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1. 불교사상의 전개
          • 1) 나말려초의 교종과 선종
            • (1) 왕건의 선대 세력과 선종
            • (2) 왕건과 승려의 결합
            • (3) 4무외사와 그들의 선사상
            • (4) 나말려초의 화엄결사
          • 2) 광종대의 불교통합운동과 천태학의 연구
            • (1) 광종대의 불교통합운동
            • (2) 천태학의 연구
          • 3) 현종대 이후 화엄종·법상종의 대두와 불교계의 모순
            • (1) 귀족불교의 융성
            • (2) 불교계의 모순
          • 4) 대각국사 의천의 불교개혁운동과 천태종의 창립
            • (1) 당시의 동아시아 불교
            • (2) 고려 불교계의 동향
            • (3) 의천의 행적과 연학
            • (4) 불교개혁운동과 천태종 개창
          • 5) 승관조직과 승과제도
            • (1) 승관조직
            • (2) 승과제도
        • 2. 대장경의 조판
          • 1) 초조대장경의 조판
            • (1) 조판의 동기 및 착수시기
            • (2) 조판의 경위 및 규모
            • (3) 초조본의 특성
          • 2) 속장의 조판
            • (1) 조판의 동기
            • (2) 장소 수집 및 조판 경위
            • (3) 전래본
            • (4) 속장의 특성
        • 3. 불교행사의 성행
          • 1) 불교행사의 유형과 전개
            • (1) 불교행사 성행의 시대적 배경
            • (2) 불교행사의 유형
            • (3) 불교행사의 전개와 의례적 구조
          • 2) 항례적인 불교행사
            • (1) 연등회
            • (2) 팔관회
            • (3) 인왕백고좌도량
            • (4) 장경도량
            • (5) 보살계도량
            • (6) 축수도량 및 기신도량
            • (7) 담선법회
          • 3) 각종의 도량
            • (1) 화엄경도량
            • (2) 반야경도량
            • (3) 법화도량
            • (4) 금광명경도량
            • (5) 약사도량
            • (6) 제석도량
            • (7) 신중도량
            • (8) 공덕천도량
            • (9) 소재도량
            • (10) 문두루도량
            • (11) 불정도량
            • (12) 마리지천도량
            • (13) 관정도량
            • (14) 기우도량
          • 4) 반승과 재회
          • 5) 향도조직
            • (1) 향도의 기원
            • (2) 고려 전기 향도의 조직과 활동양상
            • (3) 고려 후기 향도의 변화
        • 4. 사원의 경제 활동
          • 1) 사원경제의 배경
            • (1) 정치적 배경
            • (2) 종교적 배경
          • 2) 사원전의 확대와 경영
          • 3) 사원의 수공업
          • 4) 사원의 상행위
      • Ⅱ. 유학
        • 1. 유학사상의 정립
        • 2. 유학사상의 발전
        • 3. 유학사상의 실천적 전개
          • 1) 오행설과 천인합일설
            • (1) 오행설과 정치
            • (2) 유교정치이념과 월령
            • (3) 천문관과 유교사상
          • 2) 효와 예
            • (1) 5륜과 5교
            • (2) 윤리와 법
            • (3) 유교의 실천윤리
            • (4) 5례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 도교사상
          • 1) 고려 도교의 수용과 전개
            • (1) 고려 초기의 도교
            • (2) 북송 도교의 수용과 복원궁 건립
            • (3) 과의도교의 체계화와 도교의례
            • (4) 도관 건립의 증가
          • 2) 도교사상의 전개
            • (1) 도교사상의 확산
            • (2) 재초청사의 도교이념
            • (3) 도교신앙과 그 사상
        • 2. 풍수지리·도참사상
          • 1) 풍수지리설과 도선
            • (1) 풍수지리설의 정의와 기원
            • (2) 도선과 도선식 풍수사상의 특징
          • 2) 풍수지리·도참사상의 추이
            • (1) 고려시대 풍수사상의 특성
            • (2) 서경천도운동
        • 3. 민속종교
          • 1) 고려시대 민속종교 이해의 문제점
          • 2) 민속종교의 신 관념
            • (1) 천신
            • (2) 산신
            • (3) 성황신
            • (4) 수신
            • (5) 기타
          • 3) 민속종교의 의례
            • (1) 치병
            • (2) 기우제
            • (3) 점복
            • (4) 기복제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개요

