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4. 사회구조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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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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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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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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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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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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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Ⅳ.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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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본디 관등은 사로국시대 부족회의에서의 석차·계층에서 원류한 것으로 짐작된다.637) 그런데 많은 성읍국가를 망라한 연맹왕국 단계에 이르면 각기 서로 다른 관등이 그대로 조정의 관제 속에 중첩되어 관직과 관등을 구별할 수 없는 일종의 무질서 상태를 노출하게 되었다. 신라는 대체로 내물마립간 때로부터 辰韓 12개 국을 아우르는 큰 연맹왕국시대로 돌입했는데, 이 무렵 마련된 정청이 바로 南堂이었다. 이 남당에는 君臣의 좌석을 나타내는 소위 橛標가 있었던 것으로 역사서는 전하고 있다. 어쩌면 이 때쯤 되어서 관직의 서열에 따라 宮中 席次가 정해지는 정치체제를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증왕 4년(503)에 만들어진<영일 냉수리 신라비>에는 壹干支·阿干支·居伐干支·奈麻 및「干支」등의 관등 명칭이 보이고 있어 경위제가 마립간시대의 산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17등 관등제로 완성된 것은 국가체제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인 체제로 재편성된 법흥왕 때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율령의 수용이었다. 본디 율령은 그 정치이념상 족제적인 신분제와는 상치하는 것이고, 관등제도 자체가 이미 율령의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령 제정 때 관등제도가 족제적인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에 의해 규제되는 형태로 정착된 것은 당시 율령체제를 충실하게 강행할 수 있을 만큼 왕권이 성장하지 못한 데 起因한다고 생각된다.

 경위제가 17관등제로 완성되기 이전 단계에 12관등제의 시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伊伐湌과 伊湌은 하나가 二分된 것이고, 大阿湌은 阿湌에서, 大奈麻는 奈麻에서, 大舍는 舍知(일명 小舍)에서 각각 분화하고 大烏와 小烏는 烏知에서 각각 2분된 것으로 보아 17등의 숫자는 12등으로 압축된다고 한다.638) 한편 韓·中·日 삼국의 位階制를 서로 연관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서, 중국 品階制의 영향 아래 성립한 고구려 관등제도가 백제와 신라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 신라의 관등제도가 17등급으로 移行하는 중간에 고구려와 같은 12관등(혹은 13관등)의 시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이 논자는 그 근거로 이벌찬에서 대아찬까지의 5개 관등이 어느 시기에 한 관등(대아찬)으로 취급되었을 가능성을 들고 있다.639) 다만 이러한 견해는 근래 6세기 초두에 만들어진 신라 금석문자료가 잇달아 발견됨에 따라 사실과 다른 점이 확인된 바 있다.

 17관등은 크게 干(Khan)群 계열과 非干群 계열의 두 개 群으로 나누어진다. 즉 이벌찬에서 級湌(級伐湌)까지의 9개 관등이 간군에 속하고, 대나마 이하 造位(先沮知)까지의 8개 관등은 그와는 다르다. 그러나 비록 비간군 계열이라고는 해도 어떤 점에서는 간군과 서로 통하는 일면이 엿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대나마나마나마(Na-maru)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큰 지역(那)의 우두머리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 또한 ⑿大舍와 ⒀舍知는 사지(Maruchi)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작은 지역 곧 마을(村)의 우두머리로 볼 수 있다. ⒂大烏와 (16)小烏의「烏」역시 이를 訓借音으로 읽을 때 首·長과 서로 통한다.640) 그러니까 간군과 비간군은 모두 일정한 지역세력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양자의 차이는 다만 지배하는 지역의 크고 작음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보았듯이 왕경 6부 자체가 이처럼 사로국의 영토 확장과정에서 새로이 획득한 각 지역의 다양한 지배층을 왕경에 결집함으로써 성립된 것이었다. 종래 간군 관등과 비간군 관등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 법흥왕대 초두에 邑落 首長의 신분서열로서 먼저 간군 경위가 창설되고 다시 진흥왕대에 이르러 나마-사지군 경위와 간군 외위가 추가적으로 설치됨으로 해서 진평왕 때 경위·외위가 완성되었다는 견해가 있었으나,641) 법흥왕 11년(524)에 만들어진 울진 봉평리 소재 신라비석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경위·외위제가 이미 법흥왕대 완성단계에 있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642)

