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3. 변란의 추이와 성격3) 변란의 추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철종 2년(1851) 문화에 사는 柳興廉, 蔡喜載와 영남의 金漢斗(후에 金守禎으로 改名) 등이 소현세자의 후손으로 황해도 풍천 椒島에 유배 중이던 李明燮을 추대하는 변란을 모의하다 발각된 일이 있었다.704) 이들은 구월산성 호위군을 포섭하고, 안악, 문화를 점령한 후 황해도 감영을 점령하고 평양에 모여 있는 群黨들과 합세하여 서울로 직향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거사계획이 시작된 것은 헌종 12년(1846) 이전이었다. 유흥렴이 인근 장수산에서 삼밭을 경영하며, 초당을 짓고 살던 奇東洽(奇德佑)을 찾아가서 거사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것이 헌종 12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계축년(1853)에 청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로 건너올 것이니 충의로 결합하여 물리치자는 말로 동모자를 포섭하였다. 또 주모자인 유흥렴은 자신이 병자호란 때 전사한 충신의 후손이며 평소에 北伐을 꿈꾸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서남해 가운데에 田橫島라는 섬이 있으며, 여기에는 명나라 말에 남경에 살던 士族들이 많이 망명해 있으므로 병자호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들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병사동원과 자금마련을 위해 구월산 산성별장으로 있던 崔致珏과 송도의 부상 白大顯, 林致守와 연결을 기도하기도 했다. 또한 石島·大淸島 등지에서 고기잡이와 소금굽기를 하거나 해상에서 곡물을 실은 배를 탈취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705)

 황해, 경상, 평안, 강원도의 인물로 구성된 주도세력은 주로 개별적인 인맥이나 인척을 끌어들여 세력을 규합했다. 주모자 유흥렴은 오래 전부터 황해도와 평안도, 멀리는 경상도, 충청도까지 편행하며 동조세력을 모았다. 또 동모자 가운데는 錦屛島에 사는 鄭道和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데 ‘海道에서 鄭眞人이 나온다’는 감결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거사에 성공을 하면 각기 차지할 三公, 六卿을 배정해 두고 있었고, “병자호란 때의 원수를 갚고 태조의 창업을 이을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기도 했다.706) 결국 동모자 高成旭의 고발로 탄로가 나 채희재 등 50여 명이 체포됨으로써 거사계획은 불발로 끝났으나, 2년 뒤 도망간 餘黨이 서울에서 두번째의 변란을 모의하였다.

 철종 4년(1853) 서울에서 시도된 두번째의 모의는 西水羅로 도주한 유흥렴과 서울로 도주하였다가 자칭 借力士이자 약장수인 崔鳳周라는 謀士를 만난 김수정(김한두)이 단천에 유배중이던 왕족 李明燮의 동생 李明赫을 내세워 서북지방의 別部料軍과 삼남세력을 규합하여 거사하려던 계획이었다. 이들은 구월산 일대에서의 거사가 실패한 것은 첫째, 한양에서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고, 둘째, 거사에 동원한 주력부대 역시 한양의 중앙관군이 아니라 구월산성의 호위군이었고, 셋째, 시기가 미성숙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이 서울에서 거사를 계획한 것은 바로 그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김수정은 헌종 10년(1844)에 향시에 장원급제한 한 바 있는 자로 철종 2년의 거사가 실패한 후 이듬해에는 일월산 일대에서 또 한 차례의 변란을 계획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그가 최봉주에게 “재작년 구월산 적도와 작년 일월산 적도는 경솔하게 거사를 모의하려다 스스로 일을 그르쳤다”고 한데서 드러난다.707) 철종 3년의 거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 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 그 해 7월 영양에서 정우룡이 울릉도의 적도들과 연결하여 기도한 작변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708)