 나말려초 고려국가의 성립 기반이었던 고대 신분체제의 폐기와 수취체제의 개혁을 중심으로 한 사회전환에 상응하여 사상계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사상계의 주요한 변화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첫째 신라 말기의 崔致遠·王居仁 등을 비롯한 경주 6두품 신분의 지식계급이 등장하여 유교사상의 입장에서 진골귀족 중심의 독점적인 지배체제와 역대 정치의 문란을 비판하면서부터 유교가 새로운 정치와 사회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불교계의 변화로서 고대 진골귀족이 가졌던 族的 관념에 대항하는 지방의 호족세력이 일어나는 것에 상응하여 교종 중심의 불교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서 선종이 새로 대두되어 불교계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한 것이었다. 그 다음 셋째는 호족세력에 그 지방의식의 성장을 자극하는 것이며, 그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풍수도참설이 선종의 대두에 부수되어 새로 유행하여 사회변화의 추진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방 호족세력과 경주 6두품세력이 주체가 되어 성립한 고려에 들어와서는 정치적인 혼란이 수습되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이 모색되면서 신라시대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그리고 보다 확대된 정신세계를 발견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먼저 유교에 있어서는 고려 건국의 주체세력이었던 지방 호족세력의 진출과 참여를 가능케 하는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에 따라 그 운영원리로서 신라시대의 족적 관념 대신에 새로 유교정치사상체계를 수립케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의 사상계는 불교와 함께 유교가 2대 주류를 이루어 공존을 모색하고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다음 불교계에 있어서는 신라시대의 사상사적 과제가 주로 교학면에서 대승불교의 2대 조류인 中觀學派와 唯識學派의 통합 문제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시대에는 그 교종(이론체계)과 선종(실천방법)의 조화 문제가 새로운 중심과제로 대두된 것이었다. 고려 불교사는 실로 교·선 대립의 극복과정이라고 할만한 것으로서 여러 단계의 시도를 통해서 신라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불교사상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그 다음 풍수도참설은 나말려초의 사회적인 전환기에 國土再計劃案의 성격까지 가져 마침내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경주의 위치를 약화시키고, 개경으로의 문화 중심의 이동과 각 지방의 문화밀도를 평준화하는 구실까지 함으로써 고려 건국의 타당성을 부여하였고, 나아가 고려 문화의 기반을 크게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의 사상사적 과제는 중앙집권체제의 수립에 상응하여 그 운영원리로서의 유교정치사상의 성립과, 그리고 난립된 불교교단의 정비와 사상의 통일이었다. 먼저 유교정치사상에 관해서는 일찍이 태조 때에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유교사상에 입각한 국가운영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국가운영의 주체로서 유교적인 지식계급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은 광종 때의 과거제도의 설치를 통하여 비로소 마련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종 때에 서적을 수집하고 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함으로써 유교정치이념의 실천을 담당할 수 있는 지식계급을 양성시키면서 유교정치이념이 성립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진전은 전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 스스로 새로운 사회를 개척하여 온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성종 때 활약한 崔承老는 유교정치이념에 입각하여 정치질서·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개혁안으로 「時務二十八條」를 올려 그 대부분이 채택되어 실행을 보게 되었다. 그 개혁안에 의하면 최승로는 정치운영에 있어서 불교의 영향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유교사상에 의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교사상을 받아들임에 있어 고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진적인 정치와 사회의 운영원리로서만 이해하면 족한 것이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고려의 생활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따를 것을 말하였다. 또한 중국에 대한「事大」라는 것도 외교적인 예의로 생각하는 데 그쳤으며, 정신적·문화적으로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초기의 학풍도 對契丹戰爭 이후에 와서는 문벌귀족세력의 성립과 함께 지배세력 안에 파벌성·계층성의 차이가 심화되면서 점차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거란과의 전쟁이 일단 끝난 뒤에 와서 지방 호족세력의 참여와 전통적인 북진주의를 그대로 주장하던 세력들은 밀려나고, 중앙집권체제의 안정과 기성집권세력의 안전만을 위주로 하던 외척과 문신 등의 일련의 세력이 주도하게 됨에 따라 초기의 진취적인 학풍은 퇴색되고 차차 보수적인 성격을 띠어 유교정신을 강조하기보다는 귀족사회의 안일함만을 찬미하는 한문학이 성하여 갔다.

