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리법의 발달
옛날 식품이나 음식의 실물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조상들의 식생활을 알려면 옛날의 조리·가공에 대한 문헌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이전의 식생활 관련문헌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조리가공서는 金綏의≪需雲雜方≫(1549년경)으로 한문으로 쓰여졌다. 그 후에 한글조리서인≪음식디미방≫·≪酒方文≫(河生員, 1600년대말)·≪규합총서≫등이 나왔다. 그 밖에 농서와 식품관련 문헌이 많이 있으나≪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임원십육지≫가 중요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가) 주식의 조리
밥;주식은 흰 쌀밥 외에 보리밥·오곡밥·팥밥·콩밥 등 잡곡밥을 즐겨 지어 먹었고, 정월 보름에는 약밥을 지어 먹었다. 「팥물밥」이라고 하여 붉은 팥을 푹 삶아 진하게 우러난 팥물만으로 밥을 짓기도 하였다.785)
죽;곡물에 물을 많이 넣어 익힌 죽은 밥 다음가는 주식의 하나이다. 쌀에 잣·깨·청대콩·호박·방풍·아욱·닭·양·붕어·굴·우유·전복 등을 섞어 만들기도 하였다. 보리·율무·밤·갈분·도토리·녹두·콩·팥 등으로 만든 죽은 일상식·약용·구황용으로 먹었다. “시장의 여자가 죽을 파는 소리가 개를 부르는 듯하다”786)고 하였으니 시중에서 죽을 만들어 파는 장수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국 수;조선시대에는 메밀을 주로 쓰는 냉면이나 녹두녹말로 만든 국수가 많았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오히려 적었던 것 같다. 냉면은 문헌상으로≪규합총서≫에 처음 나오는데 주로 북부지방에서 식용되었으며,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먹었다.
만 두;중국의 饅頭는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쪄낸 빵으로, 고려시대에霜花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조선시대의 만두는 일상식뿐 아니고 연회나 제례에도 차렸다. 우리 나라의 만두는 장국에 넣는 餃子가 대부분으로, 껍질은 메밀가루나 밀가루로 빚고, 소는 꿩고기·쇠고기·무·잣 등을 넣었다.
나) 찬물의 조리
조선 후기에 나온 조리서를 살펴보면 조리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예로부터 해오던 삶거나 굽거나 지지는 조리법 이외에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조리법을 받아들였다.≪규합총서≫에 제시된 조리법은 발효식품·굽기·말리기·찌기·조리기·기름짜기·가루내기·볶기·지지기·무치기·끓이기·삶기 등으로 다양하며, 육류·어패류·채소류·과실류 등 각종 식품에 따라 합당한 조리법이 구사되고 있다. 구이법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뜨겁게 달군 돌 위에 구었는데 철이 나온 후 철판 위에 굽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燔鐵이라고 한다. 석쇠를 쓰면서 꼬챙이가 없어졌다.787) 그 후 꼬챙이와 석쇠를 써서 直火로 굽는 것을 炙, 철판이나 돌 위에서 간접적으로 불에 굽는 것을 灸伊라고 하였던 구분이 없어졌다.
다) 떡과 과자
궁중의≪進饌儀軌≫나≪음식발기≫에는 병과류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온다.
떡;통과의례나 시절식에서 우선 만드는 음식이다. 시루떡(甑餠)은 떡의 기본으로 백설기가 가장 간단하다. 시루떡은≪임원십육지≫에서 멥쌀가루만을 시루에 쪄서 익힌 것이라 하였는데 부재료를 섞은 콩시루떡·무시루떡·잡과떡·당귀떡·느티떡·도토리떡·밤떡·복숭아떡 등도 있다.
찰곡물이나 곡물가루를 시루에 쪄내서 안반에 놓고 차지게 친 떡을 搗餠이라 한다. 찹쌀로는 인절미·잡과찰떡·석이찰떡 등을 만들고, 맵쌀로는 흰떡(白餠)·절편·차륜병·송기절편·개피떡 등을 만든다. 곡물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떡을 油煎餠이라 한다. 계절에 따라 진달래·장미·국화 등을 찹쌀가루에 섞은 花煎과 주악을 만들었다. 그 밖에 단자·경단·송편·상화 등과 빈대떡도 있다.
과 자;油蜜菓·茶食·강정·正果(煎果)·숙실과 등이 있다. 유밀과는 밀가루에 꿀과 기름을 넣어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것으로 약과·연약과·만두과·박계·중박계·대박계·매작과·타래과 등이 있다. 다식은 곡물가루나 松花를 꿀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찍어낸 것이고, 강정은 찹쌀가루를 술에 반죽하여 말려서 기름에 지져내어 고물을 묻힌 것이다. 정과는 과일이나 채소를 꿀에 조린 것이고, 숙실과는 과실을 꿀에 조린 것이다.
