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Ⅱ. 신라의 융성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신라의 융성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신라가 낙동강 동쪽의 경상북도 일대를 완전히 지배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奈勿麻立干(356∼402) 때의 일로 생각된다. 그는 김씨로서는 처음 왕이 된 味鄒尼師今(262∼283)의 조카·사위 혹은 동생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계보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계보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가 미추와 어떤 형태이건 연관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내물마립간의 등장에서 주목되는 점은 우선 그의 등장 이후 김씨의 왕위 계승이 본격화되어 신라의 마지막 세 왕을 제외하고는 신라 멸망에 이르기까지 김씨 세습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이고,111) 다른 하나는 마립간이라는 칭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립간이란 왕호는 내물에서 시작하여 炤知麻立干(479∼499)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는데, 이 시기 약 150년간을 흔히 마립간시대라고 부른다.≪三國史記≫에는 내물 다음다음 왕인 訥祗에서부터 마립간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三國遺事≫에는 내물왕 때부터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쓴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기록의 차이에 대해서는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내물대에 마립간의 칭호를 쓴 것으로 보겠다.

 마립간의 뜻에 대하여는≪삼국사기≫에서는 金大問의 말을 인용하여 “마립이란 말뚝(橛)을 이른 것이고, 이는「諴操」의 뜻으로 자리를 정하여 두는 것이니, 王橛이 주가 되고 臣橛이 아래에 벌려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112)≪삼국유사≫에서는「함조」를「橛標」로 쓰고 있어 동일한 해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우리 말의 머리(頭), 마루(宗·棟·廳) 등의 말과 같은 어원의 말일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113) 이 해석에 따르면 마립간은 우두머리, 또는 제일의 干이라는 뜻이 되어 최고 지배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연장자라는 의미를 갖는 尼師今에 비하여 한층 정치 지배력이 강화된 통치자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물마립간 22년(377)과 27년의 두 차례에 걸쳐 고구려 사신의 안내를 받아 前秦에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보아, 내물마립간 때에는 신라가 그 이전 단계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커다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내물마립간 27년에 사신으로 간 衛頭가 前秦王 苻堅과의 문답에서 “중국에서 시대가 달라지고 이름이 바뀌는 것과 같으니 (海東의) 지금이 어찌 옛날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114)라 한 것은 신라가 이제는 국제무대에 등장할 만큼 세력이 확대되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내물마립간을 이어 왕위에 오른 이가 實聖麻立干(402∼417)이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실성은 大西知 伊湌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을 뿐 내물마립간과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은데,≪삼국유사≫ 王曆에서는 대서지를 味鄒의 동생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석씨계로 되어 있어, 아직은 김씨의 세습왕권이 튼튼히 자리잡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또 실성은 내물마립간 37년에 고구려의 인질로 가 있다가 내물이 죽기 전해인 내물마립간 46년에 귀국하였는데, 내물왕이 죽자 그의 아들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그의 즉위의 배후에는 고구려의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을 인질로 보낸 내물왕을 원망하여 즉위한 다음해에 내물왕의 아들인 未斯欣을 왜에 인질로 보내고, 실성마립간 11년(412)에는 또 다른 아들인 卜好를 고구려에 인질로 파견하였다. 특히 미사흔을 왜에 인질로 보낸 이유는 일종의 군사적 동맹을 맺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阿莘王도 재위 6년(397)에 왕자 腆支를 왜에 인질로 파견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군사외교였던 것임은<廣開土王陵碑>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대항해 신라도 미사흔을 인질로 파견하였으나, 결국 이러한 외교전은 백제의 승리로 돌아가 미사흔이 왜에 억류된 것으로 보인다.115) 그러나 그 후 고구려의 힘을 이용하여 내물왕의 큰아들인 訥祗를 제거하려던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오히려 고구려의 후원을 받은 눌지에게 타도되고 말았다.

 실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눌지는 아마도 석씨세력을 철저히 타도하였던 것 같은데,≪삼국사기≫에 실성이 죽기 전 해에 “토함산이 무너졌다”는 기록은 脫解가 산신인 토함산의 붕괴라는 표현으로 석씨세력의 몰락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116)≪삼국사기≫에 눌지부터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아마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물왕대부터 마립간이란 칭호가 사용되었음은 틀림없으나, 아직까지 이사금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까닭에 이사금과 마립간이란 칭호가 혼용된 것이 아닐까 한다.

