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Ⅲ. 지방 통치체제4. 행정구역과 행정체계1) 행정구역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1. 정치사상 기반
        • 2. 통치 구조
          • 1) 관료체제의 특징
          • 2) 통치기구
        • 3. 경제구조
        • 4. 사회신분구조
      • Ⅱ. 중앙 정치구조
        • 1. 정치구조의 정비와 정치기구
          • 1) 정치구조의 정비
          • 2) 정치기구의 기능과 구성
            • (1) 도평의사사·문하부·(의흥)삼군부·집현전
            • (2)≪경국대전≫상의 직계아문
            • (3)≪경국대전≫상의 6조 속아문
        • 2. 관직과 관계
          • 1) 관직
            • (1) 문반직·무반직·잡직
            • (2) 실직·허직·녹직·무록직
          • 2) 관계
            • (1) 문산계와 무산계
            • (2) 종친제·의빈계
            • (3) 잡직제
          • 3) 관직과 관계
      • Ⅲ. 지방 통치체제
        • 1. 지방 통치체제의 특징
        • 2. 8도체제의 확립
        • 3. 군현제의 정비
          • 1) 속현의 주현화
          • 2) 임내의 정리
            • (1) 속현의 정리
            • (2) 향·소·부곡의 정리
          • 3) 면리제의 정착
          • 4) 군현 명칭의 개정
          • 5) 소현의 병합과 그 한계
          • 6) 향리 직제의 개혁
        • 4. 행정구역과 행정체계
          • 1) 행정구역
            • (1) 도역과 군현 및 면·리 편성
            • (2) 특수구획:월경지와 견아상입지
          • 2) 지방 행정체계
            • (1) 도의 직제와 행정체계
            • (2) 군현직제와 행정체계
        • 5. 지방자치적 기구
          • 1) 경재소와 유향소
          • 2) 면리임과 5가작통제
          • 3) 향촌 제규약과 좌목
      • Ⅳ. 군사조직
        • 1.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 1) 초기 중앙군제의 정비
            • (1) 10위제와 특수부대
            • (2) 사병혁파와 10위제의 변화
          • 2) 초기 지방군제의 정비
            • (1) 육수군
            • (2) 수군(기선군)
            • (3) 익군
          • 3) 군역제도의 정비
            • (1) 군역의 일원화
            • (2) 보법의 성립
        • 2.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 1) 5위체제의 확립
          • 2) 5위의 병종
          • 3) 금군
          • 4) 5위의 군계급과 편제
          • 5) 수도방위의 실제
            • (1) 입직
            • (2) 행순
            • (3) 시위·첩고·첩종
        • 3.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 1) 진관체제의 성립
          • 2) 진관의 편제와 유방
          • 3) 진관체제의 변화와 제승방략
        • 4. 군령·군정기관의 정비
          • 1) 군령기관의 정비
            • (1) 의흥삼군부와 군령권
            • (2) 병조권의 강화와 삼군진무소
            • (3) 군령권의 정비
            • (4) 오위도총부의 성립과 군령권의 확립
          • 2) 군정기관의 정비
            • (1) 건국 초기의 군정기관
            • (2) 병조의 군정기능 확립과 속아문
        • 5. 군비의 확충
          • 1) 화기의 발달과 성능
            • (1) 화기 제조의 발달
            • (2) 화기의 종류와 성능
          • 2) 군량미의 확보와 운송
            • (1) 각도 군량미의 확보
            • (2) 양계지방의 군량미 확보
            • (3) 군자감창의 군자미와 운송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1. 관학
          • 1) 성균관
            • (1) 명칭과 시설
            • (2) 문묘종사와 석전
            • (3) 입학 및 교육
            • (4) 관학
            • (5) 성균관의 경제적 기반
          • 2) 4부 학당(4학)
            • (1) 학당의 설치
            • (2) 4부 학당의 교육
            • (3) 4부 학당의 교관
            • (4) 4부 학당의 경비
          • 3) 종학
            • (1) 종학의 설치와 교육
            • (2) 종학의 교관
          • 4) 잡학
            • (1) 10학의 설치
            • (2) 잡학 교육
            • (3) 잡학 교관
          • 5) 향교
            • (1) 향교의 설치와 교육
            • (2) 향교의 문묘
            • (3) 향교의 교관
            • (4) 교생의 신분
            • (5) 향교의 경제기반
        • 2. 사학
          • 1) 서재
          • 2) 서당
        • 3. 과거제의 정비와 운영
        • 4. 과거의 종류
          • 1) 문과
          • 2) 생원·진사시
          • 3) 무과
          • 4) 잡과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특수구획:월경지와 견아상입지

