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다음은 항쟁의 직접적 계기에 대하여 살펴보자. 항쟁의 직접적 계기가 부세문제임은 중앙에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진주농민항쟁이 발생하기 직전에 경상감사 이돈영이 부임할 때 왕은 이 지역의 삼정의 폐단이 심하므로 그에게 이를 해결하도록 당부하고 있다.621)

 먼저 환곡의 실태를 살펴보자. 항쟁이 일어난 지역 가운데서는 환총이 많은 지역이 눈에 띈다. 가령 단성(10만 석) 군위(87,000석) 함평(11만 석) 등이다. 장성도 各穀 13만 석이 되어 限年排捧을 하고 있었다. 연산도 충청도에서 환총이 가장 많아서 15만 석인데 모두 虛留라고 하였다. 還摠이 많으면 자연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盡分이 일반화되면서 환곡 부담은 한층 늘어났다. 단성의 경우에도 耗條가 結當 20냥, 포흠의 강제 충완 27,000석, 移貿에 대한 부담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환총과 관련하여 포흠이 과다하여 문제가 된 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흠은 환총이 많은 경우와 직결되었다. 단성·군위·함평의 경우도 대부분 포흠이 문제가 되었다. 그 밖에도 경상도의 상주·성주, 전라도의 흥양·진안·무주 그리고 충청도의 회덕·임천·정산·은진 등도 포흠이 많은 지역이었다.622)

 포흠의 주체는 吏胥였고, 이를 邑民에게서 징수하여 문제가 발생하였다. 환곡의 포흠문제는 단성·진주·성주·군위·인동·부안·화순·진안·흥양·고창·은진·공주·회덕·임천 등에서 제기되었고 그 밖에 밀양·순천·옥과 등에서는 환곡의 폐단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 경우도 포흠과 관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들의 요구 조건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가령 진주에서는 읍을 공격하면서 ‘吏逋徵民’을 첫째로 거론하였고, 인동에서도 12개 요구조항 가운데서도 첫번째가 이 문제였다. 지배층도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음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포흠을 징수하는 방법으로는 토지에서는 結斂(군위·진주·화순·공주·은진), 都結(진주·익산), 호구에서는 統還(右兵營) 등이 이용되었다. 토지에서는 처음에는 결렴의 방식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것 같다. 화순은 결당 2냥씩을 추가로 부과하여 吏逋를 충당하였다고 하며, 진주도 본래 2냥 정도를 거두어 이포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용도에 따라 징수하였으므로 1년에 여러 차례 징수하는 경우도 생겼다.

 다음으로는 환곡의 이무가 많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액수가 드러나는 지역의 사례를 들면, 성주는 1860년 2,000석, 1861년 2,000석, 1862년 6,073석이었으며, 상주는 1860년 1,600석, 1862년 5,000석이었고, 창원은 1859년 4,845석, 1860년과 1861년에 4,000석에 달하는 많은 양이었다.623)

 이무는 모조를 채우거나(단성) 여타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으로(진주) 관에서 많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여 헐한 가격으로 立本하고 나머지는 사적으로 사용하였다. 이같은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이무를 하였던 것이다. 대체로 환곡 1석을 5전에서 1냥 정도의 낮은 액수로 입본하고 나머지 액수는 사적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이무는 사적인 포탈의 방법이기도 하였지만 그 결과 읍간의 환총이 불균등해지고 한편으로는 포흠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토지에서는 結價의 액수와 관련하여 생겨난 문제들을 들 수 있다. 결가는 正供이라고 부르는 중앙 상납분을 일률적으로 돈으로 환산하여 수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戶首가 책정하든 관에서 책정하든 일단 관에서 간여하게 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재정에 보용하거나 사사로이 착복하기 위하여 높은 결가를 매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 경상도에서는 결가 책정 초기에는 8∼9냥 정도였는데 이제 보통 14, 15냥이 되어서 처음의 결가의 배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624) 심지어 20냥까지 올라가서 3배에까지 이르는 지역도 있었다.625) 이것이 이 시기 공통적인 문제가 되었으므로 한 지역에서 저항하자 다른 읍에서도 호응하여 농민항쟁이 번져나가는데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는 환곡의 포흠분이라든가 軍錢補弊條가 포함되었다. 邑民들은 결가를 중앙 상납액으로 계산하자고 요구하였는데 7∼8냥이 가장 많이 제시되었다. 인동·공주에서는 7.5냥, 상주·선산·성주에서는 8냥을 요구하였다. 그 밖에 금구·장흥에서 田稅·大同稅에 해당하는 액수가 높았다고 하여 부당 징수분에 대한 환수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도결을 시행하면서 결가를 높여서 取剩하는 것은 일상적인 방법이 되었다.

 이와 같이 결가나 도결은 토지에 매겨짐으로써 대부분 토지소유자 계층인 사족들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들은 부당한 수취 부담에 항의하여 읍내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가령 익산의 진사 洪正은 도결세 2,800냥의 수세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다가 옥에 갇혔으며 진주의 전교리 李命允도 도결 책정에 반발하여 항쟁 초기에는 참가하였다.

 그 밖에도 항쟁의 계기는 삼정에 관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세와 관련하여 전세목가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 데 대한 불만(함양), 군정과 관련하여 군역 부과에 대한 부당함을 시정(문의)하려고 하였다. 기타 조선 후기 문제가 컸던 산림을 둘러싸고 무단세력들이 농민들의 벌채를 금지한 조치에 대한 반발(회인)이라든가 화전세 부당 징세(제주도) 등이 있었고, 그리고 잡세에 관련하여 숫돌 비용을 호당 수취하는 것(연일)이라든가 無名戶斂錢(장성)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이처럼 항쟁의 직접적 계기는 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시기에 주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환곡을 둘러싼 폐단으로 그 가운데는 吏逋의 부당한 징수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또 하나는 結價의 액수와 명목을 둘러싼 폐단인데, 높은 결가가 책정된 이유로는 還逋라든가 부족한 軍錢에 대한 보충 등 부당한 부담을 결가 속에 포함시켰기 때문이었다.

621)≪承政院日記≫2648책, 철종 13년 2월 20일.
622)특히 충청도는 전체적으로 포흠이 많았다. 충청도는 전체 70여만 석의 대부분이 포흠되었으며 실제로 남은 액수는 약 3만 석 정도였다(≪壬戌錄≫<釐整廳謄錄>임술 8월 2일).
623)≪日省錄≫철종 13년 7월 8일.
624)≪日省錄≫철종 13년 6월 1일.
625)≪備邊司謄錄≫226책, 헌종 4년 정월 10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