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Ⅰ. 삼국통일1. 삼국통일 과정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고구려국 부흥운동

 고구려가 패망한 보장왕 27년(668) 전후로 당에 망명한 자와 포로·강제로 이치된 고구려 유민은 엄청난 숫자였다. 20만 명을 포로해 간데 이어 평양의 安東都護인 설인귀가 總章 2년(669) 4월에 38,200戶를 수륙 양로로 내지에 옮기고 고구려에는 빈약자만 두어 안동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구려민으로 離叛者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0072) 따라서 당의 강제 徙民은 평양 부근의 부강자를 抽戶함으로써 抗唐勢力을 제거키 위한 수단이었다.0073) 이러한 당의 강제 사민은 옛 고구려 領內의 고구려인에게 더욱 충격과 동요를 주었고 그것이 劍牟岑의 부흥운동으로 표출되었다는 견해도 있다.0074)

 그러나 백제가 패망하자 부흥군들이 사비성의 외곽지대에서 여전히 항쟁하던 백제군을 주축으로 모여든 유민을 조직하여 백제국 부흥운동을 전개했던 것처럼, 고구려국 부흥운동도 본래부터의 고구려군이 평양의 외곽지대에 산재하면서 일으킨 對唐抗戰의 연속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인들의 부흥운동은 신라의 대당전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6월에 고구려 水臨城人 牟岑(혹은 劍牟:鉗牟岑) 大兄이 遺民을 수습하여 窮牟城으로부터 浿江 南에 이르러 唐의 관리와 僧 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여 서해 史冶島(蘇斧島)에 이르러 고구려의 大臣 淵淨土의 아들 安勝을 만나 漢城으로 맞아들여 君王으로 삼고 小兄 多式 등을 (신라에) 보내어 哀訴하였다. “亡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世代를 잇게 하는 것은 천하의 公義이니 오직 大國(新羅)을 바랄 뿐이다. 我國의 先王은 道를 잃어 멸망을 당하였거니와 지금 臣 등이 본국의 귀족 안승을 얻어 군왕을 삼았으니 (貴國의) 藩屛이 되어 永世토록 盡忠하겠다.” 그리하여 왕은 그를 國西 金馬渚(益山)에 있게 하였다(≪三國史記≫권 6, 新羅本紀 6, 문무왕 10년).

 본래 검모잠은 水臨城의 軍指揮官(酋長)으로 抗唐運動을 전개하면서 궁모성·패강(大同江) 남쪽과 사야도를 거쳐 여기서 안승을 만나 고구려왕으로 추대하는 동시에 한성으로 나와서 신라의 후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망해버린 고구려의 正統을 다시 계승한「高句麗國」을 한성에 수립한 것인데 신라로 망명한 뒤는「報德國」으로 명명되었다. 여기서 한성은 廣州說0075)도 있으나 載寧說0076)이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司馬光의≪通鑑考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實錄 咸亨 元年에 楊昉과 高侃이 安舜(勝)을 討伐하고 비로소 安東都護府를 拔하여 平壤에서 遼東州로 옮기었다(≪資治通鑑≫권 201, 唐記 18, 고종 원년 2년).

 이에 대한 해석의 一說을 좀 장황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이들은 抽戶에 의한 안동도호부의 허술한 틈을 타서 함형 원년(670)초에는 평양을 점령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래 안동도호부의 移轉에 대해서도 儀鳳 원년(676) 遼東古城(遼陽)으로 옮기고 그 이듬해 新城(撫順)으로 옮겼다는 것만 받아들였는데0077) 總章 2년(669) 4월 신성으로 移治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총장 원년 12월에 安東都護로 평양에 주재하던 설인귀가 그 이듬해 4월에 신성에서 1년간 통치하다가 咸亨 원년(670) 4월에 吐蕃征討司令官으로 전임했다.0078) 그런데 그 해 3월에는 신라의 薛烏儒와 고구려 遺將 高延武가 각각 1만씩의 兵力으로 압록강(대동강)을 건너서 唐兵과 싸우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 검모잠의 봉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검모잠 등이 문무왕 9년(669)에 거병하여 그 이듬해초에 평양을 점령했으나 양방·고간 등 당병에 의해 후퇴하는데 이때 신라 설오유가 唐兵驅逐에 나섰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한성(재령)은 당시 신라영토와 평양의 緩衝地였기 때문에 한성의「小高句麗國」再興이 가능했다는 것이다.0079) 위의 고연무는 문무왕 20년 왕의 妹(혹은 金義의 딸)를 안승에게 시집보내자 그 답례로 안승의 奉表를 문무왕에게 전달한 大將軍 太大兄 延武였다. 그런데 검모잠 등이 한성에서 항당운동을 하던 중,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왔다고 하였다.0080)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사이에는 현실을 대처하는 데, 즉 부흥운동에 극한적 이견을 가졌던 것 같으며, 안승이 아직 어린 나이라면 고연무와 검모잠 사이의 대립적 내분일 것으로 추측된다.0081)