 앞에서 언급했듯이 관등제도는 골품제적인 신분제가 전제가 되어 성립된 것이지만, 다만 우리들이≪삼국사기≫직관지의 규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17관등과 여러 골품신분간의 대응관계가 정착된 시기를 둘러싸고서는 학계에서 약간의 논쟁을 빚고 있다. 직관지 규정에 제5관등인 대아찬 이상 제1관등인 이벌찬에 이르기까지는 “오직 진골만이 받을 수 있으며, 다른 신분은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듯이 진골은 관등 승진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나, 6두품은 그 승진 한계가 제6관등인 아찬으로 규제되어 있다. 한편 公服 빛깔로 미루어 볼 때 靑衣에 상당하는 5두품은 제10관등인 대나마, 黃衣에 상당하는 4두품은 제12관등인 대사로 각기 제한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제6관등으로부터 제9관등까지의 소위 간군 계열의 관등이 6두품에게「개방」된 것은 간군 관등이 분화된 결과로 볼 여지가 있으며, 이는 필경 본래의 상태에서 변질된 것으로 볼 수밖에는 없다.643) 이같은 의미에서 6두품 신분은 종래의 干層에서 유래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非干層이 그 간 신흥세력으로 성장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644) 한편 진골귀족이 최고위 관등을 독점하는 배타적·독자적인 신분층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도 간군 관등이 어느 정도 분화된 시기의 현상으로 생각되며, 어쩌면 그 시기는 진골로서 관등을 가진 자에게 牙笏을 갖도록 한 교서가 나온 진덕여왕 4년(650) 4월 무렵으로 일단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645)≪삼국사기≫권 33, 志 2, 色服조에 의하면, 법흥왕 때의 制令에는 제5관등인 대아찬 이상 太大角干까지 紫衣를 입은 자나 혹은 제9관등인 급찬 이상 제6관등인 아찬까지 緋衣를 입은 자는 모두 아홀을 갖도록 하였다.

 한편 관직은 관등의 규제를 받았다. 신라의 관직체제를 보면 중앙의 제1급 官府인 部·府의 경우, 제1등관으로서의 장관직인 令(집사부는 侍中, 位和府는 衿荷臣), 2등관으로서의 차관직인 卿(집사부는 侍郞, 병부는 大監), 3등관으로서의 대사, 4등관으로서의 사지 그리고 제5등관으로서의 史 등 5단계로 되어 있다. 이 5단계 조직은 神文王 5년(685)에 종전의 4단계 조직에 사지를 신설함으로 해서 완비되었는데, 그 중 특히 령은 대아찬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로 제한한 결과 진골만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6두품은 차관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5두품은 대사직에, 4두품은 史직에 한정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또한 6停·9誓幢을 비롯한 주요 군부대의 지휘관인 장군직(정원 36명, 경덕왕 때 3명 증원)도 진골만이 차지할 수 있었으며, 부지휘관인 大官大監(정원 62명)의 경우 6두품에게 개방되기는 했으나 그 보임 관등이 대나마 이상 4重阿湌까지로 되어 있는데 비해 진골은 대나마보다 하위인 사지 이상이면 보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지방장관직인 州의 都督도 보임 관등이 급찬∼이찬으로 규정되어 있을 뿐 진골만이 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은 보이지 않으나, 이 역시 진골이 독점한 듯하다.646) 결국 6두품은 군직으로는 최고로 서북 일선지대인 황해도 平山에 그 본영을 두고 있는 浿江鎭典(782년 설치) 장관직인 頭上大監을 차지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지방관직으로는 도독 아래의 州助(일명 州輔)나 郡太守가 될 수 있는 데 불과했다. 실제로 6두품 출신으로 중앙의 執事部侍郞직과 패강진전 두상대감을 최후로 하여 관직에서 물러난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647)