 조선 초기 군현제의 개혁은 종래의 군현제가 갖는 불합리성과 신분적 성격을 지양하고 이를 명실상부한 행정구획화하려는 것으로 조선조의 중앙집권적 관료지배체제의 진전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지방 행정구획의 정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말까지 군현의 한 특수구역으로 광범하게 존속했던 越境地(飛入地)와 犬牙相入地(斗入地)이다.

 월경지는 군현 구역의 하나로 소속 읍의 경내에 있거나, 접경하여 존재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개재하는 타읍의 영역을 넘어서 따로 위치하면서 소재읍의 지배를 받지 않고 떨어져 있는 소속 읍의 지배를 받는다.204) 이러한 월경지는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초기의 군현제 정비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100여 개소가 각 도에 분포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한말(1906)까지도 국내에 약 70여 개소나 존속되어 있었다.

 월경지와 견아상입지의 실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개념부터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양자의 차이점은 전자는 「越在他邑」한 데 반해 후자는 「侵入他境」한 데 있다. 당시 군현의 경계선이 확연하지 못한 점이나 인구가 희박하여 촌락이 서로 연접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비록 한 지점은 연접해 있으나 삼면이 타읍 경내에 깊숙히 침입했을 때는 두입지이면서 실제는 월경지와 다름 없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자료에 따라서는 월경지와 견아상입지가 서로 혼동된 것이 있었다.

 임내가 주읍의 수탈대상이 되었듯이 월경지는 공물·진상·요역 등 주읍으로부터 배정받은 각종 부담이 과중하였고 수령 또는 향리의 사복을 채우는 존재로서 역할을 했는가 하면 주읍의 몫까지 떠맡는 것이 예사였다. 또 주읍 관리의 출장으로 숙식·供億을 위한 민폐도 많았다. 이러한 월경지·견아상입지는 조선 초기 지방제도의 개혁을 거론할 때마다 정리되어야 할 제1차적 대상이었지만 그것이 끝내 소멸되지 않은 채 한말까지 존속한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 존속의 이유가 조선조 지방제도 내지 행정구획의 미숙성에서 연유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지방행정 운영상 현실적인 필요에서 그 모순성은 인정하면서도 존속시켰을까. 물론 이러한 문제가 1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했겠지만 결국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유지된 것이고 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성격이 달랐다.

 조선조의 행정구획은 여말의 그것에 토대를 두면서 임내의 폐합과 이속 등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해 보았으나, 군현 병합과 월경지 정리문제는 끝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래서 군현 등급의 승격이나 영역의 신축에는 항상 임내의 이속이 수반되었고 자연지세를 기준으로 개편되는 경우는 적었다. 종래의 임내가 직촌이 되고 과거의 속현이나 향·소·부곡이 면리제로 개편되었어도 그들의 구역만은 분해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구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군현 병합이나 구획변경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군신 간에는 항상 ‘군현 연혁은 경솔하게 거론할 수 없다’고 해서 한편으로는 지방통치상 대소 군현의 경역이 서로 엇물려 섞여 군현끼리 견제와 감시체제를 유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의 地誌 등 문헌적인 전거에 입각하여 가급적 현상대로 유지하려는 정부의 고식적인 태도가 작용하였다. 그러니 행정구역의 합리적인 개편이나 행정능률의 향상이란 문제보다는 항상 과거의 연혁을 중시하였다.

