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4. 과학과 기술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1) 조선 후기 성리학의 양상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1) 인물성론의 발단과 쟁점
            • (2) 인물성상이론(호론)의 전개
            • (3) 인물성구동론(낙론)의 전개
          • 3) 경학의 심화
            • (1) 영남학파의 경학
            • (2) 기호학파의 경학
            • (3) 탈주자학적 경학의 성장과 고증학의 정착
          • 4) 의리론의 전개
            • (1) 척화론의 저항의리
            • (2) 화이론의 의리론적 전개
            • (3) 의리론의 역사의식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1) 임성주의 유기론
            • (2) 화서학파의 심주리주기론의 대립
            • (3) 한주학파의 심즉리설과 노사학파의 유리론
            • (4) 간재학파의 심주기론과 한말 주리론의 논쟁
          • 6) 성리학의 사회적 기능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1) 중국양명학과 조선양명학
            • (2) 조선양명학의 성립
            • (3) 조선양명학의 전개
          • 2) 강화학파의 활동
          • 3) 양명학과 소론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1) 천주신앙의 동류
            • (2) 천주교서와 조선인의 만남
            • (3) 북경에 간 북학론자의「천주학」관
            • (4) 국내 실학지식인들의 천주학연구
            • (5)「보유론적 천주신앙」의 깨우침
            • (6) 이벽·정약용의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1)「신앙공동체」의 형성과 그 특성
            • (2) 초기교회의 발전과 시련
            • (3) 중인층의 천주신앙 수용과 활동
            • (4) 진산사건과 조상제사문제의 의의
            • (5) 서민·부녀자층의 천주신앙
            • (6) 성직자 영입과 교회활동의 조직화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1) 천주교박해의 역사적 배경
            • (2) 박해 받는 조선천주교회
            • (3) 박해정책과 교회의 성장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1) 천주신앙 수용의 사회성
            • (2) 조선교회의 역사적 기능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1) 삼학수행의 일반화
            • (2) 이력과정의 확립
          • 2) 강경의 성행
          • 3) 승려문집의 성행
          • 4) 삼종선 논쟁
          • 5) 국가적 활동
            • (1) 승정의 추이
            • (2) 승역의 추세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1) 국가도교의 쇠퇴
            • (2) 새로운 도교신앙의 형성
            • (3) 도교의 민간신앙화
            • (4) 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1) 군·현제의
            • (2) 마을신앙·개인신앙
            • (3) 무속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1) 고전의 정리
          • 2) 인쇄문화의 발달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3) 실학의 연구방법과 분야
          • 2) 실학사상의 전개
            • (1) 실학적 왕도정치론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2) 학파의 유형화 작업에 대한 검토
            • (3) 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1) 학문적 배경과 정음연구
            • (2) 사역원의 외국어연구
            • (3) 실증적 학풍의 국어연구
          • 2) 언어학
            • (1) 조선 후기의 한글문헌
            • (2) 근대국어의 표기법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1) 정통론의 발달
            • (2) 중세적 화이관의 변화
            • (3) 국사의 체계화와 개별 왕조에 대한 인식
            • (4) 역사지리학의 연구
            • (5) 사회경제사의 연구
            • (6) 역사학 방법과 역사이론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1) 유서편찬의 시작
            • (2) 개혁사상적 백과전서
            • (3) 관찬 백과전서
            • (4) 박물학적 백과전서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1) 과학기술의 제도와 기관
            • (2) 과거와 자격시험
            • (3) 중인의 과학과 천민의 기술
            • (4) 과학기술의 특징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1) 새로운 우주관과 서양식 천문도
            • (2) 천문·기상기구의 제작
            • (3) 역법과 시법-시헌력 도입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1) 연행사들의 서양과학 접촉
            • (2) 이익의 서양과학 이해
            • (3) 홍대용의 과학사상
            • (4) 박제가의 서양기술 도입론
            • (5) 정약용의 과학기술론
            • (6) 이규경의 과학기술론
            • (7) 최한기의 종합적 과학기술 수용
            • (8) 대원군의 군사기술 맛보기
            • (9) 실학의 서양과학 수용의 한계성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3) 한시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3) 기록문학
          • 4) 문학사상과 비평
        • 2. 미술
          • 1) 회화
            • (1) 회화활동의 확대와 창작태도의 변모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3) 진경산수화의 확립과 발흥
            • (4) 풍속화의 확대와 발전
            • (5) 기복호사 풍조와 민화류의 범람
          • 2) 서예
            • (1) 고법의 다양한 전개
            • (2) 금석학과 전예의 진흥
            • (3) 추사체의 출현과 유행
            • (4) 개화기의 서예
            • (5) 한글서체의 극성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2) 말기의 조각(순조∼고종기=1800년경∼1910년경)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건축
            • (7) 양식건축의 도입과 양식건물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1) 양란 이후의 장악원
            • (2) 아악의 명맥과 종묘제례악
            • (3) 향악·당악 및 궁중정재의 새 경향
            • (4) 고취악의 변천 및 세악·내취의 등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1) 악조의 역사적 변천
            • (2) 음악양식의 새 경향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2) 산대잡희의 폐지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2) 각저
            • (3) 수박
            • (4) 장치기
            • (5) 유상·등고 기타
          • 3) 연극
            • (1) 산대나희
            • (2) 조선시대의 재인과 광대
            • (3) 판소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9) 실학의 서양과학 수용의 한계성