 대표적인 외척세력으로 등장한 仁州 李氏와 결탁한 崔冲은 문종 당시에 문신으로서의 영도자적인 위치에 있었고, 그의 유학의 학문 수준도 대단히 높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 초기의 유학이 지방출신의 신지식계급의 진출을 장려하는 성격을 가졌던 것에 반하여 최충의 유학에 와서는 여러 가지 신분상의 조건에 제한을 가하여 지방출신의 진출을 억제하고 지배계급의 자기도태를 시작하여 중앙 문벌귀족세력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동조하였고, 그 대변자적 구실을 하는 보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가 정년으로 퇴직한 뒤 九齋學堂이라는 사학을 세워 학도들을 가르치자, 다른 학자들도 이에 따라 많은 사학을 일으켰으므로 사학 12도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귀족들의 문벌 존중의 풍조에 따라 사학은 크게 융성하였고, 그들은 각기 학벌을 형성하여 귀족세력을 더욱 강화하는 구실을 하게 하였다. 사학은 유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여 성리학에서 비로소 중시하는 心性의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었으나 성리학을 수용할 수 있는 신진세력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그 이상의 발전을 보지는 못하였다.

 한편 사학의 융성은 상대적으로 국가가 직접 교육을 관할하는 능력을 그만큼 약화시켜 관학의 부진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국가에서는 관학진흥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숙종 때에는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국자감에 書籍舖를 두어 서적의 간행에 노력하였고, 예종 때에는 사학에 밀리고 있는 관학을 부흥시키려고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齋라는 전문강좌를 설치하였다. 이 관학 7재는 최충의 9재를 모방한 것으로 과거시험 준비기관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또 예종은 養賢庫라는 일종의 장학재단을 설치하여 관학의 경제기반을 강화하였고, 궁내에 淸讌閣과 寶文閣의 학문연구소를 설치해서 學士를 선발해서 충당하고 도서를 수집하여 經史를 연구케 하였다. 그리고 인종 때에 와서는 京師 6學과 鄕學의 제도를 세워 지방에까지 관학의 교육기관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학자로는 金仁存·朴昇中·金富軾·尹彦頣·鄭知常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도 경주계 인물들인 김인존·김부식 등은 예종 때 尹瓘의 九城役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한편으로는 윤관 세력에 대한 경쟁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주 이씨세력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서 등장하여, 먼저 정지상 계통과 합세하며 李資謙을 타도하고, 그 뒤에 金에 대한 사대를 주장하면서 묘청·정지상 등의 서경천도운동을 저지하고 그들의 영도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김부식 등의 유학 수준은 당시를 영도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들은 유교를 國家治國의 正道로 내세웠고, 군주와 관료들에게 도덕적 수양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유학의 사회적 성격은 점차 사대와 보수의 성격을 드러내어 귀족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인종 때에 김부식이 유교 사관의 입장에서 편찬한≪三國史記≫도 전통적 문화체질과는 거리가 먼 사대적이고, 보수적인 당시 유학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신라 하대 선종이 새로 성립되면서 시작된 敎·禪의 사상적 대립은 고려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기에서의 불교계의 일차적인 문제는 난립된 불교 교단의 정비와 함께 그 사상의 통일이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계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사람은 고려 4대 왕인 광종이었다. 광종은 당시의 불교계를 교종과 선종으로 양립시켜 교종은 華嚴宗 중심으로 정리하고, 선종은 새로 중국에서 法眼宗을 도입하여 난립된 선종 각파를 정리하려고 하였다.

