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2권 대한제국Ⅱ. 대한제국기의 개혁1. 대한제국의<국제>및 군사제도2)<대한국국제>의 내용과 역사적 성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1. 대한제국의 성립 배경
          • 1) 청일전쟁 이후 동아정세의 변화
          • 2) 조선의 위기와 정부의 대응
        • 2. 고종의 황제즉위 과정
          • 1) 황제즉위의 논리
          • 2) 고종의 황제즉위식
        • 3. 대한제국의 성립과 열국의 반응
          • 1) 국호 ‘대한’의 제정과 반포
          • 2) 열국의 승인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1. 대한제국의<국제>및 군사제도
          • 1)<대한국국제>의 제정 과정
            • (1) 교전소의 설치
            • (2) 법규교정소를 통한<대한국국제>의 제정
          • 2)<대한국국제>의 내용과 역사적 성격
            • (1)<대한국국제>의 내용
            • (2)<대한국국제>의 역사적 성격
          • 3)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 (1) 군제개혁의 방향
            • (2) 원수부를 통한 황제권 강화
          • 4) 중앙 및 지방군의 기능과 역할
        • 2. 광무양전·지계사업
          • 1) 양전사업의 추진 배경과 목적
          • 2) 양지아문의 설립과 양전시행
            • (1) 양지아문의 토지측량과 광무양안
            • (2) 광무양안과 ‘시주’의 성격
          • 3) 지계아문의 설립과 관계발급사업
          • 4) 광무양전·지계사업의 성과와 의의
        • 3. 산업진흥정책
          • 1) 광무정권과 궁내부
          • 2) 광무년간의 근대화정책
            • (1) 교통·운수업
            • (2) 화폐·금융
            • (3) 상공업
            • (4) 광산
        • 4. 대한제국기의 자강·구국교육정책
          • 1) 경본예참의 국가주의 자강교육
          • 2) 국민주의 자강교육
          • 3) 구국교육정책과 의무교육운동
        • 5. 대한제국기의 재정정책
          • 1) 재정정책 기조의 변화
          • 2) 정부세입의 축소와 황실수입의 확대
            • (1) 정부세입의 만성적 부족
            • (2) 재원의 내장원 이관과 황실수입의 확대
          • 3) 황실·군사부문의 지출 증대와 황실의 자금 축적
            • (1) 황실·군사비의 팽창과 행정·사업비의 축소
            • (2) 황실재정의 지출 양상과 여유자금의 축적
      • Ⅲ. 러일전쟁
        • 1. 러일전쟁의 배경
          • 1) 러일전쟁과 한국
          • 2)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 국제관계
          • 3) 의화단사건과 열강관계
          • 4) 영일동맹과 러일협상
        • 2. 러일전쟁의 경과와 전후처리
          • 1) 러일전쟁의 경과
          • 2) 전후처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
            • (1) 영일동맹의 개정
            • (2) 태프트-가츠라밀약
            • (3) 포츠머스조약
          • 3) 러일전쟁과 한국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1. 국권의 제약
          • 1) 한일의정서와 부수협정의 체결
          • 2)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와 을사5조약
            • (1)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 정책과 국제적 승인과정
            • (2) ‘보호’조약 체결을 위한 사전공작
            • (3) 을사5조약의 체결
        • 2. 통감부 설치기의 통치체제
          • 1) 보호국체제와 통감부
            • (1) 보호국체제
            • (2) 통감과 통감부의 권한
          • 2) 통감부의 군사·경찰제도
            • (1) 러일전쟁과 한국주차군의 탄생
            • (2) 군사제도
            • (3) 헌병경찰제도
        • 3. 통감부의 식민지화 정책
          • 1) 식민지화의 기반조성
            • (1) 만한경영론
            • (2) 경제의 장악과 이식민 촉진을 위한 기반 조성
            • (3) 군사기지화 작업
            • (4) 행정·사법제도의 개정
            • (5) 기타 식민지화를 위한 기반조성
          • 2) 통감부시기 재정제도의 개편
            • (1) 일제의 재정제도 이식과 재정기구 장악
            • (2) 식민지화를 위한 재정운영-세입·세출예산 분석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1. 고종의 국권회복 노력과 강제퇴위
          • 1) 밀사파견 외교의 전개
          • 2) 고종의 통치권 회복 시도
          • 3) 이완용 내각의 성립과 고종의 강제퇴위
        • 2.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
        • 3. 군대해산과 사법권 피탈
          • 1) 군대해산과 의병봉기
          • 2) 일제의 사법권 장악
        • 4. 일진회의 합방청원운동
          • 1) 일진회의 창립과 정계진출
          • 2) 3파연합과 합방청원운동
        • 5. 한일합병조약의 체결
          • 1) 일본정부의 한국병합 방침
          • 2) 병합조약의 체결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대한국국제>의 역사적 성격

 <대한국국제>는 대황제가 친히 정한 국가 기본법이라는 의미에서 국제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制’는 황제의 명령 즉, 황제의 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이 專用하던 용어로 과거 조선왕조 개창 이래 사용해왔던 왕의 명령인 ‘敎’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대한제국 고유의 헌법 명칭으로 군주주권의 전제정치 국가라는 역사성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라고 명명한 것은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는 법률을 제정할 의회가 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헌법’이라 하지 않고 ‘국제’라는 용어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대한국국제> 가운데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서구의 국제법인≪公法會通≫073)을 참고하여 제3·6·7·8·9조항에 ‘公法에 謂한 바’라고 단서를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만국공통의 법률에 기반하여 대한제국의 법률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요컨대 대한제국이 국제공법에 의지하면서 세계 만방에 황제국가로서의 독립성과 위상을 과시하려 했던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서양적 민주주의와 법사상을 독특한 동양적 권위주의와 국가주의로 각색하여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074)

