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의 침입으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북간도와 압록강 대안의 南滿洲 지역 한인 및 한국 독립군들은 일시 그들의 생활 터전 또는 근거지를 잃고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일찍부터 일제의 탄압이 심했고 청산리대첩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한 일본군의 난동이 극심했던 북간도지역은 한인사회가 뿌리 채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타격을 받기는 하였지만 북간도지역보다는 덜했던 남만지역의 독립군들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본래의 근거지에서 산간 오지로 옮겨 새로운 독립군기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북간도 및 다른 지역에서 탄압을 피해 이주하거나 이동해 오는 한인 및 독립군들에게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거나 자신들의 진영에 편입시켜 戰列을 넓혀나갔다.

 독립군들은 망명 초기의 개척정신을 되살려 버려진 습지와 산간을 개간하여 농지로 일구었다. 그리하여 생활 터전을 마련해 한인사회를 조성하는 한편, 그들의 근본 목표인 항일전을 전개하기 위한 굳건한 항전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였다. 그러나 10여 년간 일구어 논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지역을 개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독립군들이 새로 이주한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오지였다. 이에 독립군들은 보다 효율적인 항전기지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남만의 독립군들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1921년 4월 北京에서는 朴容萬·申肅 등의 주도로 군사통일회의가 개최되었다. 군사통일회의의 개최 목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해 성공적인 무장항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모든 한국인들의 무력을 한 곳으로 통일시키자는 것이었다.518)<선언서>에 나타난 군사통일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我獨立問題는 軍事가 아니면 해결이 불능이요, 군사운동은 통일이 아니면 성공은 난망일세, 於是乎 군사통일의 절대 필요에 감하여 내외지 각 단체의 연합으로 성립된 本會議는 其 목적이 실로 此에 不外하며 其 정신이 또한 此에 在할 뿐이로다(‘군사통일회의’ 명의로 1921년 5월에 공포된<宣言書>:尹炳奭,≪獨立軍史≫, 지식산업사, 1991, 228쪽에서 재인용).

 이에 따르면 조국의 독립은 통일된 무력을 통한 항전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국내외 민족운동가들은 공통적으로 효과적인 항일전을 전개하기 위해 통일된 군사조직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주·만주·노령 및 국내에서 참가한 10개 단체의 대표 17명은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러나 이 회의는 결국 대표들이 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유회되었고, 모든 무장세력이 통일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남북만주에서 파견된 독립군 대표들은 큰 실망을 안고 돌아갔다.

 군사통일회의를 통해서 만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전 민족적으로 통일된 무장세력을 구축하여 보다 충실한 항전을 펼치려 했던 재만 독립군의 희망은 이같이 무산되었다. 따라서 남만주의 독립군들은 지역적으로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그들만의 통일된 항일전선을 구축코자 하였다. 남만의 각 독립군단 대표들은 상호 연락을 통해 통합에 대한 의사를 합일시킨 뒤 1922년 1월 南滿統一會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徐範善·金觀聲·李萬馨 등 23인으로 구성된 후원대까지 결성하였다.519) 西路軍政署를 비롯한 大韓獨立團·光韓團 등의 대표들은 수차례에 걸친 통일회를 가진 후 통합 독립군단인 大韓統軍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새로 결성된 대한통군부의 부서와 간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총장:蔡相悳, 비서장:高豁信, 민사부장:李雄海, 군사부장:李天民,

교육부장:金東三, 실업부장:邊昌根, 사령관:金昌煥, 경무감:全德元

(蔡根植,≪武裝獨立運動秘史≫, 大韓民國公報處, 1985, 126쪽;崔衡宇,≪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 동방문화사, 1945, 7쪽).

 성립과 동시에 간부진을 선임한 통군부는 항일전을 펼치기 위한 기지 구축작업에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만지역에는 통군부에 가입하지 않고 소규모로 존재하고 있는 독립군단이 더 있었다. 그들까지 통합시키지 않고는 비록 남만지역만의 통합이긴 하지만 완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통군부의 간부들은 같은 해 6월 3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하여 잔류 군단들의 책임자들과 접촉을 가져 더욱 확대된 통합군단을 이룩하자고 결의하였다.

 따라서 같은 해 8월 23일 桓仁縣 馬圈子에서는 南滿韓族統一會議가 개최되었다.520) 이 회의에는 이미 통군부에 가입해 있던 서로군정서와 대한독립단, 그리고 寬甸東路韓僑民團·大韓光復軍營·大韓正義軍營·大韓光復軍總營·平安北道督辦府 등의 대표 71명이 모였다.521) 이들 대표들은 金承萬을 회장으로 선출하여 약 7일간 회의를 한 결과 참가한 모든 군단이 통합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6개항의 결의 사항을 결정하여 8월 30일 이를 남만의 한인사회에 발표하였다.

첫째, 각 단체 각 기관의 명의를 취소하고 구역 인물 및 제반 처리사항을 무조건으로 공결 복종할 것을 서명 날인하고 서약한다.

둘째, 남만한족의 통일기관명을 統義府로 결정한다.

셋째, 통의부 군대 명칭은 義勇軍으로 한다.

넷째, 제도는 총장제로 결정한다.

다섯째, 헌장은 9장 63조를 통과한다.

여섯째, 각 부서의 직원을 선거한다.

(<남만한족통일회 결의사항 및 직원 각 포고문 입수에 대한 건>,≪독립운동사자료집≫10,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493∼494쪽).

 이 결의문에 따르면, 새로운 통합체의 발족과 함께 이에 참여한 단체는 지금까지 사용한 명칭을 취소하고 모든 사항을 이 단체의 결정에 위임해야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기관은 총장제를 실시할 統義府이며, 헌장을 제정해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 등이었다.

518)尹炳奭,≪獨立軍史≫(지식산업사, 1991), 228쪽.
519)<大正 11年 2月 16日, 不逞鮮人南滿統一後援隊組織ノ件>.
520)1910년대 전후부터 1920년대 초까지 한국 독립운동계에서는 백두산 이남부터 안동현까지의 압록강변에 있는 만주의 제지역을 서간도라 불렀으나 1920년대 초반부터는 남만주라 지칭하였다. 하지만 남만주는 서간도 보다는 넓은 범위를 가리켰는데, 북쪽으로의 경계가 하얼빈까지 올라갔다.
521)<大正 11年 9月 22日, 南滿韓族統一會決議事項並職員名 布告文 入手에 關한 件>(≪韓國獨立運動史≫4, 국사편찬위원회, 1968), 761∼76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