 먼저 화엄종에서는 개경에 歸法寺를 새로 세우고 均如를 주지로 앉혀서 그를 통하여 후삼국시대 이래 南岳派와 北岳派로 분열되었던 화엄종단을 통합하고 아울러 화엄종의 교리체계를 재정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 선종의 일파인 법안종에서 교선일치를 내세우고 있던 것에 주목하여 法眼 文益의 문하에 있던 惠居를 귀국시켜 선종교단을 영도케 하고, 智宗 등 36명의 젊은 승려를 선발하여 吳越에 유학시켜 永明 延壽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하였다. 광종은 또 법안종의 후원과 함께 天台學에도 유의하여 諦觀을 오월에 파견함으로써 오히려 침체되었던 중국의 천태종을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광종 때의 이와 같은 사상적 노력은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로서 고려 불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광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경종대의 반동정치에 의한 탄압과 성종대의 소극적인 불교정책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뒤 현종대 이후에 가서는 교종 계통의 法相宗이 새로 대두하여 화엄종과 함께 불교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종파는 각기 왕실과 귀족세력에 연결되어 대립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대립은 그대로 1백 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러한 때에 義天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일대 불교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性相兼學을 내세우면서 화엄종의 입장에서 법상종 교단을 억압하여 교종을 정리하고, 나아가 敎觀幷修를 주장하면서 새로 천태종을 개창하여 선종을 포섭함으로써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의천은 당시의 대문벌귀족인 인주 이씨세력과 연결된 법상종 교단 측의 공격을 받아 한때 지방으로 밀려나기도 하였으나, 인주 이씨세력을 억압하고 즉위한 숙종의 후원으로 숙종 2년(1097) 國淸寺가 창건됨으로써 한국의 천태종을 창립하였다. 의천에 의한 천태종의 창립은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종파의 창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敎 9山으로 분열 대립되었던 전불교 교단을 재편하는 것이었고, 또 교·선의 대립을 극복하는 사상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천의 교선통합사상은 절충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천태종의 창립은 결과적으로 선종 교단을 天台宗과 曹溪宗으로 양분시키는 데 그쳤다. 그리고 또한 왕실 출신인 의천으로서는 당시의 사원들이 귀족들의 願堂으로서 재산도피나 정권싸움의 수단이 되고 있었던 불교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귀족불교를 끌어내려 대중화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당시 고려의 불교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불교철학이나 사상의 이해는 지배세력인 지식계층에 국한되었고, 일반백성들은 미신적인 정신세계에서 의연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의 불교신앙은 민속종교의 기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왕실과 귀족층의 절대적인 신앙이 되었고, 아래로는 농민이나 노비들의 뜨거운 종교적 열정을 만족시켜 주는 한편, 그 종교적 행사까지도 거의 국가적인 규모의 것으로 되어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불교교단을 유지하고 국민 교화의 효과를 거두어 나가는 데는 막대한 경제적 뒷받침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승려들은 과거제도의 시행에 따라 창설된 승과를 거쳐 법계와 승직을 받고, 국가로부터 토지를 급여받았으며, 또 역의 의무에서 면제되었다. 이리하여 승려의 수는 늘어가는 형편이었고, 왕자나 귀족의 자제들 가운데도 승려가 되는 자가 많았다. 사원은 신라시대부터 물려받은 적지않은 寺有財産에, 다시 고려에 들어와서 왕실과 귀족의 기진, 농민들의 투탁, 토지의 겸병 등의 방법으로 그 소유지를 확대하여 갔다. 이 사원전은 면세의 특전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원은 더욱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갔다. 사원은 이와 같이 획득한 광대한 토지를 경작하기 위하여 막대한 수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밖에 양인신분으로 승려가 아니면서 사원에 예속된 사람의 수효도 적지않았다. 사원은 국가에서 주어진 특권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그 소유지로부터 들어오는 수입으로 長生庫·佛寶 등의 고리대자본을 형성하여 이자놀이를 하였다. 