 고종의 이러한 입장은<국제>의 제정에 참여한 사람들, 특히 외국인 고문관들의 법사상과도 일치하는 것이며, 이들은 국제의 제정에 서양의 절대주의 사상을 끌어들여 황제권을 수호하려는 고종에게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미 대한제국 성립 직후인 1898년 4월 법부 고문관 르젠드르는 윤치호와의 대담시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여 ‘가장 개명된 자들이 중심이 된’ 자문위원회의 설치를 제시하였다. 그는 그렇지만 현재 대한제국이 처해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완전한 대의정부’는 적합치 않으며 현실은 마치 30년 전 명치유신 당시의 일본과 유사하니 명치정부처럼 절대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075)

 여기서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대한국국제>와 갑오개혁시의<洪範14條>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갑오개혁시에는 법률칙령안, 세입세출의 예산 및 결산, 내외 國債에 관한 사항, 국제조약 등 나라의 중요한 안건은 반드시 내각회의를 거치도록 하였다. 이는<홍범14조>제3조의 ‘대군주는 正殿에 나아가 일을 보되 政事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裁決한다’는 규정으로 명문화하였다. 대체로 14조의 내용은 군주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권의 확립과 내각제도의 수립, 민·형법제도의 개혁과 인민의 생명과 재산보전 등 민주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와 정부조직의 大憲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이나 준헌법으로 볼 수 없고 일종의 大政綱이라 할 수 있다.076)

 <홍범14조>는 비록 일본이라는 변수가 개입되었다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 나라 근대법 확립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었고 향후 인권의 신장과 소유의 불균형 해소 등에 있어 매우 진일보한 발전 전망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갑오개혁 이후 근 5년이 지난<대한국국제>가 반포될 무렵은 근대적 법사상에 대한 인식이 보다 심화되는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대한국국제>에는 국민의 권리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근대적 의미의 법률체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077) 이처럼<국제>의 모든 조항이 황제의 대권사항에만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외세의 간섭을 차단하고 열강과 마찬가지로 황제권 강화를 통하여 국권을 신장시키려는 대한제국 정치담당자층의 의지를 반영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황제권 강화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대한국국제>의 각 조문은 황제의 무한한 권리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국제>의 제3조에서의 ‘무한하온 군권’은 입헌군주제가 아니라 절대군주제적 정치체제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또한 제2조의 ‘전제정치’나 제4조의 ‘대황제의 향유하옵신 군권’ 및 ‘그 하고 안하고를 물론이고 臣民의 도리를 失한 자’라 함은 매우 막연한 조항이지만 황제의 통치권에 제한을 가하는 일체의 민권운동을 봉쇄할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제6조의 ‘대황제가 법률을 제정’한다는 규정도 황제가 입법권을 가지고 의회의 설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며, 오직 황제권만이 무한하며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것이라는 입장이었다.078)

 즉 황제가 유지하고자 하는 법과 질서는 황제권 수호와 절대화에 필요한 법과 질서였다. 따라서 민중의 동의는 당연히 배제되는 것이었다. 기존 권력층은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개화인사들의 지향인 입헌군주제 등과 같이 새롭게 대두되는 정치질서에 대해 매우 냉담하거나 다분히 자기방어적인 법률적 행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대한국국제>와 같은 법제적 규정은 황제 주도의 근대주권국가 형태를 마련하려는 여러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특수한 것은 아니었다.079)

 요컨대 대한제국은 이러한 상태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황제권 수호와 절대화에 필요한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법’이라는 만국 공통의 법률로 외피를 쓴 법률체계로 표현한 것이 바로<대한국국제>이다.

073)≪公法會通≫은 독일의 법학자 브른츨리(Johannes C. Bluntschli, 步倫)의 책을 1880년 중국에서 漢譯한 것인 데, 우리 나라에서는 건양 원년(1896) 5월 학부 편집국을 통해 중국판을 재출간하여 민간에 배포하였다.
074)崔鍾庫,≪韓國의 西洋法受容史≫(博英社, 1983), 417·427∼428쪽.
075)≪尹致昊日記≫5, 1898년 4월 14일, 151쪽. 한편 그는 대한제국이 강력한 정부를 가지지 못하면 프랑스혁명과 같은 민중혁명을 초래할 것이라 경계하였다.
076)신용하,<19세기 한국의 근대국가 형성 문제와 입헌공화국 수립 운동>(≪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1, 문학과지성사, 1986), 56쪽.
077)<대한국국제>에서는<홍범14조>의 제13조에서도 제시한 ‘인민의 생명과 재산보전’을 보장할 수 있는 護産權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는 황제의 권리만 강조한 것이지 백성을 보호할 의무는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민권의 면에서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078)일찍이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헌법에도 ‘신성불가침’의 조항이 있었고, 의회의 규정을 제외한다면 당시 러시아나 일본은 아직 이와 유사한 상태에 있었다.
079)이에 대해서는 金泰雄,<大韓帝國期의 法規 校正과 國制制定>(≪韓國近現代의 民族問題와 新國家建設≫, 金容燮敎授停年紀念 韓國史學論叢 3, 지식산업사, 1997) 206∼20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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