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Ⅳ. 항일의병전쟁4. 의병전쟁의 발전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경기도 양주의 13도 창의대진소에 집결한 의병부대 중에서 가장 유력한 의병장들은 허위를 비롯하여 이강년·민긍호·이은찬 등이다.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후 그들은 분산해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허위 의병부대는 임진강 유역에 진출해서 朴宗漢·金秀敏 의병장들과 연합하여 경기도에서 황해도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대시켰다. 일본군측 문헌에도 다음과 같이 허위부대의 활약에 대하여 쓰고 있다.

번번히 통고를 발하여 납세 및 미곡 반출의 정지를 명령하고 군자와 양식의 징발을 위하여 한국인 순사와 헌병보조원에게 협박장을 보내며, 통신선로를 저해시키고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도발이 심했다(朝鮮駐箚軍司令部 編,≪朝鮮暴徒討伐誌≫, 119쪽).

허위 의병대의 핵심 부대는 강화도에서 군대해산에 대항하여 궐기한 池弘允·延基羽가 이끄는 해산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1908년 6월에 허위는 경기도 永平郡의 산중 마을에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서울에 압송되었다. 헌병대 사령관의 심문에 대하여 그는 태연자약하게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사령관:병을 주창한 자는 누구이며 의병대장은 누군가.

허 위:(크게 웃으며) 의병을 주창한 자는 이토(伊藤博文)이고, 대장은 나다. 이토가 우리 나라를 빼앗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토가 아니고 누가 주창하였겠는가(黃玹,≪梅泉野錄≫, 융희 2년).

捨身取義를 결심하고 의병전쟁에 투신한 의병장들의 기골있는 모습의 일단을 우리는 허위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같은 해 10월에 처형되었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강원도의 금강산으로부터 인제 부근에서 적들의 포위와 추격을 뚫으면서 충청북도 제천 방면으로 남진한 다음 안동·봉화 등 경상북도 북부의 소백산맥을 주름잡아 맹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미 1896년 1월부터 문경지방에서 의병투쟁에 투신한 맹장으로서 당시는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에 충청북도 제천에서 재기한 후 허위가 체포된 같은 시기인 1908년 6월에 충청북도 청풍에서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 체포되었다. 죽기에 앞서 남긴<告訣八域同志>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병신년(1896)으로부터 13년 또다시 의병의 깃발을 들고 재거하여 피를 흘리며 싸우기를 큰 싸움이 30여 회요, 죽인 적의 우두머리가 백여 명이다. 불행히도 금년 6월 4일에 화살이 떨어지고 빠져나갈 길이 막혀 총알에 맞아 체포되었다(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1, 資料編<雲岡李康年告訣八域同志>).

그는 平理院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검사는 한국 사람이었다. 본래의 義禁府가 평리원으로 개명되어 있었다. 검사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하고 있다.

이강년:금부가 우리 나라의 官府인데 왜 倭酋가 여기에 있는가.

검 사:나도 또한 한국 사람이지 일본 사람이 아니다.

이강년:과연 한국 사람이라면 어찌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었는가.

(검사가 말이 없으니 다음과 같이 크게 호통을 쳤다)

이강년:내가 받들고 싶은 것은 天顔이요, 보고 싶은 것은 伊藤이다. 어찌 너와 이야기 하겠는가.

검 사:나는 임금의 뜻을 받들고 추지를 임금에게 전한 다음에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公에게 원컨대 실정을 이야기 해주기 바란다.

이강년:나는 너같은 醜類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宋相燾,≪騎驢隨筆≫, 李康年).

이강년은 붓과 종이를 달라고 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거의한 것은 우선 5적과 7적을 치고 이어서 왜적을 몰아내어 위로는 나라의 원수를 갚고 아래로는 생민을 도탄으로부터 구제하자는 것이었다. 체포된 것이 불행이다(宋相燾,≪騎驢隨筆≫, 李康年).

검사가 5적과 7적은 누군가고 묻자 이강년은 어리석은 백성도 다 아는 일인데 벼슬아치하는 네가 모른다면 개나 돼지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같은 해 10월에 처형되었다.

이강년이 체포된 후 그 의병부대는 중군장 金尙台를 의병장으로 해서 경상북도·강원도·충청북도를 연결하는 일월산과 소백산맥 일대를 근거지로 해서 완강한 투쟁을 계속했다.1261)

처음 중군장 김상태는 이강년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서하였다. 그러나 왜적에게 저지당하여 오랫동안 의병부대에 합류하지 못하다가 이강년이 먼저 잡혀 죽었다. 김상태는 이강년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어서 그를 만날 수가 없다고 하고 남은 병졸을 거두어 영남과 호남간을 유격하여 수삼 년에 이르렀다. 마침내 왜적에게 잡혀 대구 일군사령부에 구치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적을 꾸짖고 굴하지 않다가 밥을 먹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 源箕에게 유언하기를 이강년의 무덤 곁에 묻어 주면 황천에 가서도 서로 의지하겠다고 하였다.