또 양조·목축·상업 등의 방법으로 그 부를 늘려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원의 경제력의 증대는 국가의 경제기반을 축소시키고 일반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막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대장경의 간행과 같은 거대한 문화사업과 빈민의 구제, 서민층에 대한 의료사업과 같은 사회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결부된 풍수도참설이 크게 유행하여 일반 백성들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 왕실이나 중앙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정치적 대립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신라 말기의 선승인 道詵에 그 연원을 두었던 풍수도참설은 풍수지리설과 불교가 복합된 비보사탑설 및 國都의 선정과 관련된 地德衰旺設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일찍이 태조대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태조의「訓要十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찰 창건에서의 위치 선정이라던가, 끝까지 반항하던 후백제의 옛땅을 背逆處로 규정한 것 등에서 풍수도참설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훈요 10조」에서의 서경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설명과 그 중요성의 강조는 그 뒤 줄곧 북진정책의 하나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것이며, 때로는 유교정치이념의 보수화에 반발하면서 정치·군사면에 크게 영향을 미쳐 개경세력과 서경세력의 정치싸움에 이용되었다. 인종 때의 서경 천도설을 둘러싸고 일어난 묘청의 난은 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고려 중기에 와서는 북진정책의 좌절과 아울러 서경 대신에 새로 남경, 즉 지금의 서울 일원에 대한 풍수지리설이 대두하여 고려가 망할 때까지 자주 정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남경에 대한 풍수지리설은 서경에 대한 그것과는 달리 한강이 지닌 인문지리에서의 가치가 점차 중요성을 띠게 된 반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시대의 민속종교에서 무속은 매우 우세하였다. 국가의 각종 의례나 종교적 행사에서 유교와 불교의 의식 이외의 巫俗行事도 공적으로 수행되었던 만큼 일반백성들의 신앙생활에서 무속이 차지했던 비중도 클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에서 排巫論이 일어나고 禁巫政策이 시행된 것은 말기에 이르러 성리학을 기치로 내세운 사대부세력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고려에서는 태조 이후 山·河·海·井 등 자연을 국가나 군사의 수호신으로 숭상하고 그것을 擬人化하여 이른바 神祗加號, 즉 신의 이름을 붙이고 때로는 벼슬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역대 왕들은 궁중의 종교적 행사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무속에 의하여 개설하고 있었다. 무당을 불러 비를 빌고, 산신들에게 전쟁에 이기기를 기원하고, 아기를 빌고, 혹은 병이 나아지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민간에서도 거의 집집마다라고 해도 좋을만큼 수호신으로서 무교적 신을 모신 神祠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마을 단위로는 서낭굿·堂굿·堂山굿·山神祭 등의 이름으로 공동제의가 베풀어지고 수호신이 모셔졌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致祭된 것은 朱蒙의 어머니인 柳花를 모신 東明神祠, 개경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진 崧山神 등으로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려 왕실의 祖靈 가운데 시조인 聖骨將軍 虎景은 山神祠(虎景祠)에 모셔진 산신으로, 태조의 할머니인 龍女는 井祠(開城 大井)에 모셔진 龍神으로 국가적인 숭앙대상이 되고 있었다.

 한편 전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으로서 성행되었던 무속은 불교·도교와 더불어 병존하면서 일면 혼합되고 있었다. 태조의「훈요10조」에서 八關會가 天靈과 五嶽·名山·大川·龍神을 섬기는데 뜻이 있다고 한 바와 같이 무속의 자연숭배신앙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불교와 仙風을 받아들여 일체화시킨 종합적인 종교행사였으며, 문화제였던 것이다. 묘청이 인종을 설득하여 서경에 세웠다는 이른바 八聖堂에 모셔진 神格들도 무속적인 자연숭배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름과 신선의 이름, 불보살의 이름 등이 복합되어 있어, 무·불·선 합일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崔柄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