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임내의 정리
지리지에 의거한 조선 초기의 속현과 향·소·부곡·처·장 등 소위 임내가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이남지방 즉 과거 통일신라시대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양계지방은 고려의 북진책에 의해 확정된 지역인 데다가 군사상 특수지대로 간주되어 당초부터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철저히 작용하였기 때문에 외관이 파견되지 않은 임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로 임내 분포의 다과와 존속도는 그 지방 토착세력의 강약에 비례하였다. 즉 삼남지방은 고려 이래로 토착세력이 강하여 중앙집권력의 침투 가 늦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임내가 오래도록 존속되었고, 영토확장에 따른 신설 州鎭에는 기존 토착세력이 없었던 것이며, 개경을 중심으로 한 경기·황해도 및 강원도의 일부 지역은 중앙정부의 政令이 원격지보다 철저히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 오게 되면 임내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하삼도에 비하여 훨씬 적었다.
속현이나 폐현의 분포는 양계와 황해도보다 삼남지방에 집중되어 있으며, 부곡은 경상도가 가장 많고 전라·충청도가 그 다음이며, 향은 전라도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경상·충청도이며, 소는 전라·충청·경상·강원도 순이며, 일종의 왕실 장원인 처와 장은 수도를 중심으로 한 경기·충청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같은 주읍이라 하더라도 읍격과 지역에 따라 소속한 임내 수가 상이하였다. 가령 양계지방에 주로 설치한 진에는 임내가 거의 없었으며, 현령·감무와 같은 수령이 파견되는 하급의 주현에는 임내수가 적었다. 따라서 큰 읍일수록, 그리고 군현 등급과 수령의 품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임내가 소속되었다.
한 군현이 읍치를 중심으로 주위에 다수의 임내를 영유한 데서 주와 부가되었고 원래의 자기 구역만을 갖거나 임내를 적게 가진 군현은 소현으로 남게 되었다. 즉 주·부·군·현은 읍치의 규모와 임내의 영속관계에서 읍격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군현 구획의 광협은 읍격의 고하와 토착세력의 강약과는 대체로 서로 비례하였다. 각 도의 계수관과 같은 대읍은 많은 임내를 소유하였고, 감영·병영 또는 계수관이 됨으로써 부근의 임내를 분할 소속시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