1907년 8월에 민긍호는 한국군의 해산에 반대하여 원주에서 궐기한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특히 민긍호 의병부대는 유생들이 이끄는 의병부대와 달라서 무장과 훈련이 잘 된 원주진위대였다.

양주의 창의대진소에 결집한 의병 약 1만 명(실질적으로는 8천 명 전후) 중에서 민긍호·이구재·이은찬이 인솔한 의병수가 6천 명이었으니 이것이 대진소의 주력부대라 하겠다.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후 민긍호는 양주로부터 적들의 포위 공격을 물리치면서 원주 雉岳山으로 남진했으나, 1906년 2월에 체포되었다. 그 부하들이 한사코 그를 탈환하기 위해 저항하자 일본군은 그를 사살하고 말았다.

1896년 이래 경상북도·강원도·충청북도가 접경하는 이 지역의 산악과 그 주변의 산간마을은 이강년과 민긍호 부대의 근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의병전쟁의 핵심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의병전쟁을 지휘해온 이강년과 민긍호의 체포는 의병전쟁의 전반적인 추세에 결정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인영을 설득해서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하여 원주에서 기병한 것이 앞에서도 언급한 이은찬이다. 이인영이 부친의 삼년상을 입기 위하여 귀향한 후 그는 잔여 부대를 거느리고 경기도 양주와 포천 일대에서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도 한국인 간첩 朴魯天 등의 유인책에 빠져 서울의 적정을 탐지한다고 1908년 3월에 용산역에 잠입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문헌도 이은찬의 고결한 인격과 그에 대한 지방민의 협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격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은찬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의 유생으로 천성이 영리하고 또 재기가 있어 항상 정의를 표방하여 교묘하게 민심을 모았다. … 또 식량 및 군자금과 같은 것도 직접 영세민에게 요구하지 않고 각 면장이나 동장 등에게 통고하여 일반 사람으로부터 징수시키고, 구입품에 대한 대금지불 같은 것도 일찍이 그 기일을 어긴 적이 없으며, 혹은 군표와 유사한 증표를 발행하여 이를 물자로 바꾸어 후일 반드시 통화와 교환하는 등 힘써 민심수습에 부심했다. 그러기 때문에 완미한 지방민은 이들을 환대하고 토벌대에 대하여 그들의 행동을 감추어 줄 뿐만 아니라 보초가 되어 폭도 소재지의 주위를 경계하고 혹은 밀정이 되어 관헌의 행동을 통고하는 등 음으로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朝鮮駐箚軍司令部 編,≪朝鮮暴徒討伐誌≫, 151∼152쪽).

체포된 그는 일본 검사의 심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검 사:당신은 왜 叛逆했는가.

이은찬:당신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으니 우리는 거의하여 나라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어찌 반역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검 사:당신의 나라는 옛날에는 청국을 섬기다가 지금은 일본을 섬기게 되었다. 당신의 이와 같은 거사가 어찌 불가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은찬:당신들은 개명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狗皮를 입은 자들이다. 우리 나라가 청국을 섬겼다 하더라도 청국은 조금도 우리의 국권과 강토를 침해하지 않았다. 다만 일년에 한 번 修信使를 파견한 데 불과하다. 당신들은 우리 국권을 박탈하고 생령을 살육하고 우리 강토로 하여금 하나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너희들을 어찌 청국에 비길 수 있겠는가(宋相燾,≪騎驢隨筆≫, 李殷瓚).

검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은찬도 결국 1909년 6월에 처형되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07년 12월에 양주 창의대진소에 집결한 가장 유력한 의병장 중에서 1908년에 접어들면서 민긍호는 2월, 이은찬은 3월, 허위와 이강년은 6월에 각각 체포되고 말았다.

서울진공작전은 시위운동으로서는 큰 의의가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종래 의병투쟁을 전개하던 지역을 떠나서 대중적 기반이 없는 지역에 집중한 의병부대들이 입은 타격은 너무나 크다.

이 시기를 고비로 해서 그 후 의병전쟁은 오히려 창의대진소에 결집하지 않은 의병부대에 의하여 지속되었고, 또한 의병장의 계층별 구성에서도 유생출신 의병장들이 크게 후퇴한 대신, 보다 평민적 성격이 농후한 새로운 계층출신 의병장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거기에 1908년 3월의 스티븐스(D. W. Stevens) 저격사건이 起爆劑가 되어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을 가져오게 되었다.

1261)李康年,≪雲岡先生倡義日錄≫권 2.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