 이상과 같이 평양지역에서 고연무·검모잠 등이 고구려국 부흥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자 이에 자극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요동지방에서도 항당운동이 일어났다. 즉 문무왕 11년 7월에는 부흥군이 안시성에서 봉기하여 고간에게 공파당하였다.0082) 그런데≪三國史記≫地理志 끝에 “압록수 이북의 항복하지 않은 11성”이 기록되었는 바, 이들 11성은 고구려가 패망한 668년에 항복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11성 중에 안시성이 들어 있는 점으로 보아서도 확신된다.0083) 이렇게 고간 등이 요동지방의 고구려국 부흥군을 격파하며 한반도로 남하하자 북진한 신라군은 당군에 대한 적극적 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한편 요동지방에서 고구려국 부흥군의 항당운동으로 인해서 儀鳳 원년(676)·2년에 遼陽·新城으로 안동도호부를 옮긴 당 또한 고구려 유민지배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의봉 2년에는 寶臧王을 遼東都督朝鮮王으로 봉하여 신성의 안동도호부에 부임케 해서 유민을 무마케 하였다. 그러나 부임한 보장왕은 오히려 靺鞨과 함께 고구려국 부흥운동을 전개하려다가 공주(邛州)로 유배되었다. 이후 그 손자인 寶元이 嗣聖 2년(685)부터 垂拱 4년까지 朝鮮王으로 봉해졌다가 聖曆 원년(698)에는 忠誠國王으로서 안동도호부 지배지역의 고구려인을 진무하도록 하였다. 이 보원도 고구려국 부흥운동세력과 內通하자 성력 2년에 보원 대신 보장왕의 아들 德武를 안동도호로 파견시켰다.0084) 당의 이 같은 조치는 그것이 비록 안동도호부의 휘하에 있었다 하더라도 당이 고구려인을 무마하기 위하여 세운 또 하나의「고구려」이며 이를 당이 세운「小高句麗」라 해도 좋을 것이다.0085) 이와 같이 당의 강제적 徙民과 자치적 소고구려의 재건에 의한 기미정책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고구려인의 고구려국 부흥·抗唐운동은 여러 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바로 이러한 고구려인의 항당과 독립정신은 渤海國을 수립함으로써 계승·성취되었다.

0072)≪資治通鑑≫권 201, 唐紀 17, 總章 2년(669).
0073)李丙燾,<高句麗 一部遺民에 대한 唐의 抽戶政策>(≪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458쪽.
0074)村上四男,<新羅と高句麗國>(≪朝鮮學報≫37·38합집, 1966), 40쪽.
0075)李丙燾,≪譯註三國史記≫, 103쪽.
0076)池內宏, 앞의 책, 426쪽 및 村上四男, 앞의 책, 43쪽에서 載寧으로 보았다.
0077)≪舊唐書≫권 39, 地理 21 및 池內宏, 앞의 책, 391쪽.
0078)≪舊唐書≫권 196上, 列傳 146上, 吐蕃 上. 그런데 考異에서 引用文에 이어 “儀鳳元年(676) 二月甲戌 以高麗餘衆反叛 移安東都護府於遼東城 蓋咸亨元年(670)言移府者 終言之也”라고 676년의 移治說을 주장한 점은 문제가 된다.
0079)村上四男, 앞의 책, 43쪽. 村上은≪朝鮮古代史硏究≫(開明書院, 1978) 속에서<漢城の小高麗國>을 재정리했으나 기본논지는 같다.
0080)≪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高麗.
0081)≪三國史記≫권 7, 新羅本紀 7, 文武王 11년조 薛仁貴書에서 “高麗安勝 年尙幼冲”이라 했으나 이것을 단순히 나이가 적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高·劍 두 장군이 실질적 지휘자였을 것이므로 나이 적은 安勝을 상징적 王으로 추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三國史記≫권 22, 高句麗本紀 10, 寶藏王 下의 總章 2년(669) 2월에 安勝이 신라로 투항했다는 기록은 史冶島로 망명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또 설인귀와 平壤에 留鎭하던 劉仁軌는 곧 病으로 돌아가서 監修國史로 있었기 때문에(≪新唐書≫권 108, 列傳 33, 劉仁軌) 總章 2년(669)∼咸亨 4년(673)까지의 활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0082)≪資治通鑑≫권 202, 高宗 咸亨 2년.
0083)≪한국사≫권 2(국사편찬위원회, 1977), 523쪽에서 677년까지 11개 성이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 대목은 해석상 주목된다.
0084)≪舊唐書≫권 199上, 列傳 149上 東夷 高麗 및≪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高麗조 참조.
0085)日野開三郞,<小高句麗國の建國>(≪東洋史論叢≫8, 三一書房, 1984), 8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