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唯一黨運動’이란 1920년대 중반에 중국본토와 만주지역에서 펼쳐진 민족운동세력의 통일운동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 그 용어가 달리 쓰였는데, 유일당운동·민족유일당운동·좌우합작운동·민족협동전선운동·민족통일전선운동 등이 그것이었다. 이 운동은 국내에서 펼쳐진 新幹會와 더불어 민족운동세력을 하나로 묶어 항일전선에서 그 역량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유일당운동이 지향하던 내용은 몇 가지 의미를 가졌다. 우선 정당조직체를 만든다는 점이 부각된다. 이것은 임시정부와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관련성을 가졌다. 임시정부 수립 초기에 이미 항일투쟁의 구심체로 정부조직체와 정당조직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정부 수립 직후부터 반대세력이 형성되면서 정부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에, 정당조직체를 들고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임시정부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둘째, 유일당운동은 “정당으로써 국가를 통치한다”는 以黨治國을 지향했다. 셋째, 국가와 정부를 운영해 나갈 구심체로서 정당을 결성하되 오직 하나, 단일정당을 만든다는 점이다. 소련이나 중국처럼 하나의 정당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즉, 唯一黨을 추진한 것이다. 그럴 경우 임시정부와 이 정당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라는 문제는 중요한 논의사항이 된다. 넷째, 민족운동세력을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를 가졌으니, 반일-반제세력의 대통합을 의미한다.
유일당운동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에 한 차례 시도되었고, 1980년대에 들어 중국본토지역과 만주지역 및 국내에 대한 개별적 연구가 몇 편 나왔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독립운동사 전체에 대한 민족운동세력의 통합운동 혹은 통일운동 차원에서 이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이와 관련한 연구가 증가하였으니, 이것은 한국사 전체를 동일한 관점에서 조망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는 ‘좌’와 ‘우’라는 기준축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라는 축이 새롭게 설정되면서 연구가 진일보하였다. 더구나 남북분단을 극복하는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의 대두는 이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