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0권 발해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3. 발해국의 주민구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1. 발해의 건국
          • 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 (1) 고구려유민의 동향
            • (2) 말갈 부족들의 상태
          • 2) 676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세
          • 3) 대조영집단의 동주와 건국
        • 2. 발해의 발전
          • 1) 대외적 팽창
          • 2) 국가체제의 정비
        • 3. 발해국의 주민구성
          • 1) 요·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
          • 2) ‘토인’과 말갈
          • 3) 발해 왕실의 출자
          • 4) 발해인의 귀속의식
          • 5) 발해국의 성격에 대한 인접국인의 인식
      • Ⅱ. 발해의 변천
        • 1. 발해의 융성
          • 1) 내분의 발생
          • 2) 해동성국의 구현
          • 3) 발해국의 위상
        • 2. 발해의 쇠퇴와 멸망
          • 1) 멸망의 배경
          • 2) 요동의 상실과 멸망
        • 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1) 발해유민의 의미
            • (1) 발해유민과 발해유예
            • (2) 발해국 지배층의 성씨 분포와 그 유민
          • 2) 전기 부흥운동-후발해와 정안국-
          • 3) 후기 부흥운동-흥요국과 대발해국-
            • (1) 대연림의 흥요국
            • (2) 고영창의 대발해국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1. 신라와의 관계
          • 1) 발해 건국기의 남북교섭
          • 2) 발해 왕권확립기의 남북대립
          • 3) 신라 귀족항쟁기의 남북교섭
          • 4) 발해의 영토확장과 신라·당 밀착기의 남북대립
          • 5) 발해 멸망기의 남북교섭
        • 2. 당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양국의 전쟁과 교섭
          • 3) 전쟁의 경과와 신라·발해의 대립
        • 3. 일본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발해와 일본의 신라협공계획과 양국교섭
          • 3) 신라협공계획 무산 후의 양국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조직의 정비과정과 성격
          • 2) 조직의 내용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제도
          • 2) 군사제도
        • 3. 사회·경제구조
          • 1)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토인과 수령
            • (3) 사회생활
          • 2) 경제구조
            • (1) 경제생활
            • (2) 대외무역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불교와 기타 신앙
        • 2. 유학과 한문학
          • 1) 유학
          • 2) 한문학
        • 3. 예술
          • 1) 건축
            • (1) 성곽과 건물지
            • (2) 사원과 탑
            • (3) 고분
          • 2) 미술
            • (1) 회화
            • (2) 공예
          • 3) 음악과 무용
        • 4.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국내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2) 국외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3) 주요 연구 주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발해인의 귀속의식

 727년 일본에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하면서 보낸 국서에서 무왕은 발해가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였고 부여의 遺俗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듬해 일본측에서 발해에 보낸 국서에서는 발해가 “옛 땅을 회복하고 (일본과의) 지난날의 우호적 관계를 이으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078) 759년에는 일본에 弔問使를 보내면서 문왕이 스스로 ‘高麗國王 大欽茂’라고 하였고079) 같은 해에 일본에서 발해에 보낸 국서에서 발해왕을 ‘高麗國王’이라 하였다.080) 渤海使를 高麗使로, 발해국을 고려국으로 표시한 예는≪續日本紀≫에서 여러 군데 보인다. 비단 사서뿐 아니라 平城宮 출토의 木簡에서 발해사를 고려사로 기술한 것이 보이며, 763년에 쓰여진 東大寺의 고문서에서도 발해인을 고려인으로 기술하였다.081) 이처럼 일본과의 교섭에서 발해왕실은 발해가 고구려 계승국이라는 입장을 취하였고, 일본측에서도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이라고 일반적으로 널리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지녀왔던 것은 발해 조정의 표방뿐 아니라 발해를 방문한 일본 사신의 견문과 일본에 간 발해 사신과의 접촉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발해인의 역사계승의식을 검토할 때 발해가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고구려 계승국임을 표방하였으나 당과의 교섭에서는 그런 면을 일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당과 발해간의 교섭에서 고구려 계승이란 이미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에게 고구려라는 나라는 두려움을 주는 勁敵이었다. 그러한 인상을 발해가 새삼 불러일으켜 적대감을 야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발해와 당 사이의 교섭이 열린 8세기 전반에는, 당이 정책적으로 고구려의 왕손을 고려조선군왕으로 봉하여 당의 수도에 幽居시켜 두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표방한다는 것은 발해의 외교적 위치만 약화시킬 뿐이었다. 발해 조정이 이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에 보낸 발해 사신에는 고씨가 많았던데 비하여, 8세기에 당에 파견한 사신에는 고씨가 없고 대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발해 전 시기를 통하여 발해인이 스스로 말갈족의 후예라고 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792년 발해가 당에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 사절단의 대표인 楊吉福이 띠고 있었던 발해의 관직명이 ‘押靺鞨使’였다.082) 이 관직명은 곧 말갈을 관할하는 직책이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이 때의 말갈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관직명을 통하여 당시 발해 조정이 말갈족에 대하여 어떤 동족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발해 왕실과 그 중심 족속이 말갈족이었다면 발해 건국 후 백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그러한 관직명을 사용하였다고 상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발해국 주민이 남긴 무덤양식을 살펴보면, 토광묘와 석실봉토묘 및 벽돌무덤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토광묘는 말갈계의 무덤양식이다. 발해의 중심지였던 목단강과 해란강 유역 등에는 다수의 석실봉토묘가 있다. 敦化의 六頂山고분군에는 문왕의 딸인 貞惠公主墓를 포함하여 발해 초기의 왕실과 귀족층 무덤이 몰려있는데 모두 석실봉토묘이다. 발해 초기 지배층의 무덤양식이 고구려계의 석실봉토묘라는 것은 이들의 족속 계통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벽돌무덤은 발해 중·후기에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발해의 벽돌무덤인 정효공주묘에 그려진 벽화도 唐風이 짙게 배여 있다. 이는 발해의 지배층이 당의 문화를 적극 수용한 데 따른 변화이다.083)

