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과전법의 붕괴와 지주제의 발달
1) 과전법체제의 붕괴
고려말의 전제 개혁에서는 이른바「不輸租」의 私田을 혁파함으로써 전국의 田地를 일단 국가수조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립된 科田法은 중앙과 지방의 각 국가기관에 수조지를 분속시키고 일부 職役人에게도 그것을 분급함으로써 국가체제 운용의 경제적 지반을 확보하였다. 과전법은 또한 중앙 거주의 官人層에게는 전·현직을 가리지 않고 科田을, 외방 거주의 관인층에게는 軍田을 折給한다고 규정하여 지배층을 특별히 우대하였다.
즉 과전법체제는 고려 이래의 토지 지배방식을 이어받아 우선 중앙·지방의 국가기관에 대하여 각기 별도의 수조지를 설정함으로써 그 운용의 재정기반으로 삼게 하였으며, 거기에 속한 각종 직역자에 대해서도 각기 직역에 복무하는 대가로 다소간의 수조권을 분급함으로써 각자의 생활에 이바지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으로 관인층에게는 현직을 떠난 경우에도 수조지를 절급함으로써 그들을 ‘世祿’적으로 우대하는 신분제적 토지법제를 운용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 토지지배관계의 기축은 이미 수조권보다도 소유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과전법은 그같은 개별 소유권을 일차적인 것으로 인정하고서 성립된 토지법제였다. 따라서 과전법이 절급한 수조권이란 것은 실상 개별 인간이 행사하는 전지의 소유권 위에 가설된 부차적 권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만 그들 토지에 대한 수조권을 국가기관이라든가 혹은 관인층에게 분급하는 선에서 생산관계를 재편성하였던 것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전자를 국가기관 절수지로, 후자를 私處 절수지로 나누어 그 변천을 서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