 이처럼 골품제사회는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만능의 사회였다. 그 바로 밑의 6두품 신분은 얻기 어려운 신분이라는 뜻에서「得難」이라 불려지기도 했으나, 역시 관직 진출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삼국사기≫권 47, 薛罽頭傳에 의하면 설계두는 비록 衣冠子孫이기는 했으나 신라가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골품에 입각하여 진정 그 족속이 아니면 아무리 큰 재주와 뛰어난 功이 있더라도 주어진 한계를 뛰어 넘을 수가 없음을 불만으로 여겨 진평왕 43년(621) 몰래 배를 타고 중국(唐)으로 망명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薛氏가 대표적인 6두품 가문 중의 하나였던 점을 고려할 때 그는 6두품 출신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648) 6두품 출신이 느끼는 불만과 좌절이 이와 같았다면 5두품 이하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 조정이 6두품 이하에게 제한된 관등 범위 안에서나마 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소위 重位制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의하면 6두품에게는 重阿湌으로부터 4重阿湌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을 터놓았고, 5두품에게는 重大奈麻로부터 9重大奈麻까지, 그리고 4두품에게는 일종의 특례로 重奈麻로부터 7重奈麻로까지 승진의 길을 터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649) 다만 나마 관등의 경우 그 중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4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은 대사인 만큼, 만약 4두품을 위해서 특진제도를 마련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대사에 적용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650)

 또한 중위제의 제정 시기를 둘러싸고서도 학계에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삼국 통일전쟁 기간 중에 몇 차례 걸쳐 단행된 文武官 전원에 대한 한 등급 관작 승진조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중위제가 성립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651) 내물마립간 때로부터 진평왕대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설정되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후자에 의하면, 마립간시대에 이미 나마 중위제가 古拙한 형태로나마 시행되기 시작했고 그 뒤 그것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아찬 중위제가 새로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즉 아찬 중위제는 6두품이 독자적인 신분층으로 성립되어 있었던 진평왕 때 나타난 것으로, 이는 그 자체 비간층이 종전의 나마 중위제의 제약을 뛰어 넘어 간군 관등으로 진입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갔던 사정을 반영한다고 한다.652) 이같은 견해는 논리적으로는 성립될 수 있겠으나, 다만 중고시대의 사회 분위기와는 부합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637)李丙燾, 앞의 글, 629∼631쪽.

三品彰英, 앞의 글, 204쪽.
638)末松保和,<梁書新羅傳考>(≪靑丘學叢≫25, 1936; 앞의 책, 400∼408쪽).
639)宮崎市定,<三韓時代の位階制について>(≪朝鮮學報≫14, 1959), 253∼280쪽.
640)徐毅植, 앞의 책, 37쪽. 단 maru群 京位에 대응하는 것을 外位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그것이 순전히 京位的인 성격, 전통적·토착적 성격을 보여 준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武田幸男,<新羅官位制の成立にかんする 覺書>(武田幸男編,≪朝鮮社會の史的展開と東ァジァ≫, 山川出版社, 1997), 122쪽 참조.
641)三池賢一,<新羅官位制度>上(≪法政史學≫22, 1970), 15∼34쪽.

――――, 앞의 글(1971), 15∼34쪽.
642)盧泰敦,<蔚珍鳳坪新羅碑와 新羅의 官等制>(≪韓國古代史硏究≫2, 1989), 183쪽.
643)三品彰英, 앞의 글, 203∼204쪽.
644)徐毅植, 앞의 책, 167∼171쪽. 다만 그는 “6두품은 그 하위의 신분이 진골귀족에게 國士로 인정받아 오르게 되는 말하자면 획득되는 신분”이라고 했는데(徐毅植, 위의 책, 172쪽), 이는 몇몇 특정한 사례를 갖고 6두품 전체에 해당하는 것인 양 확대 해석한 느낌이 든다.
645)徐毅植, 위의 책, 119쪽.
646)邊太燮,<新羅官等의 性格>(≪歷史敎育≫1, 1956), 67쪽.

申瀅植,<新羅 軍主考>(≪白山學報≫19, 1975;≪韓國古代史의 新硏究≫, 一潮閣, 1984, 212쪽).
647)李基東,<新羅 下代의 浿江鎭>(≪韓國學報≫4, 1976; 앞의 책, 222∼224쪽).
648)李基白, 앞의 책(1974), 39∼40쪽.
649)三池賢一, 앞의 글(1971), 20∼21쪽. 그는 4두품 출신 國學 수학자에 대한 특전으로 마땅히 大舍(제12관등)에 적용해야 할 重位가 바로 그 위인 奈麻에 설정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650)邊太燮, 앞의 글, 70∼76쪽. 한편 奈麻 중위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이는 혹 삼국통일 후 신라에 歸附한 옛 백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權悳永,<新羅 官等 阿湌·奈麻에 對한 考察>,≪國史館論叢≫21, 國史編纂委員會, 1991, 53∼55쪽 참조).
651)李基東, 앞의 책, 134∼135쪽.
652)徐毅植, 앞의 책, 162∼17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