 19세기 중반 실학자들 사이에는 조급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던 근대 서양의 과학기술 수용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종 13년(1876)의 개국과 함께 한국사의 서술에서 실학은 개화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개화사상가들의 노력은 조선의 정상적 역사변환을 가져오지 못한 채 곧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흔히 사학자들은 개화기의 실패를 당시 지도층의 정치적 실패에 큰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은 바로 실학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한국의 식민지 경험은 실학시대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실학시대의 조선이 이웃 나라들에 비해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에 크게 뒤져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603) 이미 앞에서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와 같이 조선의 실학자들에게는 서양 과학기술을 접할 기회가 절대 부족이었다. 16세기 말부터 중국과 일본에는 끊임없이 서양선교사들이 드나들며 서양 과학기술을 전수해 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에는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서양선교사가 찾아온 적이 없다. 조선실학은 서양과학을 중국에서 번역된 한역과학서를 수입해다가 공부해서 습득해 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자기집에 앉아서 강도 높게 직접 접할 수 있던 서양과학을 조선의 실학자들은 겨우 중국에 가서야 간접으로 약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이익에서 최한기까지의 경우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중국과 일본이 직접 서양과학에 접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조선이 간접적 접촉밖에 할 수 없었던 원인은 조선의 지리적 위치가 서양사람들의 항로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이 지리적 조건이 동아시아 세 나라의 실학의 위상을 크게 달라지게 만드는 직접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조선·일본의 실학은 그 특징적 경향을 들어 각각 考證學·北學·蘭學이라 부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세 마디 역사적 용어는 세 나라에서의 실학이 과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처음부터 서양과학의 유입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초기의 천문역산학 소개가 일부 중국인 천문학자들의 반발을 사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서양의 천문역산학은 중국의 궁정 안에서까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여 서양선교사들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차츰 서양과학의 우수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자 중국인들은 우수한 서양과학의 내용을 하나하 나 들어 그것이 원래는 고대 중국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梅文鼎(1733∼1849)이나 阮元(1764∼1849) 등이 바로 그런 서양과학의 중국원류설을 주장한 것이다.

 서양과학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그럴수록 중국인들은 더욱더 그들의 전통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실학은 고증학으로 특징을 삼게 된 것이다. 고증학은 그것대로 훌륭한 학문적 경향이지만, 그것이 서양과학을 받아들이는데 효과적 대응은 아니었고, 또 그것이 과학을 직접 산출할 수 있는 학문적 방법도 아니었다. 中華의 자존심 속에서 중국의 실학은 전통의 재평가에만 눈을 돌릴 수 있었을 뿐이지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는 일에는 극히 소극적이었다.

