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립군의 편성
서북간도와 연해주의 한인사회에서는 3·1운동 발발 직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항일전을 표방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고 있었다. 1919∼1920년 사이에 북간도에서 조직된 독립군단만 보더라도 大韓軍政署·大韓國民軍·大韓獨立軍·軍務都督府·大韓義軍府 등 대규모 군단에서부터 大韓光復團·義民團·大韓新民團·大韓正義軍政司 등등 중소규모의 여러 독립군단이 있었다. 또한 서간도에서도 西路軍政署와 大韓獨立團 등을 비롯해 光復軍總營·光復團·義成團·天摩隊 등 수십 개의 대소 군단이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러한 현상은 한민족의 독립을 향한 고조된 열기가 일시에 분출된 결과였다.
수많은 항일단체와 독립군단이 정비·편성된 것은 항일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갈래의 군단이 도처에서 편성된 결과, 활동면에서 볼 때 각기 고립 분산적으로 항일전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결국 전력의 분산이라는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러 독립군단의 전력 통합은 항일전 수행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에 따라 여러 항일단체와 독립군단은 각기 조직을 정비하면서 항일전을 수행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상호 통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서북간도 각지에서 편성된 독립군단 가운데 중요한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408)
408) | 독립군단의 편성내용에 대한 서술은 尹炳奭 외,≪中國東北지역 韓國獨立運動史≫(集文堂, 1997),<북간도 독립군단의 편성>(93∼107쪽)의 주지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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