 눌지마립간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즉위하였지만117) 왕위에 오른 뒤에는 고구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우선 즉위한 다음 해에 실성에 의해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파견되어 있었던 미사흔과 복호를 구출하여 신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 때 朴堤上의 활약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제와 羅濟同盟을 체결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또 그는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왕실 분쟁을 미리 막기 위하여 왕위의 부자상속 제도를 확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慈悲와 소지는 모두 전왕의 長子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 왕위계승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왕뿐만 아니라 왕비까지도 모두 김씨가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고기에 들어가 박씨의 왕비가 등장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마립간시대는 김씨족의 등장과 함께 그 세력이 강화되어 여타의 박씨·석씨세력을 완전히 압도하고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4세기 중엽에 등장한 김씨족은 눌지대에 이르러 대내적으로는 왕위계승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발전의 터전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씨왕조의 등장과 관련하여 이를 騎馬民族의 도래와 이에 따른 정복국가의 성립이라는 입장에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정복국가란 민족이동기에 만주방면에서 기병전 위주의 전쟁 수행능력을 지닌 집단이나 북방 유목민족이 한반도지역으로 남하하여 토착세력을 제압하고 세운 왕조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의 정복국가론의 출현 배경은≪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 문제와 3성교립이라는 왕조의 교체, 그리고 積石木槨墳이라는 특이한 묘제의 등장 등과 관련하여 제기되어 왔다.118)

 한 정복국가설에 따르면 시베리아 동쪽의 오르도스 철기문화가 한국과 직결되는데, 오르도스 철기문화의 주인공들은 漢의 팽창으로 일파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헝가리 즉 훈족의 나라를 세웠고, 동쪽으로 이동하는 일파는 한반도로 진출하여 일본열도에까지 상륙하였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라 적석목곽분의 주인공들은 한반도 서북부 지역을 거쳐 동남진한 시베리아계 주민의 후예로서, 시베리아-오르도스계의 대형 적석목곽분과 철기·繩席文土器·金細工技術을 가지고 남하하였다는 것이다.119) 또 다른 정복국가설에 의하면 경주에서의 주 묘제의 교체는 그 최고 지배세력의 변동 내지는 지배구조의 변화의 산물로 볼 수 있는데, 신라고분의 축조 시기는 土壙墓 축조기→적석목곽분 축조기→橫穴式 石室墳 축조기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그런데「高大封土」인 적석목곽분은 한반도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지역에서 비롯하였으며, 기동력을 갖춘 기마민족의 문화가 신라에 미쳤다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민족 대이동기에 적석목곽분을 묘제로 하는 기마민족의 일파가 4세기 전반기에 경주에 도달한 결과 신라에서 김씨왕조가 성립되고 마립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120)

 고고학적으로 적석목곽분의 등장 시기는 대략 4세기 중엽 무렵이므로 이는 문헌기록상으로 내물왕(356∼402)의 등장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121) 적석목곽분의 기원 내지는 계통 문제에 대해서는 이를 북아시아의 묘제와 연관하여 파악하는 견해가 유력하다.122) 따라서 김씨왕족의 등장과 기마민족의 이동을 관련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정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111)崔彦撝가 지은<眞空大師碑>에 “金氏는 聖韓에서 비롯하여, 奈勿에서 興盛하게 되었다”고 하였다(≪朝鮮金石總覽≫上, 朝鮮總督府, 1919, 135쪽).
112)≪三國史記≫권 3, 新羅本紀 3, 눌지마립간 1년.
113)李丙燾,≪譯註 三國史記≫(乙酉文化社, 1977), 43쪽.
114)≪三國史記≫권 3, 新羅本紀 3, 내물마립간 27년.
115)李基白,<古代 韓日關係>(≪韓國古代史論≫, 探求堂, 1975).
116)金哲埈,<新羅上代의 Dual Organization> 上 (≪歷史學報≫1, 1952), 32쪽.
117)≪三國史記≫에는 눌지가 스스로 실성을 죽이고 自立하여 왕이 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三國遺事≫권 1, 紀異 2, 第十八實聖王條에 의하면 고구려의 군대가 실성을 죽이고 눌지를 세워 왕을 삼은 것으로 되어 있다.
118)정복국가론에 관한 연구사적 정리는 李道學,<4세기 정복국가론에 대한 검토>(≪韓國古代史論叢≫6, 韓國古代社會硏究所, 1994), 245∼278쪽 참조.
119)李鐘宣,<오르도스 後期 金屬文化와 韓國의 鐵器文化>(≪韓國上古史學報≫2, 1989), 15∼90쪽.
120)崔秉鉉,≪新羅古墳硏究≫(一志社, 1992), 397∼415쪽.
121)이에 대하여는 일부 이견이 없지 않다.≪三國史記≫권 3, 新羅本紀 3, 눌지마립간 19년(435)에 “2월에 歷代의 園陵을 修葺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수즙을 신라에서 적석목곽분의 발생을 알리는「新葬制施行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申敬澈,<古式鐙子考>,≪釜大史學≫9, 1985).
122)金元龍은 흑해 북안에서 일어난 목곽분 문화가 시베리아지역으로 전파되어 前漢과 樂浪에도 미치게 되었는데, 경주의 적석목곽분은 그 마지막 형식이라고 하였으며(金元龍,<韓國文化의 起源>,≪文理大敎養講座≫1, 서울大, 10∼11쪽), 金秉模는 적석목곽분의 계통을 알타이 지역의 피지락 고분군과, 그리고 신라 금관의 계통을 중앙아시아 지역의 冠帽와 연결짓고 있다(金秉模,≪한국인의 발자취≫, 正音社, 1985, 208∼20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