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8권 고려 무신정권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4. 무신정권의 붕괴와 그 역사적 성격2) 임연·임유무 정권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1. 무신란과 초기의 무신정권
          • 1) 무신란의 주도세력
          • 2) 이의방 정권
          • 3) 정중부 정권
          • 4) 경대승 정권
          • 5) 이의민 정권
        • 2. 최씨무신정권의 성립과 전개
          • 1) 최씨정권의 성립
          • 2) 최씨가의 권력세습
          • 3) 최씨정권의 붕괴
        • 3. 무신란과 최씨무신정권의 역사적 성격
          • 1) 무신란의 역사적 의의
          • 2) 최씨무신정권의 성격
        • 4. 무신정권의 붕괴와 그 역사적 성격
          • 1) 김준 정권
            • (1) 김준의 출세
            • (2) 김준의 집권
          • 2) 임연·임유무 정권
            • (1) 임연의 출세
            • (2) 임연·임유무의 집권
          • 3) 붕괴기 무신정권의 성격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1. 사병의 형성과 도방
          • 1) 사병의 형성
          • 2) 도방
        • 2. 중방과 교정도감
          • 1) 중방
          • 2) 교정 도감
        • 3. 진양부와 정방 및 서방
          • 1) 진양부
          • 2) 정방
          • 3) 서방
        • 4. 별초군의 조직
          • 1) 마별초
          • 2) 지방별초
          • 3) 삼별초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 국왕의 권위
          • 1) 중방정치와 국왕
          • 2) 국왕의 권위
          • 3) 국왕과 문반·민중
        • 2. 무신정권과 문신
          • 1) 무신란과 문신의 동향
            • (1) 은거문사
            • (2) 소외문인
            • (3) 등용문신
          • 2) 초기 무신정권과 문신의 정치활동
        • 3. 최씨정권과 문신
          • 1) 최씨정권의 문신정책
          • 2) 최씨정권하 문신의 역할과 정치적 지위
        • 4. 무신정권기 문신의 정치의식과 그 성향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임연·임유무 정권

(1) 임연의 출세

 林衍은 鎭州를 관향으로 하는 향리 출신의 인물로 여겨진다.139) 그는 몽고군사를 물리친 전공으로 選軍되어, 경군의 장교인 대정에 임명되었다. 그가 중앙에 진출한 후에, 김준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의 부인을 간통한 범죄 때문이었다. 이 때에 김준은 임연을 힘써 구하여 죄를 면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거하여 낭장이 되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임연은 김준을 父로, 김승준을 숙부로까지 부르는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김준은 최의에게 그를 추천할 때 장사로서 쓸만한 인물임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무사적 자질이 높이 평가되어, 진급과 동시에 최씨가의 사적 병력으로 활동하였을 것이다. 이후 그의 활동이 주로 야별초를 지휘한 점으로 미루어, 야별초의 부대장 같은 임무를 띠지 않았나 짐작된다.140) 김준이 임연을 구원하였던 시기는 김준이 집권자인 최의한테 소외당하고 정치적으로 위기를 느끼던 최씨정권의 말기였다. 이러한 때 김준이 임연을 적극 구원하고 천거하였던 것은 김준이 정치적 위기를 당하여 자신의 세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임연의 무사로서의 자질은 김준이 그를 적극적으로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되었으리라 본다. 요컨대 林衍은 최씨정권 말기에 지지세력을 강화해 나가던 김준에게 무사적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고 출세하게 된 김준의 심복이었다. 따라서 임연이 최씨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할지라도, 김준에 대한 봉사와 충성이 더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임연이 김준의 측근 정치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최의를 주살한「戊午政變」에서 핵심적인 주모자로 활약한 데에서 찾아진다. 그는 정변에 성공한 직후 8인의 위사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정치적 지위도 갑자기 상승하였다. 그의 무관직은 정변시 도령낭장이었다가 원종 3년(1262) 상장군으로 진출하였다. 그후 김준을 제거한 원종 9년(1268)에 그의 관직은 樞密院副使에 이르고 있다.141) 김준이 집권 후 정치세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정변주체자들이 정계에서 제거된 반면 임연은 고위관직에까지 승진하였다.142) 이는 그가 김준의 측근 심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임연은 김준 형제 다음으로 손꼽힐 만큼 김준정권을 지탱시킨 핵심적 정치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金俊政權을 유지하기 위한 임연의 역량은 군사적인 활동에서 제일 먼저 찾아 볼 수가 있다. 임연이 김준의 여러 아들과 그의 일당을 살해하는데 이용한 군사력은 야별초였다.143) 그렇다면 김준정권에서 야별초는 임연의 지휘 아래에 있었고, 임연에 의하여 사적으로 동원될 수도 있었던 병력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임연이 야별초의 낭장으로 진출하여 김준집권기에 상장군으로 진급하였기 때문에, 그가 야별초를 지휘할 수 있는 상당한 권한을 가졌으리라 여겨진다. 더군다나 김준이 최씨가의 가노 출신임을 감안하면 김준은 야별초를 직접 장악하지는 못하였고, 그를 지지하는 야별초의 지휘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통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정권을 장악한 뒤에도 임연은 정적을 제거하거나 국왕을 폐위하고 재추를 위협할 때마다 야별초-또는 야별초를 포함한 삼별초-의 군사를 동원하였다. 요컨대 임연은 야별초를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군사적 실력자로서 김준정권에 참여하였다고 본다.

