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문기상 관측
신라에서도 고구려와 백제에서와 같이 천상의 이변에 특히 주목하여 천문관측이 이루어졌다. 일식과 혜성의 관측이 제일 많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도 다른 두 나라와 비슷하다. 일식은≪삼국사기≫에 기원전 54년 4월에서부터 256년 10월까지 19회의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 787년 8월의 기사가 나타나기까지 무려 530년 동안 아무런 기록이 없다. 첨성대가 세워진 이후에도 일식기사가 없다는 것은≪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빠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혜성의 기사는 기원전 49년 3월에서부터 668년 4월까지 19회의 기록이 나타나 있다. 이 밖의 천변의 관측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 기사들은 신라의 천문관측도 고구려와 백제에서와 같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삼국사기≫와≪삼국유사≫의 천문기록들은 그것을 편찬할 때 천문관청의 기록이 완전하게 옮겨지지 않아서 불완전하지만, 신라의 천문관측자들이 남겨놓은 귀중한 자료이다.
신라의 천문관측자들은 기상관측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보이는 기상의 이변 기사는 그 관측기록 중의 일부이다. 비와 눈, 바람, 그리고 흰무지개가 해와 달에 걸리는 白虹貫日月, 햇무리와 달무리, 지진, 기온 등이 특히 주의깊게 관측되었다. 두 사서에 기록된 관측기사만 해도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닌 것을 보면, 신라의 관측자들은 기상 현상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관측제도를 세워놓고 규칙적으로 관측하고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