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1. 고려의 건국과 호족1) 호족세력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1. 고려의 건국과 호족
          • 1) 호족세력의 동향
            • (1) 호족의 개념과 성격
            • (2) 신라 말기 호족의 동향 모
          • 2) 왕건의 즉위와 후삼국의 통일
            • (1)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즉위
            • (2) 왕건 즉위 초 호족의 동향
            • (3) 후삼국의 통일
          • 3) 태조의 여러 시책
            • (1) 대내정책
            • (2) 대외정책
          • 4) 태조의 정치이념과 사상
            • (1) 고구려 계승이념
            • (2) 불교사상
            • (3) 풍수지리사상
            • (4) 유교사상
        • 2. 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
          • 1) 혜종대의 호족과 왕권
          • 2) 정종의 왕위계승과 왕권의 동향
          • 3) 광종과 경종의 왕권강화책
            • (1) 광종대의 왕권강화
            • (2) 경종대의 정치와 호족
          • 4) 호족 연합정권설의 문제
            • (1) 호족 연합정권설과 그 비판
            • (2)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
            • (3) 고려 초기의 정치형태
        • 3. 고려 귀족사회의 성립
          • 1) 성종대 지배체제의 정비
          • 2) 중앙집권적 귀족정치의 이념과 최승로의 시무책
          • 3) 정치적 지배세력의 상황과 성격
        • 4. 고려사회 지배세력의 성격론
          • 1) 관료제 및 가산관료제설과 그에 대한 비판
          • 2) 귀족·귀족제의 개념
          • 3) 귀족제사회설의 논거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 시련의 극복과 체제의 정비
          • 1) 목종·현종대의 시련과 정비
          • 2) 문종의 체제정비와 전성
            • (1) 전시과의 갱정과 녹봉제
            • (2) 개성부와 경기 및 귀족중심 사회
            • (3) 법제와 경제유통
            • (4) 불교의 흥성
            • (5) 유교와 사학 및 도서출판
            • (6) 풍수지리 사상과 현실작용
            • (7) 대외문물 교류
        • 2.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 1) 이자의의 난과 숙종의 즉위
            • (1) 이자의의 난과 그 사상
            • (2) 숙종의 즉위 과정과 그 성격
            • (3) 왕권강화 정책과 그 의의
          • 2) 귀족사회 내의 갈등과 이자겸의 난
            • (1) 예종대 정국의 추이
            • (2) 인종의 즉위와 이자겸의 난
          • 3) 서경천도 운동과 묘청의 난
            • (1) 이자겸의 난 이후 정국의 추이
            • (2) 서경천도 논의의 전개와 묘청의 난
          • 4) 의종대의 정치혼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신라 말기 호족의 동향 모

新羅는 8세기 후반기부터 진골 귀족사회가 사치와 부패에 빠지게 되어 안으로는 중앙귀족의 왕위쟁탈전이 격심하게 전개되므로 인하여, 惠恭王 4년(768)부터 定康王 2년(887)까지 100여 년 동안에 宣德王·憲德王·僖康王·閔哀王·神武王 등 무려 20여 차의 정치변란이 일어났으며, 밖으로는 金憲昌·梵文·張保皐 등 불평귀족과 軍鎭勢力家의 반란이 속출하는 등 지배계급의 분열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한편 지방에서는 중앙정권에서 떨어져 나온 귀족이나 또는 지방의 세력가들이 불교사원·해외무역·군진세력 등을 배경삼아 豪族으로 성장하여 반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중앙집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고 지방분권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현상은 眞聖女王(887∼897) 때에 이르러 급속히 확대되어 신라는 전국적이고 항구적인 내란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려 들어 가게 되었다.

즉 신라 제51대 왕인 진성여왕은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고 간신배를 가까이 하여 이들에게 국정을 맡기었으므로 국가재정을 좀먹었으며 또 뇌물이 성행하고 관리의 등용이 공정치 못하여 정치가 극도로 어지러워지게 되었다.

여기에다 흉년으로 기근까지 들게 되니 백성이 유리하고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민심이 동요되고 지방의 여러 州郡에서는 조세를 내지 않아 국가재정이 궁핍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조세의 납부를 독촉하였으나 이미 중앙정부의 명령이 지방에서 시행될 수 없었다. 지방에서는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에 저항하여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전국적인 내란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농민이었다. 농민들은 훨씬 전부터 과중한 조세의 부담과 가혹한 力役의 징발 때문에 이미 신라의 전성시대로부터 流亡의 경향이 있었던 것인데, 그들은 또 귀족들의 퇴폐적인 향락생활과 국가기강의 해이로 말미암아 과중한 부담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이들 압박에 시달린 농민들은 流民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다니거나 세력있는 귀족들의 莊園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私兵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하였고 또 때로는 무리를 지어서 도적이 되어 질서를 교란시켜 왔었다. 그러던 중 중앙정부의 조세 독촉을 계기로 하여 진성여왕 3년(889) 沙伐州(尙州)에서 일어난 元宗과 哀奴의 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잇달아 반란이 일어남으로써 신라의 지배체제는 완전히 무너져서 전면적인 내란상태로 들어 가게 되었다.007) 각지의 수많은 반란세력 가운데 두드러진 세력은 사벌주의 원종과 애노, 竹州(安城의 竹山)의 箕萱, 北原(原州)의 梁吉, 完山州(全州)의 甄萱, 鐵圓(鐵原)의 弓裔로서 이들은 모두 농민의 불만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다.

