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Ⅰ. 구미세력의 침투2.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1) 한·중·일의 정세
            • (1) 화이사상과 중국의 조공제도
            • (2) 조선왕조와 청조:청한 종속관계
            • (3) 조선왕조와 일본:‘교린’관계
            • (4) 화이질서하의 한국과 일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1) 서방제국의 동방진출
            • (2)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방진출
            • (3) 일항 무역:전통적 동서무역 제도
            •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 3) 동서 신국제관계의 성립:불평등조약 체제
            • (1) 중영 아편무역 분쟁
            • (2) 중영 개전과 남경조약의 체결
            • (3) 애로우전쟁과 천진조약 및 북경협정
          • 4) 일본의 개항과 미국
        • 2.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
          • 1) 러시아의 통상요구
          • 2) 프랑스의 통상요구
          • 3) 영국의 통상요구
          • 4) 미국의 통상요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1. 개화사상의 형성
          • 1) 개화사상의 형성과 배경
          • 2) 개화사상의 형성
          • 3) 1866년 개화사상 비조들의 활동
          • 4) 최초의 개화사상
        • 2. 동학의 창도와 동학사상
          • 1) 동학 창도의 배경
          • 2) 동학의 창도 과정
          • 3) 동학사상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1. 흥선대원군의 집권
        • 2. 대원군의 내정 개혁
          • 1) 대원군의 인재등용
          • 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 4) 민란 대책
        • 3. 대원군의 대외정책
          • 1) 러시아의 남하 방어책
          • 2) 천주교 탄압:병인사옥
          • 3) 병인양요와 대응책
          • 4) 신미양요와 대응책
          • 5) 대일 강경책
        • 4. 대원군 정치의 성격과 의의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1. 강화도조약과 개항
          • 1) 조약체결 전의 국내외정세
            • (1) 메이지유신과 일본의 조선정책
            • (2) 고종친정과 대외정책
          • 2) 강화도조약의 체결
            • (1) 운요호사건과 조선정부의 대응
            • (2) 조일수호조규의 내용과 성격
          • 3) 개항 이후 조선정부의 대내외정책
            • (1) 수신사파견과 개화정책의 모색
            •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 2. 개항 초기의 조청관계
          • 1)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서양 각국과의 수교권고
          • 2) 제2차 수신사의 파견과 주일청국사절의 연미론
        • 3. 조미조약의 체결
          • 1) 조·청·미 3국의 조미조약 체결 교섭과 속방조관
          • 2) 조미조약의 성립과 속방조회
        • 4. 유럽 각국과의 조약체결
          • 1) 한·영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2) 한·독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3) 한·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4) 한·불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5) 기타 유럽국가들과의 조약체결
        • 5. 개항의 역사적 의의
          • 1) 강화도조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 2) 불평등조약체제의 수립과 그 영향
          • 3) 초기 개화정책의 추진배경과 그 성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미국의 통상요구

 19세기 중·후반에 걸쳐 미국의 대외정책을 적극정책으로 주도한 국무장관들로서 1840년대의 웹스터(Daniel Webster), 1860년대의 시워드(William Seward) 그리고 1890년대의 헤이(John Hay) 장관을 들수 있다. 그 가운데 윌리엄 시워드 국무장관은 1868년 上海총영사 시워드(George F. Seward)에게 조선과 미국간에 통상조약을 체결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죠오지 시워드 총영사는 윌리엄 시워드 국무장관에게 셔먼(Sherman)호 사건을 조사하고 통상조약을 체결한다는 2개의 목적을 가진 원정을 제의하였다. 그의 제의는 받아들여졌고 새로 부임한 피쉬(Hamilton Fish) 국무장관은 1870년 4월 20일 로우(F. F. Low) 북경공사에게 조선국왕에게 보내는 그랜트(Grant) 대통령의 서한을 동봉하면서 조선과의 조약체결은 난파선의 구조·보호를 확약하는 통상조약으로 할 것과 교섭을 위해서는 제독을 동반하여 무력시위를 하도록 하였다.061) 그러나 이때의 수교교섭은 양국간의 전쟁을 가져온 신미양요로 끝나게 되었다.

 1878년 4월(고종 15년 3월) 東洋貿易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캘리포니아(California) 출신의 사전트(Aaron A. Sargent) 의원은 上院에 조선과의 수교 교섭 추진에 관한 결의안을 상정하였다. 이 결의안은 일단 부결되었지만 그 내용은 당시 미국의 지도급 인사가 조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건이다. 시전트는 이 결의안에서 조선과의 교섭의 필요성을 난파선원의 구조와 通商 외에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전략적 목적에 두고 있다.062)

