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이정책의 새로운 제도인 파환귀결은 대신들간에 환곡의 제도가 폐지된다는 점에서 반대에 부닥쳤다.

 첫째 환곡제도가 폐지된다는 점에서 반대하였다. 곧 이 때까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곡의 폐단이 생겼다고 하면서 환곡의 운영도 옛날의 법대로 각 읍의 곡총을 계산하여 그 동안 쌓인 포흠을 감해주고 읍의 크기와 민의 수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하여 본래대로 반은 留庫하고 반은 耗條를 취하면서 改色하자고 하였다.674)

 다음으로 파환귀결을 하게 되면 결가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 점이 농민항쟁의 원인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국가가 제도적으로 결가를 늘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국가에서는 三稅 이외에 모두 혁파한다고 하나 지방에서는 갖가지 재정을 토지에서 마련하기 때문에 부담이 늘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취를 담당하는 지방감영에서도 직접 의견을 제기하였다. 곧 실류곡이라고 파악되고 있는 것도 실제로 남아있는 액수는 얼마되지 않으므로 3년 동안 모두 거두어 들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항류곡에 대해서도 이정책에서와 같이 座首, 吏房을 監色으로 임명하면 폐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社倉制를 시행하자고 하였다.675)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환곡을 이전대로 운영하면서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심한 것은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파환귀결에 대한 불만은 집단적인 저항으로 나타났다. 특히 4都를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반대가 제기되었다.676) 먼저 경기도 광주와 같이 환곡으로 지탱하는 곳은 폐단이 컸다. 즉 여기에는 守禦廳이 있어서 軍民들이 환곡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제 환곡이 없어지고 돈으로 지급되면서 시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광주유수는 대신 호조에 상납하는 奴婢貢給代錢 6천 냥과 호조 구획 城餉穀 2천 석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면서 재정을 메꾸고자 하였다.677)

 10월 23일 광주의 시위사건은 파환귀결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統營 軍校와 광주민 수만 명이 米價를 매석 5냥으로 執錢하여 항류미를 만들게 한 것이 지나치다고 광주부에 소장을 올렸으나 허락되지 않자 6, 7만 명이 도성에 들어가 조두순과 정원용의 집 앞에서 5, 6일간 시위를 벌였다.678) 이들은 결국 환곡을 옛날 법규로 되돌리고 결전 부과를 정지한다는 명령이 내린 뒤 되돌아갔다. 도성에까지 몰려든 광주민의 시위가 파환귀결이 무너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파환귀결의 실시에 대한 불만은 농민항쟁으로 이어졌다. 중요한 항쟁은 경상도의 창원, 충청도의 청안,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 등에서 일어났다.

 청안에서는 파환귀결이 결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10월 2일 항쟁이 일어났다. 모조를 토지에 부과한데다가 다시 軍錢補弊錢을 결가에 첨부해서 거두기로 하여 결가가 늘어난데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었다.679) 창원에서는 환곡에 대한 作錢 액수가 많다는 이유로 일어났다.680) 봉기 날짜는 11월 8일로 파환귀결이 파기된 이후지만, 파환귀결이 파기되었다는 소식이 아직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함흥은 파환귀결의 내용이 미비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함흥민들은 파환귀결로 인하여 환곡이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관에서 봄에 받은 환곡에 대하여 3분의 2는 모조를 제하고 3분의 1은 돈으로 환산하여 납부하라고 독려하자 의심을 품고 납부하지 않았다. 그러자 함흥부에서는 各面의 책임자인 都尹을 잡아 처벌하려고 하였고, 이들은 등소에 참가한 대표들과 함께 함흥부로 내려와 항의하였다.681) 그 과정에서 10월 24일 관아를 공격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밖에 함경도의 高原과 永興, 文川에서도 항의가 있었다.682) 당시 세 지역의 환곡 상황을 보면 영흥은 還摠 54,600석 虛留 24,500석, 고원은 환총 11,800석 허류 2,800석, 문천은 환총 5,800석 허류 2,200석으로 허류가 많고 모두 오래된 포흠인데도 감영에서 모조를 계속 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함경도의 北關에서는 탕감되었는데 비해 차별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에서 불만이 많았다.

 파환귀결에 대한 반발이 중앙과 지방에서 계속 제기되었으므로 군현에서도 이를 관망하고 공납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683) 이와 같이 지방관청에서는 시행상의 문제점 때문에, 농민들은 결전의 부담 때문에 반발에 부닥쳐 끝내 폐기되고 말았다.

 이상 파환귀결에 대한 반대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결전의 경우 결가 전체 책정에 대한 대책이 없이 별도의 결전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반대였다. 이는 결국 토지에 대하여 별도의 부세를 첨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둘째, 환곡을 혁파한 뒤 항류곡을 설치함에 있어 당시 환곡의 실제 留庫의 액수와 곡식의 질을 고려할 때 實留라고 파악된 액수에 대하여 모두 일시에 작전 상납하는 것은 부담이 매우 컸다. 따라서 당시 환곡을 이정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정이정책의 내용이 이를 담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정원용이 영의정으로 등용되면서 파환귀결을 파기하고 일단 이전의 제도로 되돌아갔다. 대신 포흠을 탕감하고 폐단을 교구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새로운 환곡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경기·황해·강원·함경도와 수원·광주·개성·강화 등 4都는 폐단이 그리 심하지 않았으므로 감사의 보고에 따라 특별히 심한 것만 제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평안도는 최근에 폐단이 심하므로 이를 정리하려면 직접 조사를 거친 다음 천천히 강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삼남은 환정과 전정 모두 폐단이 심한데 전정은 일단 결전을 폐지함으로써 큰 탈이 없다고 보고 환정에 대해서는 그간 정책으로 제시된 것 가운데 약간 손질하여 행하도록 하였다.684) 이에 따라 환총을 재조정하여 부분적으로 폐단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행되었다.

 위의 대책은 4도에 걸쳐 거의 100만 석을 탕감하여 새로이 각 읍에 환총을 분배함으로써 일반적으로 ‘蕩逋均還’이라고 일컬어 졌는데, 이로써 환곡의 폐단을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정원용이 시행한 대책은 파환귀결에서 환곡이 담당하는 재정을 결렴으로 충당하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계속 환곡에서 마련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탕감된 환곡 부분에 대한 재정 마련에 문제가 있었다.

 이처럼 환곡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은 부분적인 탕감 조치만이 시행되었고 환곡의 여러 폐단을 시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곧 유명무실한 형편이 되었다.

 결국 농민항쟁에 대한 이정책은 항쟁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끝맺고 말았다.

674)≪承政院日記≫2657책, 철종 13년 10월 2일.
675)≪承政院日記≫2656책, 철종 13년 9월 30일.
676)≪矗營錄草≫9월 20일 軍簽便京送錄草.
677)≪承政院日記≫2657책, 철종 13년 10월 8일.
678)≪龍湖閑錄≫권 3, 京書所錄諸條, 70쪽.

≪承政院日記≫2651책, 철종 13년 11월 3일.
679)≪日省錄≫철종 13년 12월 8일.
680)≪壬戌錄≫昌原府使馳報, 99쪽.
681)≪壬戌錄≫<鍾山集抄>241쪽.

≪承政院日記≫2658책, 철종 13년 11월 2일.
682)≪壬戌錄≫<鍾山集抄>, 263∼264쪽.
683)≪承政院日記≫2657책, 철종 13년 10월 28일.
684)≪承政院日記≫2658책, 철종 13년 11월 15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