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2. 농민·천민의 봉기1) 농민·천민봉기의 배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1. 신분제의 동요
          • 1) 신분제 동요의 배경
          • 2) 양인·천인의 신분이동
            • (1) 양인·천인의 신분상승
            • (2) 양인의 신분하락
            • (3) 이성계 일파의 집권과 양인·천인의 신분고정
          • 3) 향리 및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1) 향리의 신분동요
            • (2)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2. 농민·천민의 봉기
          • 1) 농민·천민봉기의 배경
            • (1) 중앙 통치체제의 문란
            • (2) 지방관의 탐학
            • (3) 대토지겸병의 확대
            • (4) 신분제의 동요
          • 2) 무신정권 성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서북지역의 농민봉기
            • (2) 공주 명학소민의 봉기
            • (3) 관성·부성·전주 등에서의 농민봉기
            • (4) 제주민의 항쟁
            • (5) 운문·초전민의 봉기
          • 3) 무신정권 확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만적의 난
            • (2) 진주민의 항쟁
            • (3) 경주민의 항쟁
          • 4) 외세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1) 거란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2) 몽고 1∼3차 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3) 몽고 6·7차 침입기의 농민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1) 몽고족의 흥기와 여·몽관계의 성립
            • (1) 13세기 몽고족의 흥기
            • (2) 몽고군의 고려 입경
            • (3) 강동성 전투와 여·몽관계의 성립
          • 2) 몽고의 고려 침입
            • (1) 몽고의 침략
            • (2) 최씨정권의 강화천도
            • (3) 몽고의 2·3차 침입
            • (4) 여·몽전쟁의 장기화
          • 3) 몽고의 침략에 대한 항전
            • (1) 살례탑군에 대한 항전
            • (2) 당고군에 대한 항전
            • (3) 야굴군에 대한 항전
            • (4) 차라대군에 대한 항전
            • (5) 고려의 입보책과 지방민의 항전
          • 4) 삼별초의 대몽항전
            • (1) 몽고와의 강화
            • (2) 삼별초의 봉기
            • (3) 삼별초의 진도 항전
            • (4) 삼별초군의 제주도항전
        • 2. 여·원관계의 전개
          • 1) 원의 간섭과 자주성의 시련
            • (1) 몽고제국 지배체제로의 편입과정
            • (2) 몽고제국 지배체제하의 고려왕조
            • (3) 여·원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
          • 2) 북방문제
            • (1) 심양로의 심왕
            • (2) 동녕부
            • (3) 쌍성총관부
        • 3. 고려 말의 정국과 원·명 관계
          • 1) 원의 쇠퇴와 공민왕의 반원정책
          • 2) 공민왕의 개혁정치 실패와 명의 흥기
          • 3) 친원파와 친명파의 대립과 요동정벌
        • 4. 홍건적과 왜구
          • 1) 홍건적
            • (1) 원의 쇠퇴와 홍건적의 대두
            • (2) 홍건적의 침입
          • 2) 왜구
            • (1) 왜구의 성격과 규모
            • (2) 왜구의 침구목적
            • (3) 왜구의 침입
            • (4) 왜구에 대한 대책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지방관의 탐학

 전근대사회에서 지방관의 탐학으로 인한 농촌사회의 파탄이 농민봉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의 약화를 틈타 지방관은 농민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시켰다. 지방관의 탐학은 이미 무신정권 이전부터 성행하여 백성들이 유망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다음의 예종과 인종대의 기록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① 지금 諸道州郡의 수령 가운데서 청렴하여 백성을 돌보아주는 자는 열에 한 둘도 없고 거의가 이익을 탐내고 공명에 팔려서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킨다. 뇌물을 좋아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여 백성들을 침해하니, 유망이 연이어져서 열 집 가운데서 아홉 집이 비게 되어 짐은 매우 가슴 아프다(≪高麗史≫권 12, 世家 12, 예종 즉위년 12월).

② 지금의 수령은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利로 삼는 자가 많고 근면과 검소함으로 撫民하는 자가 적어 창고가 비고 백성들이 궁핍하다. 여기에 力役이 더해지니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되어 일어나 함께 모여 도적이 되었다(≪高麗史≫권 79, 志 33, 食貨 2, 農桑 인종 6년 3월).

 예종대에 유민이 성행하였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인종대에는 유망민이 모여 도적이 되었는데, 그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수령의 탐학임을 위의 기사 는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무신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명종 2년(l172) 6월에 정부는 전국 53개의 속현에 監務를 파견하였다. 사실 감무의 파견은 주·군·현에 예속된 속군·속현민의 오랜 열망이었다. 고려시대의 지방 통치조직은 군현제도로서 주군·주현이 있고, 주군·주현에 예속된 속군·속현, 그 리고 그 아래에는 향·소·부곡이 있었다. 따라서 東京·尙州·晋州 등 대 읍은 조세부과 및 역역동원에 있어서 주읍의 吏들이 중앙에서 그들 군현에 부과시킨 부담 중에서 많은 부분을 속읍에 지웠다.090) 이에 속읍민들은 주·군·현의 과다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여 연이어 유망을 하게 되었으며 국가 는 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편으로 감무제를 실시하였다. 즉 속읍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주읍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다음 예종의 조서는 감무를 파견하게 되었던 당시의 실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난번 西海道의 儒州(黃海道 信川)·安岳·長淵 등의 현에서 사람들이 유망한다는 해당기관의 보고를 받고 처음으로 監務官을 파견하여 안무시키기 시작했더니, 드디어 유민이 점차 돌아와서 산업이 날로 성하게 되었다. 지금 牛峰·兎山·積城·坡平·沙川·朔寧·安峽·僧嶺·洞陰·安州·永康·嘉禾·靑松·仁義·金城·堤州·保寧·餘尾·唐津·定安·萬頃·富閏·楊口·狼川 등 군현 사람들이 또한 점차 유망하고 있으니 마땅히 유주의 예에 의거하여 감무를 설치하여 招撫토록 하라(≪高麗史≫권 12, 世家 12, 예종 원년 4월).