 발해인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발해유민들 사이에서도 보인다. 서경 압록부에 근거를 둔 발해유민의 나라인 定安國의 왕이 여진 사신 편에 부쳐 송에 보낸 국서에서 자국의 내력을 ‘高麗舊壤 渤海遺黎’라고 하여084),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계승의식을 표방하였다. 이 밖에 요대에 요동지역에 거주하던 발해인 중 유력 가문인 遼陽 張氏와 熊岳 王氏 등도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다.085)

 이러한 발해인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발해사회의 주민구성이 土人과 말갈로 이루어진 이중성으로 초기부터 나타났고, 발해 멸망 후에는 그 주민이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존재양태를 지녔던 사실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보다 확실한 이해를 가지게 해준다. 즉 대조영집단이 말갈족이냐 아니면 속말수 유역의 변경의 고구려인이었느냐에 대해 발해 왕실 스스로의 표방으로 보아 후자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로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高麗別種’인 발해 왕실이 건국 후 고구려인과 결합하여 그들이 중심이 된 사회를 건설해 나갔느냐 아니면 말갈족과 결합해 나갔느냐는 문제이다. 그 점에서는 전자 쪽임이 명백하다. 설사 대조영의 먼 조상이 말갈계였을 경우를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대조영 자신이 고구려의 무장이었으며, 건국 초기부터 보이는 발해 왕실의 귀속의식과 주민구성 및 그와 연결된 지배구조를 살펴볼 때, 대조영은 고구려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점은 金의 왕실인 完顔家의 경우가 좋은 참고가 된다.

 금의 왕실인 완안가의 시조 전승에 의하면 그 선조는 고려인이었다고 한다.086) 북중국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한 후에도 그러한 시조 전승은 금 왕실에 의해 인정되었다.087) 그 男系上의 시조가 고려인이었다고 하지만, 금국 성립 당시 완안가는 엄연히 여진인이었고 그들이 취한 방향과 그 세력기반도 여진인이었다. 오늘날 누구도 금 태조 阿骨打를 고려인이라고 하는 이는 없다.

 이상의 검토를 통하여 앞에서 제기한 ‘토인’의 성격에 대한 문제는 보다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토인은 고구려계 인과 영주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온 말갈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중심이 된 집단은 전자이며 후자가 그에 융합되어 들어가는 형태로 토인, 즉 발해인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후자가 이미 고구려 존립 당시부터 상당히 고구려화되었고 또 영주에서의 유거생활과 東走 과정을 통하여 고구려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양자는 보다 용이하게 융합될 수 있었고, 발해 건국 초기부터 말갈과 구분되는 ‘토인’이라 지칭되는 하나의 족속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발해국의 진전에 따라 일부의 말갈족이 토인에 동화되어 융합되어 갔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발해국은 고구려 계승국의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발해국의 성격이 고구려와 같을 수는 없다. 시대와 무대가 다른 만큼 양자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계승이란 이어서 변화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발해국이 고구려 계승국의 성격을 지녔던 사실은 당시 발해에 대한 그 인접국 사람들의 인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078)≪續日本紀≫권 10, 聖武天皇 神龜 5년 4월 임오.
079)≪續日本紀≫권 22, 淳仁天皇 天平寶字 3년 정월 경오.
080)≪續日本紀≫권 22, 淳仁天皇 天平寶字 3년 2월 무술.
081)石井正敏,<日渤交涉における渤海高句麗繼承意識について>(≪中央大學大學院硏究年報≫4, 1975) 참조.
082)≪唐會要≫권 86, 渤海.
083)정영진,<발해무덤연구>(≪발해사연구≫1, 연변대학 출판사, 1990) 참조.
084)≪宋史≫권 491, 列傳 250, 外國 7, 定安國.
085)盧泰敦, 앞의 글.
086)金庠基,<金의 始祖>(≪東方史論叢≫, 서울大 出版部, 1974) 참조.
087)≪金史≫권 66, 列傳 4, 完顔勗 및 권 107, 列傳 45, 張行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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