977, 221쪽), 문주왕 때 왕제 昆支가 내신좌평에 임명되었고, 또≪日本書紀≫권 19, 欽明天皇 4년조에 沙宅己婁의 관직이 상좌평인 점을 볼 때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168)李基白,<上大等考>(≪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95∼96쪽.
169)李道學,<漢城末 熊津時代 百濟王系의 檢討>(≪韓國史硏究≫45, 1984), 6쪽.
170)≪三國史記≫권 25, 百濟本紀 3, 전지왕 즉위년.
171)≪日本書紀≫권 10, 應神天皇 25년.
172)盧重國, 앞의 책, 158쪽.
173)목씨세력의 출자를 마한의 목지국과 관련시키고 있으며, 근초고왕대 백제의 가라 7국 정벌에 세운 전공을 바탕으로 정치적 기반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盧重國, 앞의 책, 155∼156쪽 및<百濟의 木劦(羅)氏 硏究>,≪百濟社會의 諸問題≫-제7회 백제연구 국제학술대회 발표요지-, 충남대 백제연구소, 1994, 173쪽).
174)李道學,<漢城末 熊津時代 百濟王位繼承과 王權의 性格>(≪韓國史硏究≫50·51, 1985), 3쪽.

盧重國, 앞의 책, 140∼141쪽.
175)≪三國史記≫권 25, 百濟本紀 3, 개로왕 21년 9월.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