한편 신라정부는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군을 진압할 정규군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지 이미 오래였으므로 지방의 각 군현에서는 스스로 이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리하여 郡太守나 縣令들은 독자적으로 사병을 길러서 城主 혹은 將軍이라 칭하고 점점 중앙정부의 명령계통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띠게 되었으니, 이에 그들은 신라정부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거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라를 배반하고 반란군과 결합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008) 이로부터 신라는 지리멸렬의 혼란상태에 빠지고 약 50년에 걸친 내란기가 시작되게 되었다.

원종·애노·기훤·양길 등의 세력은 아직 지방의 한낱 반란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속에서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여 신라와 대항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견훤과 궁예의 세력이었다. 견훤과 궁예는 각각 주위의 대소 반란세력들을 병합하고 점차 자신들의 세력을 성장시키어 마침내 後百濟와 泰封을 건국하게 되었던 것이다.

甄萱은 尙州 加恩縣의 농민출신이었다. 본래의 姓은 李氏였는데 뒤에 甄氏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 그는 체구가 크고 유달랐으며 의기가 충만하여, 군인이 되어 서남해 방면에서 싸울 때에는 용감하게 항상 다른 군사에 앞장섰으므로, 그 공로에 따라 裨將이 되었다. 그러다가 진성여왕의 失政과 기근으로 백성이 유리하고 도적이 봉기하자, 견훤은 큰 뜻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남지방의 주현을 쳐서 반란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009) 한편 弓裔는 신라 憲安王의 庶子로서 姓이 金氏인데 어떠한 사정에 의하여 죽게 된 것을 유모가 안고 도망가서 몰래 길렀는데 이 사건 때에 실수로 한 눈이 멀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정권 다툼에 희생되어 지방으로 몰려난 자였던 것 같다.010)

이와 같이 견훤이나 궁예는 모두 신라계통 출신이므로 두 사람이 高句麗나 百濟의 전통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견훤과 궁예는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였는데 이제 그 배경에 대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말한 여러 반란세력 중에서 뚜렷한 것들은 대부분이 신라의 외곽지대인 경기·강원·충청·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하였는데, 이들 외곽지대는 이 때에 이미 신라의 통치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었다. 또 이들 지방은 과거 三國時代에는 주로 고구려·백제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 고구려·백제의 판도였던 이들 외곽지대의 주민 구성은 당연히 고구려·백제의 遺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고구려 백제의 전통이 농후하게 잔존하고 있었던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後百濟의 영토가 과거 백제의 영토와 대체로 일치되며, 泰封의 영토가 대부분 과거 고구려의 영토내에 존재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견훤이나 궁예가 백제나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고 (後)百濟와 (後)高句麗를 건국한 사실과도 부합된다.

다시 말하면 이 때에 경기·강원도 이북 지방에서는 고구려 부흥의 기운이, 전라도·충남 지방에서는 백제 부흥의 기운이 강력하게 유행하고 있어서 이들 지방에는 어떠한 문제보다도 백제나 고구려 부흥의 표방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고구려 유민이나 백제 유민이 신라정부의 실정과 차별 대우에 대하여 품고 있는 반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인 배경이 견훤과 궁예로 하여금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표방하고 後百濟와 後高麗(泰封)를 건국하게 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성여왕 3년(889)에 일어난 전국적인 반란에 의해 신라의 지배체제가 무너져 내리자, 각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그 지역을 지배해 온 지방세력가들은 자신들의 군사적·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자기들의 통치기반을 구축하고,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신라의 통치질서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세력으로 성장해 나갔다. 특히 내란 초기에는 신라의 수도 慶州로부터 떨어진 행정의 중심지인 小京과 州의 핵심관료나 군사지역의 지휘관들 그리고 서남해 일대에서 중국과의 사적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호족세력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지역별로 우세한 세력가들이 등장함에 따라 주변의 豪族들이 자신들의 세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유력한 호족에게 귀속되어 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각 지방에서 일정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정치·군사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세력가인 호족들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지방의 토지와 백성을 장악하고 그 곳의 통치권을 행사하던 독립적인 세력으로서, 특히 後三國時代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인 관계를 자유로이 하였다. 그러나 견훤에 의해 孝恭王 4년(900) 백제의 부흥을 내걸고 (後)百濟가 세워지고 궁예에 의해 신라의 타도와 고구려의 부흥이 표방되며 (後)高麗가 건국된 효공왕 5년(901)을 전후로 하여, 각 지역의 호족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역적인 연고관계에 의해 후백제의 견훤이나 (후)고려의 궁예와 연합하거나 귀부하였다.

007)≪三國史記≫권 11, 新羅本紀 11, 眞聖王 3年.
008)≪三國史記≫권 50, 列傳 10, 弓裔.
009)≪三國史記≫권 50, 列傳 10, 甄萱.

≪三國遺事≫권 2, 紀異 2, 後百濟 甄萱.
010)≪三國史記≫권 50, 列傳 10, 弓裔. 그런데≪三國史記≫弓裔傳에서는 “或云四十八景文王膺廉之子”라 하여 궁예의 경문왕 아들설이 있음을 기록하였고 또≪帝王韻記≫도 “羅王景文生庶子”라 하여 이 설에 따르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