 비슷한 정도의 직접적 자극을 받은 일본의 경우에는 그 실학이 정반대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역사상 언제나 외래문화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고, 또 외래문화에 대한 갈증 속에 빠져 있던 쇄국을 실시중인 德川시대에 일본 지식층은 적극적으로 서양과학을 배우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17세기 초 한때 극심한 쇄국정책을 강행하던 일본은 곧 九州 서쪽 끝의 長崎에 중국인과 화란인만의 상주를 허가하고 그들과 교역을 계속했다.

 1740년에 이미 德川幕府는 유학자와 의사를 지명해서 화란어를 배우게 했고, 재야지식층 사이에 화란어를 배워 서양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1774년 杉田玄白(1733∼1817) 등이 화란어 해부학책을 번역해 낸≪解體新書≫는 일본역사상은 물론 동양사상 최초의 서양과학서의 번역이다. 중국인으로서 직접 서양언어를 배워 서양과학서를 번역한 일은 19세기 후반에나 시작되었고, 한국의 경우에는 20세기에 들어올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동양 3국 가운데 실학시대에 서양언어를 직접 배워 서양과학을 습득한 나라는 일본뿐이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의 실학인 난학은 19세기 초까지에는 서양과학의 상당 부분을 이미 일본인들 스스로의 번역과 번안을 통해 습득해 둔 상태였다. 뉴턴의 근대물리학을 소개하는 책이 일본 난학자에 의해 19세기 초에 이미 나왔고, 라브와지에(Lavoisier)의 근대화학 역시 1839년에는 책으로 소개되었다.

 난학을 가르치는 학교로 번성했던 蘭學塾은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이 동경만을 침략한 이후에는 洋學塾으로 바뀌어, 서양을 배우는 길을 영국과 미국 등으로 바꿔 갔다. 1854년의 개국과 함께 상당한 사회적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서양과학 수용은 난학 이후 아주 순탄하고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실학시대에 근대과학의 대강이 모두 부문별로 전공서적이 되어 일본학자에 의해 출간되어 있었고, 이제 근대적 대학이 설립되기만 하면 그대로 근대과학은 제도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다. 1877년 정식으로 일본 최초의 근대 대학으로 문을 연 東京大學은 그 전신이 서양과학책 등을 일본어로 번역하던 기관이었다. 즉 일본에서는 양학기관이 근대 교육기관으로 그대로 간판을 바꿔 달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의 실학이 그대로 근대과학으로 이어지는 모습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선·중국·일본의 실학 속에서 근대 서양과학의 수용 노력은 크게 다르게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큰 차이가 세 나라의 최근세사를 갈라 놓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이 서양선교사들과 서양상인들을 통해 직접 서양의 문명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있던 몇 세기 동안 조선의 선비들은 오직 간접적인 길밖에 서양문명에 접할 방법이 없었다. 이 기간은 조선 쪽에서 볼 때 순전히 서양 과학문명의「간접수용의 시대」였으며, 이것으로써 이미 경쟁에는 절대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 조선에도 서양 근대과학의 내용에 눈뜬 선각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조차 근대과학이란 그저 신기한 지식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인식한 선각자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부득이 나라의 문을 열고 외국과의 교류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때는 왔다. 고종 13년 일본의 압력 아래 조선정부는 드디어 나라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 안에 미국과의 우호조약을 맺으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과의 교류를 정식으로 시작하였다. 고종 19년(1882) 조선과 미국이 첫 외교관계에 서명했을 때 조선인 가운데는 한 사람도 그 조약의 영어 원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전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었지만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 조선은 국제사회에 편입되어 갔던 것이다.

<朴星來>

603)朴星來,<韓中日의 서양 과학 수용>(≪한국과학사학회지≫3, 1981).

―――, 앞의 글(1995a), 145∼166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