 무신정권 하에서 군사적인 역량은 곧 정치·사회적 지위와 직결된다. 임연도 역시 군사적 역량을 배경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나갔다. 특히 그의 자녀들이 당대 명문의 자제들과 혼인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임연은 그의 아들인 林惟茂를 孔巖 許氏 가문인 許珙의 딸과 억지로 혼인시키려 한 적이 있었다. 허공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쳐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임연은 원종에게 호소하면서까지 그 혼인을 성사시키려 하였다.144) 그런데 공암 허씨 집안은 무신란 이전부터 이미 문벌귀족으로 입지를 굳힌 가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무신집권기에도 허공의 부친은 추밀원부사를 지냈고, 허공 자신은 원종대에 승진을 거듭하여 동왕 10년에 右副承宣·吏部侍郎·知御史臺事에 오르는 등 여전히 유력한 문벌이었다.145) 그렇다면 임연은 당대의 명문들과의 혼인을 통해 자신의 정치·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려고 의도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정은 그의 자녀들의 혼인관계를 추적해보면 더욱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허공에게 혼인을 거절당한 후에 임유무는 李應烈의 딸과 혼인했다. 이응렬은 出陸還都를 거부했던 최항정권의 핵심세력으로, 김준의 집권시에도 승선으로서 공신책봉에 관여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던 인물이다.146) 이후 그는 임연의 지지자가 되어 임연이 원종을 폐위시킬 때 적극 가담하기도 하였다.147)

 蔡仁揆는 임연의 3남인 林惟梱을 사위로 삼았다. 그의 가문은 蔡松年이 최충헌의 신임을 얻어 참지정사에까지 올라 平康 蔡氏 가문을 일으킨 이래, 그의 아버지 蔡楨에 의해 무신정권기의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최항의 문객 대장군으로 활약했던 채정은 원종대에도 右副承宣·樞密院副使·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고, 鐵原 崔氏인 崔瑛과 통혼관계를 맺고 있었다.148)

 최영은 채인규의 장인으로 임유인의 처외조가 되므로 간접적으로 임연과 통혼관계가 있다. 철원 최씨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귀족가문이었다. 최영의 4대조인 최유청은 무신란 이후에도 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내는 등 가문을 보존하였으며, 아버지 崔宗峻도 고종 때에 15년간 문하시중을 역임했다. 최영 자신도 채정과 더불어 최항의 문객 대장군으로 최의의 권력 세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최영은 원종 폐위사건에 가담한 임연의 측근 정치인이었다.149)

 임연의 사위인 崔宗紹는 世家 자제로서 임연의 집권 이전부터 임유무의 살해로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임연정권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였다. 임연의 또 다른 사위인 洪奎는 무신란 이전부터 어느 정도 정치적 기반을 갖춘 南陽 洪氏 가문의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洪진縉은 동지추밀원사를 지내는 등 당시의 정치적 실력자였다. 비록 나중에 임유무와의 사이가 갈라지게 되나, 홍규는 임연의 생존시에는 그의 사위로서 정치적으로도 밀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다.150)

 이상을 통해 임연은 고려 전기 적어도 무신집권기부터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한 집안들과 사돈관계를 맺었음을 알겠다. 이들 가문들은 임연과의 혼인을 통해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임연에게 정치·사회적 기반을 확대해 주었을 것이다. 그 결과 김준정권 말기에 이르면,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임연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139)林衍의 아버지는 鎭州 향리의 딸과 결혼하여 林衍을 낳고 鎭州를 貫鄕으로 삼았다(≪高麗史≫권 130, 列傳 43, 叛逆 4, 林衍). 成鳳鉉은 高麗時代 향리가 향리 상호간의 혼인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를 주목해서, 林衍과 그의 아버지가 향리였을 것으로 보았다(成鳳鉉, 앞의 글, 21쪽).
140)成鳳鉉, 위의 글, 24∼25쪽.
141)≪高麗史≫권 130, 列傳 43, 叛逆 4, 林衍.
142)앞에서 검토한 바에 의하면 정변 직후 衛社功臣에 책봉된 8인의 정변주체자 가운데 金俊·金承俊·林衍만이 金俊政權의 말기까지 정치적 활동을 하였다. 李公柱의 경우는 정치활동에 관한 기록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일찍 死去하거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143)≪高麗史≫권 130, 列傳 43, 叛逆 4, 金俊.
144)≪高麗史≫권 105, 列傳 18, 許珙.
145)成鳳鉉, 앞의 글, 32쪽.
146)≪高麗史≫권 24, 世家 24, 고종 41년 7월 무오.

<元宗三年 尙書都官貼>(≪李基白 編著,≪韓國上代古文書資料集成≫, 一志社, 1987), 79∼80쪽.
147)≪高麗史節要≫권 18, 원종 10년 6월 임진.

≪高麗史≫권 26, 世家 26, 원종 11년 5월 계축.
148)成鳳鉉, 앞의 글, 34∼35쪽.
149)成鳳鉉, 위의 글, 34쪽.
150)成鳳鉉, 위의 글, 35∼3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