 주모자의 한 사람인 최봉주는 이전부터 함흥, 동래 등지를 편력하며 동지들을 규합해 오던 자이다. 그는 1천 근을 들고도 하루 5백리를 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민생이 곤궁한 것을 보고 濟世의 뜻을 펴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世將不久之說’ 혹은 ‘彗星之災’ 등의 참언과 영남과 함경지방에 산재해 있는 차력사들이 합세할 것이라는 말을 퍼뜨리는 한편, 거사에 성공하면 이명혁을 국왕으로 추대하고 김수정은 병조판서, 최봉주는 三道統制使, 그 외의 동조자에게도 관직을 분배하겠다는 말로 동지들을 규합했다.709) 또 자금마련을 위해 前軍校이자 富商인 申錫範을 끌어들였다. 거사시에는 서북지방의 별부료군을 동원하여 종로에 방화한 후 혼란을 틈타 궁궐을 장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금마련을 위해 동모자로 끌어들였던 신석범의 고발로 실패하여 김수정은 참수당하고, 최봉주는 영암 추자도로 정배되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고종 14년(1877)에 최봉주는 유배된 몸으로 재차 변란을 기도했다. 유배지인 추자도에서 楸王으로 불릴 정도로 주민들의 추앙을 받던 최봉주는 고종 10년에 전라도 능주로 移配되었다. 거기서 최봉주는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변란을 기도했다 잡혀 유배된 張赫晋·李士允을 만나 호남, 영남 세력을 끌어들여 변란을 기도한 것이다.

 장혁진은 봉화 사람, 이사원은 칠곡 사람으로 고종 9년 안동에서 그 곳의 양반 柳興榮 등과 함께 안동·경주·진주·가산 등 4개처에서 동시에 거사하여 대구를 공격한다는 변란을 모의하다가 탄로가 나서 각각 신지도와 금갑도에 유배된 자들이었다. 장혁진은 “북방에 붉은 기운이 있으니 우리 나라에 불길하다. 금년 3월 8일은 壬辰日이므로 우리 나라에 액운이 있을 것이다”는 말로 민심을 동요시키는 한편, 화적을 가탁하거나 혹은 장례를 치른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이들은 십여년 전부터 군기, 군복 등을 갖추고 준비해왔다고 한다.710)

 고종 10년에 능주로 유배지를 옮긴 최봉주는 고종 13년에 흥양으로 移配된 장혁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후 흥양에 거주하던 송지국 등과 만나 의기투합, 또 다시 거사를 계획한 것이다. 이들은 南朝鮮이 장차 우리 나라를 침공할 것이니 ‘利在弓弓’하다는 말을 퍼뜨려 민심을 동요시키는 한편 거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했다. 우선 동래의 倭米를 移貿한다는 구실로 진도에서 船業을 하는 李奇執을 끌어들였다. 또 강진 병영 이서배들의 죄상을 적은 글로 그들을 협박하여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고, 순천에 사는 진사 李明七에게 돈 천 냥과 쌀 100석을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먼저 추자도를 공격하여 군기를 차지한 다음 제주도를 점령, 그곳은 적당한 인물에게 맡기고 육지로 나가 기회를 노릴 계획이었다.711) 그러나 자금마련을 위해 끌어들인 이기집의 고발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해서와 영남지역의 변란 세력이 연합하여 일으킨 일련의 변란은 왕족을 추대한 점, 그리고 三公六卿이나 병조판서, 三道統制使 등을 미리 정해 놓은 데서 보이듯이 엽관적인 경향을 강하게 노출하고 있었다. 또 명나라 망명세력과 연합하여 병자호란의 원수를 갚는다거나 태조의 창업을 계승한다는 점 등에서 왕조체제 자체에 대해 부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華夷論的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서와 영남세력의 변란은 왕조의 전복을 기도하였으며, 그 뿌리가 20년 이상 이어졌다는 점에서 19세기 후반 변란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704)≪捕盜廳謄錄≫하, 신해 9월 海西獄事 참조.
705)≪捕盜廳謄錄≫하, 신해 9월 海西獄事, 186∼187·195·198쪽.
706)≪捕盜廳謄錄≫하, 신해 9월 海西獄事, 184·187쪽.
707)≪推案及鞫案≫ 295책, 계축 逆賊守禎等獄案, 720쪽.

≪捕盜廳謄錄≫하, 계축 10월 申錫範告變, 242쪽.
708)李離和, 앞의 글(1984) 참조.
709)≪推案及鞫案≫295책, 계축 逆賊守禎等獄案, 695·705·718쪽.
710)≪捕盜廳謄錄≫하, 정축 10월 湖南逆謀發告.

≪推案及鞫案≫309책, 임신 逆賊沈聃應等鞫案.

朴周大,≪羅巖隨錄≫(韓國史料叢書 27, 國史編纂委員會, 1980).
711)≪捕盜廳謄錄≫하, 정축 10월 湖南逆謀告發, 589∼59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