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토착신앙
토착신앙은 대체로 고대사회의 신앙이라는 측면보다는 원시종교적인 면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것은 종래 고대국가에 대한 기준이 집권화된 관료체제에 두어졌기 때문이었다. 즉 율령반포와 불교공인을 고대국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고대국가와 고대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불교를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지식이 한국 고대국가 형성에 원용되면서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그에 따라 고대국가 형성시기가 상향 조정되었다. 따라서 종래 고대국가의 이데올로기라고 하였던 견해가 다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라고 수정되기도 하였다.001)
이와 같이 고대국가에 대한 개념과 그 시기가 바뀌게 됨에 따라 불교가 고대국가에서 차지한 영향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래 고대국가 형성시기와 불교의 공인시기를 비슷한 시기로 보았으므로 불교를 고대국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하였으나 국가 형성시기가 훨씬 앞선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고대의 국가와 사회에 있어서 중심적인 사상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이에 불교가 수용되기 이전의 토착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청되는 것이다.
종래 불교수용 이전의 토착신앙에 대한 연구는 대개 원시신앙 내지는 원시종교의 입장에서 연구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일본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한국학자들도 역사학자나 민속학자들 거의 모두가 토착신앙을 원시신앙이라는 입장에서 고찰하였다. 특히 실증사가들은 정치사나 제도사를 중요한 연구과제로 하였는데 그 가운데 고대국가에 있어서 율령반포를 중요시하고 그 율령반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수용되었던 불교를 고대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고대국가에 있어서 그 기준을 율령반포와 불교공인으로 파악한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고대국가에 대한 개념과 기준에 대한 새로운 견해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인류학이론의 한국사에의 적용이라는 각도에서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관심이 기울어지면서 고대국가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소개되었다. 특히 서어비스와 프리이드의 인류학이론이 소개되면서 통합이론과 갈등이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002) 또한 최근에는 종합적인 견해가 인류학계에서 제기되고, 국가형성에 있어 왕권의 신성성을 중요시하는 견해가 제시되었다.003) 즉 구미 인류학계에서도 국가형성에 있어 신앙적인 측면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토착신앙에 대한 자료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신화와 제의에 관한 자료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신화가 신앙의 이론적 구조라고 한다면, 제의는 신앙의 실천적 형태라 할 수 있으며, 양자는 깊이 얽혀 유기적인 전체성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004) 따라서 우리는 토착신앙에 대한 이해를 남아 있는 신화와 제의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의 토착신앙에 대해서 기록한 문헌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여태까지 이 시기의 사상과 문화를 논할 때는 불교와 유교 또는 도교에 대해서만 논하였고, 귀족들의 문화만을 언급하였다. 그 까닭은 자료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시각 자체가 지배층 위주였기 때문이다. 물론 남아 있는 자료가 지배 엘리트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지배층 위주로 사상과 문화를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배층이 남긴 자료라 하더라도 그 시대 피지배층의 감정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토착신앙의 경우는 불교와의 마찰을 보이는 기록들을 잘 이용하면 그 실체에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 시기의 사상과 문화를 논할 때 유학·불교·도교와 귀족문화에 국한한 것은 역사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고 남아 있는 자료의 해석에만 매달렸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불교가 전래·수용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래의 토착신앙을 신봉하였으며, 불교를 공인하면서 토착신앙과의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 불교와 토착신앙과 융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간과하였다. 유교나 불교·도교는 모두 중국에서 전래된 사상과 종교이다. 따라서 한자와 한문에 대한 소양없이는 쉽게 가까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한자와 한문에 대한 소양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계층에 불과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한자와 한문에 대한 소양을 갖고 있지 않아 유학·불교·도교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차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부터 전래 수용된 儒·佛·道는 일반 백성들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대중화되어 가면서 토착신앙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물론 토착신앙이 모두 피지배층에 의해서만 신앙된 것은 아니었다. 토착신앙이 특히 피지배층에 의해서만 신앙된 것은 유학과 불교·도교가 전래 수용되고 지배이데올로기화한 이후의 일이었다. 외래신앙이 전래·수용되기 전에는 오히려 토착신앙이 지배이데올로기였다고 할 수 있다.005) 종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토착신앙은 외래신앙이 수용된 후 그 지배이데올로기의 위치를 잃고 민간신앙화한 것이다. 그러나 지배이데올로기의 위치를 잃었지만 일반 백성에게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은 지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배층이 외래신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하였다면 민중들은 토착신앙을 민중이데올로기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배층은 외래신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하면서도 각종 토착신앙의 의례를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토착신앙의 편린이 남아 있는 의례를 통하여 토착신앙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삼국의 토착신앙을 나라별로 천신신앙·조상숭배신앙·지신신앙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관계를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