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제관의≪천태사교의≫
오월왕 전숙의 요청으로 중국에 들어간 諦觀은「同除四住」의 뜻을 해설하기 위해≪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그는 圓敎를 밝혀서 그 속에서「동제사주」의 뜻을 부각시켰다.072)「四住」는 一切處地·欲愛住地·色愛住地·無色愛住地인데, 그 각각의 경지를 모두 같은 것으로 본 데에 제관사상의 독특한 면이 있다. 4주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이미≪永嘉集≫속에 나와 있었으나, 중국 천태종에서는 그것이 중요시되지 않았던 것을 제관이 주목했던 것이다. 또 一切處와 欲·色은 藏敎로서 三乘敎에 속하지만 無色은 一乘敎에 속하게 되므로, 제관의 사상은 궁극적으로「會三歸一」의 논리로 전개되었다.073)
제관은 중국에 들어가 천태종 12대 교조인 義寂의 문하에서 10년 동안 머물다가 입적했는데,≪천태사교의≫는 이 기간 중에 쓰여졌다. 그는 일찍이≪천태사교의≫를 저술하여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고 했으므로,074) 적어도 그것은 그의 입적에 가까운 시기가 아니라 중국으로 들어가 곧 저술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천태사교의≫를 저작한 제관의 학문적 식견은 이미 고려 사회에서 길러진 셈이다. 제관은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생의 마지막 10년을 중국에서 보내기까지 고려에서 활동했다. 아마 그는 만년에 중국에 들어갔으며, 가장 원숙한 정신세계를 가진 청장년기를 고려에서 보냈는데, 그것은 대체로 고려 건국으로부터 광종대 초기에 해당되는 시기가 된다.
≪천태사교의≫는 五時·八敎에 대한 설명을 통해 원교를 내세우려는 것이므로 화엄종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었다.「5시」는 華嚴時·鹿苑時·方等時·般若時·法華涅槃時이다. 화엄시는 頓部에 해당되지만 화엄사상 전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녹원·방등·반야시는 漸敎에 관한 것이다. 법화열반시는「회삼귀일」사상을 포용하고 있지만, 화엄 원교적인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8교」는 頓敎·漸敎·秘密敎·不定敎의 化儀四敎와 藏敎·通敎·別敎·圓敎의 化法四敎로 나뉘어진다. 화의 4교가 부처의 경계에 이르는 방편이라면, 화법 4교는 그것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대체로 8교는 교학 특히 화엄교학의 보살 수행에 입각하여 설명되어 있다. 제관은 8교 가운데 원교를 가장 강조하였는데, 이것 역시 화엄의 보살행에 비추어 설명하였다. 물론 원교의 내용 속에 一心三觀法도 나타나 있으며, 그 끝을 一乘觀法으로 장식하고 있다. 교선일치사상은 十乘觀法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제관의 교선일치사상은 수행과정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 밑바닥에는 교학 특히 화엄사상을 강하게 깔고 있다.075)
제관이 저술한≪천태사교의≫는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상권은 天台一家의 敎判을 밝힌 것이고 하권은 남·북 諸師의 宗趣 사이에 존재한 미묘한 차이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 중 상권만이 유통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076) 제관 이후≪천태사교의≫는 천태종의 敎典같이 취급되어, 천태학인은 반드시 그것을 읽어야만 했다.077)
그리하여 이 책에 대한 많은 역주서나 연구서가 나오게 되었다. 중국 천태종의 정통인 山家派의 주석서로는 從諫의 문하인 宗印의 제자 元粹가 지은≪四敎儀備釋≫이 있고, 방계인 山外派의 주석서로는 從義가 지은≪四敎儀集解≫가 있다. 그 외 종인의 문하에서 분파한 王岡 蒙潤이 지은≪四敎儀集註≫가 있다.47) 이를≪천태사교의≫의 3대 주석서라 하는데, 일본에까지 전해져 일본 내 천태사상의 연구를 활발하게 하였다.
<金杜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