 가령 군현이 혁파되었다가 복구될 경우 제반사정이 전에 비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고을의 吏民들은 모든 것이 혁파 전의 상태로 환원되기를 간절히 바랐고, 국가에서도 그렇게 해주는 것이 해당 열읍 간의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월경지의 정리를 불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월경지는 선초 이래 누차 대두된 군현 병합책이 끝내 성취되지 못하고 군현 구획이 너무 세분됨으로써 계속 존속되는 결과가 되었다.

 월경지는 당시 수취체제의 모순 또는 지방 행정체계의 미비에서도 존속의 필요성이 있었다. 중·소읍에 소속된 월경지는 주읍 보강상 존속이 필요하였고 대읍은 대읍대로 소속 월경지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특히 바닷가 고을에 위치한 월경지는 주읍에 어물·소금 등 해산물을 공급해 주었고 주읍의 공물 진상의 조달에도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심지어는 주읍의 경비 조달에도 상당한 몫을 부담하고 있었다. 월경지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염·목재 등 토산물이 풍부한 데다가 주민은 사족 이외의 양·천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주읍 관리들이 거리낌없이 착취와 수탈을 감행할 수 있었다. 마치 모국이 식민지를 수탈하듯이 월경지는 주읍에 대하여 공부와 역역 등 항상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었다. 공부와 요역은 군현을 단위로 하여 배정되었기 때문에 대·소읍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어 일반적으로 대읍에 유리하고 소읍일수록 불리하였다. 그러니 대읍에 소속된 월경지는 오히려 부근의 쇠잔한 읍에 이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며, 한편 대읍의 재지세력들은 소읍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였기 때문에 대읍 소속의 월경지가 끝내 존속되었던 것이다.

 주읍을 본관으로 하는 씨족 또는 주읍에 살던 사족이 소속 월경지로 이주함에 따라 주읍과 월경지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즉 경주·안동·상주·일양·청주·전주·나주 등 대읍과 班鄕 소속의 월경지는 인접의 궁벽한 읍에 이속되기 보다는 그대로 있는 것이 일반 주민으로서는 제부담이 가볍고 사족에게는 仕宦·處世上 오히려 영예로웠던 것이다.205)

 인구의 증가와 개간, 산업의 발달과 새 농법의 적용은 각 읍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오지·벽지의 개발을 촉진시켰다. 해안과 삼남의 내륙 오지에 위치한 월경지는 어염과 목재산지 또는 川防(洑) 축조에 따른 벼농사 재배적지로서 열읍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었다. 특히 견아상입지는 중소 군현보다는 대읍의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각 도의 대읍을 대표한 계수관의 관내에 산지와 해변을 확보하려는 데서 영역이 인접 군현에 침입한 두입지가 많았다.206)

204)旗田巍,<高麗·李朝時代における郡縣制の一形態-慶尙道安東府の屬縣·部曲の編成と飛地->(≪和田博士古稀記念東洋史論叢≫, 1960).
205) 李樹健,<朝鮮朝 郡縣制의 一形態 ‘越境地‘에 대하여>(≪東洋文化≫13, 1973).
206) 대읍에 소속된 犬牙相入地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慶州府는 본읍에서 북쪽으로 安康·杞溪縣을 거쳐 神光縣·省法·竹長(부곡)까지 침입해 있고, 安東府는 본읍과 격리된 奈城·春陽·才山·小川·甘泉 등지를 영유하였다. 尙州는 본읍과 원격한 永順·山陽·化寧縣을 영유하였고 晋州는 남으로 昌善島에 미치고 서북쪽으로는 智理山底에 있는 花開·岳陽·薩川 등지를 그 관내에 두었다. 全州는 그 영역이 멀리 서해안에 미치고, 水原과 光州도 그 영역이 서쪽의 해변에까지 미쳤다. 대읍에 소속된 월경지가 중소 군현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견아상입지의 경우도 극소수의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각 도의 계수관급의 대읍에 소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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