 위의 기록에 의거해 볼 때 명종대에 파견했던 감무도 主郡縣의 속군현민에 대한 침탈을 근절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신들의 지방관 파견은 백성들의 수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쿠데타에 참여했던 하급 무인들에 대한 논공행상과 무신정권을 확립하기 위한 지방통치권의 확보에 근본이 있었다. 그리하여 牧民官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무인들이 많이 임명됨으로써, 감무가 파견된 지역의 주민들은 주군현의 억압보다 감무의 수탈을 더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신집정자들은 명종 3년 10월에는 3京·4都護·8牧으로부터 郡·縣·館·驛의 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인을 임명하는 제도를 만들었다.091)

 요컨대 지방관의 탐학은 무신정권 이전에도 빈번하게 백성들의 원성의 대 상이 되었으나, 무신정권 이후에는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역량이 없으면서 재물에만 눈이 어두운 자들이 더욱 많아져서 농촌사회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무인 집권자 중에는 재물을 탐하여 벼슬을 파는 자까지 있어서, 이제 지방관의 탐학은 중앙의 권세가와 연결되어 자행되고 있었다. 이들의 농민수탈은 남도뿐 아니라 양계지방까지 확산되고 있었으니, 예컨대 鄭世猷는 아들의 관직 제수를 위하여 병마사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재화를 거두어 중앙에 바쳤으며, 동북면병마사 曺元正은 재화뿐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잘라 땋은 머리로 만들어 자기집으로 가져갔다. 이같은 불법적인 농민수탈 외에도 백성들은 가중되는 조세와 공역으로 고통은 날로 심해갔다.

① 문종 7년 6월에 三司가 아뢰기를,‘옛 제도에 稅米 1碩(섬)에 耗米(축난쌀)는 一升(되)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이제 12倉의 곡식을 京倉으로 輸納하는데 여러 차례 水陸을 지나쳐 오기 때문에 손실이 많아 수송자가 이를 변상하느라 고통이 심합니다. 청컨대 세미 一斛(10말)에 모미 7되로 增收케 하소서’하니 制하여 좋다고 하였다(≪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租稅).

② 처음에 左右倉에서 쓰는 말(斗)을 재는 저울이 정확하지 않아 쌀 1섬을 바칠 때에 정액 이상으로 받는 것이 2말이나 되므로 지방 아전들이 이를 빙자하여 과중하게 거두어 오랫동안 민폐가 되어 왔었다. 이제 이를 바로잡고자 왕명으로 租 1섬에 耗米를 합하여 17말을 넘지 못하게 하였더니 민심이 흉흉하므로 이 때 이르러 制하여 본래대로 거두게 하였다(≪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租稅 명종 6년 7월).

③ 명종 18년 3월에 制를 내리기를,‘여러 州府郡縣의 백성은 각각 貢役이 있는데, 요사이 지방관리들이 使令에게 시켜 공역의 값을 거두고 그 貢賦는 해당년도가 지나면 면제시켰다. 이에 따라 아전들도 모두 이 방법을 따르게 되어 역이 고르지 못하므로 貢役을 맡은 백성들이 정처없이 떠나가고 있다’하였다(≪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貢賦).

 고려 초에는 농민들이 국가에 쌀 1섬의 조세를 바칠 때 耗米가 1되였는데 문종대에는 7되로, 그리고 무신정권 이후인 명종 6년에는 2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부가 1섬의 조세에 축난 쌀까지 합하여 17말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지방관과 아전이 극구 반대하여 다시 예전대로 모미를 2말 이상 받도록 허용하였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모미가 1되에서 2 말 이상으로 늘어난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데, 국가가 이조차도 제어하지 못하고 민심을 빙자하여 지방관 임의대로 모미를 거두어 들이기로 했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정부가 백성들의 편의보다는 지방관·향리 등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서, 무신정권이 사소한 개혁조차도 시행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이전보다 농민에 대한 수탈을 강화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貢賦는, 이것을 수취하는 왕실·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수공업품·자연산물 등 현물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지만 이를 헌납하는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대개 貢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위 사료 ③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교적 부강한 자는 지방의 관원이속과 결탁하여 미리 役價를 바치고 공역에서 면제되도록 하였으니, 이로 인해 貢戶의 부담이 고르지 않아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된 농민들이 견디지 못하고 유리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사료에 나타나지 않으나 요역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보여진다. 본래 공역 그 자체도 무거운 것이었지만 공부의 수취과정에서 불공평하게 자행된 관리의 폐단은 토지겸병 및 조세의 과중과 더불어 농민의 생산기반을 파괴하여 유랑민이나 도적이 되게 하였으며, 급기야는 대규모의 농민항쟁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090) 金潤坤,<羅·麗郡縣民 收取體制와 結負制度>(≪民族文化論叢≫9, 嶺南大, 1988).
091)≪高麗史節要≫권 12, 명종 3년 10월.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