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단술
고구려의 煉丹術은 5세기에 도교와 함께 들어온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689) 고구려 무덤의 하나인 우현리 대묘의 현실에는 그 화려하고 숙달된 색채와 아름다운 선을 구사한 벽화로 유명한 날으는 선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선녀는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 불로장생의 靈芝를 채취하고 있다. 이 그림은 흔히 연단술의 신선사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현리 대묘가 6세기말에서 7세기초에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으니까, 이 무덤의 벽화는 그 시기의 고구려에 신선사상 또는 仙道 등으로 표현되는 불로장생의 術, 또는 연단술이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구려의 연단술은 일찍부터 중국에 잘 알려져 있었다. 중국의 연단술과 융합된 약물학적 지식을 담은 대표적인 本草書의 하나인 陶弘景의≪神農本草經集註≫에는 11종의 고구려산 의약재가 소개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인삼과 금가루는 연단술과 관련되어 주목할 만하다. 도홍경은 금가루는 유독하여 정련되지 않은 것을 먹으면 죽지만, 고구려의 금가루는 잘 정련되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인삼과 금가루에 대한 이 기록은 6세기 이전의 고구려 연단술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인삼과 금가루는 고구려에서 찾아낸 불로장생의 선약이었다. 고구려의 연단술과 선약은 처음부터 인삼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우현리 대묘의 선녀가 영약을 채취하고 약 다리는 그릇을 가진 모습의 그림에서 영약은 인삼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고구려의 금가루가 잘 정련되어 먹을 수 있다는 도홍경의 평가는 6세기초의 고구려 연단술의 수준을 말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6세기 이후 도교의 사상적 영향은 점차로 확대되었다. 624년과 643년에는 당에서 道士가 직접와서 道經을 전파하였다. 이 시기에 葛洪의≪肘後備集方≫과 陶弘景의≪神農本草經集註≫가 고구려에 들어왔으리라고 믿어진다. 또 갈홍의≪抱朴子≫가 미친 영향도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무렵 고구려의 여러 무덤에 그려진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의 그림은 달에 대한 不死의 관념을 나타낸 것으로서 죽은 자의 영생을 축원하는 불로장생 사상의 영향일 것이다.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