라) 가공식품
조선 후기의 조리서와 농서에는 음식 만드는 법 이외에 과실과 채소의 저장법과 장담기(沈醬)·김치법(沈菜)·술빚기(酒方) 등 식품가공에 대한 항목이 많이 나온다.
收藏法;모든 生果는 구덩이를 파 그 속에 넣고 목판을 덮어 두면 마르지않고 저장되며, 마른 모래에 참깨와 함께 항아리에 묻고 밀봉하거나 큰 나무대롱에 밀봉하거나 臘雪水에 담가 두면 저장된다. 대부분의 청과물은 銅靑의 고운 가루를 녹인 물에 담가 두면 빛깔이 변하지 않고 선명하다.
염장법;수산물은 대개 소금으로 절여서 저장하였으나 소금은 항상 부족하였으므로 생포를 건조하여 참기름을 발라 항아리에 담아 두기도 하였다.
건조법;고기를 얇게 저며서 말린 것을 육포라 하며 소고기포(牛脯)·丁香脯·長脯·快脯·片脯 등 가공법이 다양하다. 생선과 패류를 그대로 말리거나 간을 하여 말린다. 청어를 연기에 그을려가면서 건조시킨 훈제품으로 貫目魚가 있다. 말린 과실은 곶감·밤·대추 등이고, 채소로 갓·무·평지·쇠비름·박·가지·죽순 등도 말린다.
냉장법;궁중에서는 한강변에 동·서빙고를 두고 제사와 천신용, 궁중의 일상용으로 얼음을 보관하였다. 궁중에서는 해마다 여름철 마지막 달에 여러 관사와 종친 및 고위 관직자들에게 얼음을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醬;고려시대까지는 콩으로 만든 豉(豉)·메주(末醬)가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시가 거의 식용되지 않고 메주로 장을 만들었고, 15세기경에 청국장이 들어왔다. 고추가 들어온 이후에는 메주와 고추가루를 합하여 고추장을 만들었다.
젓갈과 食鹽;고대에는 우리 조상이 담근 鱁鮧라는 젓갈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는데 한나라 때에 해당한다. 당시 중국에서 醢는 肉醬과 魚醬을 가리켰으나≪훈몽자회≫에서는 젓갈을 가리키고 있다. 생선에 밥을 섞어 젖산 발효시켜 만든 식해를 鮓로 표기하였다. 문헌에 나오는 젓갈은 조기젓·조기알젓·꽃게젓·대구알젓·대구내장젓·소어젓·연어젓·연어알젓·곤쟁이젓·새우젓·어리굴젓·전복젓·소라젓·전어젓·준치젓·밴댕이젓·병어젓 등이 있다.
술;조선시대의 술은 대부분 순발효의 청주인 「민자약주」인데 점차 덧술이 많아졌다. 약제를 넣고 발효시킨 藥釀酒, 꽃향기를 가한 加香酒, 燒酒, 濁酒 등이 고장과 가문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중국과 일본은 酒稅가 있었으나 우리 나라는 주세가 없어 가정에서 술빚기가 성행하였다.
김치(沈菜);김장은 장담그기와 함께 일반가정의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고추는 1500년대에 들어왔으나 1600년대까지는 김치에 참초(眞椒)를 사용하였다. 1700년대≪증보산림경제≫에 비로소 고추 넣은 김치가 나온다. 같은 무렵의≪경도잡지≫에 의하면 김치에 새우젓국을 썼으며, 전복·소라·조기 등의 수산물을 넣었다.
이처럼 비린내가 나고 산패하기 쉬운 수산물을 김치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고추의 매운맛 성분 및 비타민 E의 강한 抗酸化力, 마늘·생강 등의 항산화력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종래의 김치에 고추와 수산발효식품을 슬기롭게 결합시켰던 것이다. 또한 김치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어 겨울철의 비타민 섭취에 커다란 도움을 주며, 고추의 매운맛과 붉은 빛깔은 식욕을 돋우어 준다.
≪증보산림경제≫·≪규합총서≫·≪임원십육지≫에 나오는 김치의 종류로는 오이소박이(黃瓜淡菹)·무김치(沈蘿蔔鹹菹)·동치미·배추김치·용인외지·겨울가지김치·전복김치·굴김치·장짠지·산갓김치 등이 있고,≪경도잡지≫·≪동국세시기≫에는 장김치(醬菹)·석박지 등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