 1879년 미국정부는 슈펠트(Robert W. Shufeldt) 제독에게 조선과의 교섭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여 파견하였다. 미국은 조선과의 교섭을 위해 먼저 일본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일본은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의 이름으로 釜山에 있는 일본 영사에게 슈펠트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 주었고 슈펠트는 이를 가지고 1880년 5월 4일 부산에 입항하였다. 다음날 일본 영사 콘도마스케(近藤眞鋤)는 東萊府使를 방문하여 미국이 조선과 수교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美國國書를 중앙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래부사 沈東臣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일본이 곤도영사에게 보낸 훈령 중에는 미국사신이나 조선정부가 도움을 청하면 ‘中立’을 지키며 ‘使事의 성취를 贊助할 것’이며 조약은 ‘困難民 救助’의 사항에 그칠 것이고 통상무역의 문제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 “目下 安定을 보장하는 길이다. 잘 주의하여 이를 다룰 것”을 다짐하는 지시도 포함되어 있었다.063)

 일본의 중재를 통한 교섭이 실패하자 슈펠트제독은 일본으로 돌아가 東京駐在美國公使 빙햄(John A. Bingham)과 함께 外務卿 이노우에 카오루를 찾아가 다시 한번 조선과의 수교를 알선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노우에 카오루는 조선의 예조판서 앞으로 公翰을 발송하여 “宇內의 大勢는 옛날과 달라 금일에는 鎖國이 지켜질 수 없음을 경험을 통해 일본이나 청국 모두 알게 되었고, 오늘날 조선이 도모해야 될 일은 저들의 청을 들어주는 일이며, 만약에 들어주지 않아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 그 피해는 매우 클 것이다”라고 하였다. 釜山領事 곤도마스케는 이 서한을 예조판서 尹滋承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윤자승은 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는 金弘集을 통해 이노우에 카오루에게 西洋諸國과는 통교하지 않는다고 미국과의 수료를 거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측 國書는 개봉도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빙햄공사는 또 다시 이노우에 카오루 외무경에게 알선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일본이 미국의 알선요구를 거절하자 淸國이 이를 지원하고 나섰다. 즉 슈펠트가 나가사키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슈펠트의 나가사키 체류 목적을 탐지한 나가사키 駐在 淸國領事 余瓗이 이 사실을 이홍장에게 보고하였고 이홍장은 1880년 7월 24일(고종 17년 6월 18일)부로 슈펠트를 천진으로 초청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홍장의 초청을 받은 슈펠트는 天津으로 가서 8월 26일 (음 7월 21일)부터 이홍장과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이홍장은 한미 교섭을 청국이 알선할 용의가 있음을 약속하였다.

 1870년대 말 청국은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일본의 한반도 진출과 러시아의 南下를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와 청국은 伊犂국경분쟁 문제로 전쟁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처하였다. 따라서 청국은 以夷制夷의 책략으로 조선으로 하여금 西洋諸國과 수교토록 하여 일본을 견제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 하였다. 따라서 이홍장은 1879년 8월 李裕元에게 편지를 보내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도록 권고하였다. 이에 대해 이유원은 謝恩兼冬至正使 韓敬源을 통해 미국과의 수교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러시아의 남하에 대해서는 청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경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청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다. 일본의 고급관리도 修信使 金弘集 일행에게 기회 있는대로 러시아를 경계할 것을 권고하였다.

 1880년에 들어와서는 조선정부의 태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미국과 수교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 까닭은 수신사 김홍집 일행이 동경에 체제하는 동안 駐日淸國公使 何如璋, 參贊官 黃遵憲 등과 여러 차례 회담을 하면서 국제정세, 특히 러시아의 남진위협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며 일본의 외상도 러시아의 위협에 관해 경고하였다. 특히 황준헌은<私擬朝鮮策略>을 귀국하는 김홍집에게 주었다.<朝鮮策略>은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이이제이의 책략으로서 “親中國·結日本·聯美國 하여 防俄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내용이었다. 黃은<조선책략>에서 미국을 영토에 야심이 없는 공평무사한 나라이고 타국의 政事에 관여하지 않으며 약소국을 돕는 나라로 소개하였다. 김홍집은 귀국 후<조선책략>을 국왕에게 바쳤고 국왕은 李最應 등 정부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에게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방금 천하 각국이 合縱하지 않음이 없을 뿐 아니라 我國은 海路要衝에 처하고 있어서 미국과 聯交하는 것이 良策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건의하였다.064) 국왕은 미국과 수교를 하기 위해 李東仁·卓挺埴 등을 비밀리에 何如璋 공사에게 파견하는 등065) 미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보수적 유생들은<조선책략>의 내용을 비판하면서 미국과의 수교를 반대하였다. 이른바 위정척사운동이 맹렬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伊犂國境분쟁으로 인한 러시아와 청국간에 긴장이 완화되면서 이홍장의 태도도 韓·美 조약체결의 알선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1882년에 들어와서 수교를 위한 교섭이 활발하게 진전되어 1882년 5월 20일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禹澈九>

061)薰德模,≪韓國의 開國과 國際關係≫(서울대 출판사, 1980), 52쪽.
062)韓佑劤,<Shufeldt 提督의 韓美修好條約交涉推進緣由에 대하여>(≪震檀學報≫24, 1964).
063)≪日本外交文書≫권13, 420∼425·426∼28쪽.
064)≪承政院日記≫, 고종 17년 9월 8일.
065)李光麟,≪韓國史講座≫Ⅴ近代編(一潮閣, 1981),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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