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2.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3) 조선공산당의 창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
          • 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 (1) 신문화건설, 실력양성론의 대두
            • (2) 청년회 운동
            • (3) 학교설립운동
            • (4) 물산장려운동
          • 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 (1) 자치운동론 대두의 배경
            • (2) 자치운동의 전개
            • (3) 자치론과 반자치론
        • 2.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
          • 1) 사회주의사상의 도입
            • (1) 사회주의사상의 국내 도입과 수용
            • (2) 국외 전위정당의 결성과 활동
          • 2) 국내 무산계급 운동의 성장
            • (1) 사회주의 분파의 형성
            • (2) 꼬르뷰로 국내부와 화요파의 성립
            • (3) 오르그뷰로와 ‘13인회’
            • (4) 화요파와 민중운동자대회
          • 3) 조선공산당의 창건
            • (1) 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 (2) 조선공산당의 활동과 코민테른의<1925년 9월 15일 결정>
            • (3) ‘1·2차 조선공산당사건’과 조선공산당 2차당대회
            • (4) 조선공산당 3차당대회와 정치노선
          • 4) 조선공산당의 해체와 당재건운동
            • (1) 조선공산당의 해체와<12월테제>·<9월테제>
            • (2) 1920년대 말 당재건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1. 6·10만세운동
          • 1) 융희황제의 승하와 6·10만세운동의 태동
          • 2) 해외의 6·10만세운동 계획과 추진
          • 3) 국내의 6·10만세운동 추진과 발각
          • 4) 학생들의 만세시위 추진
          • 5) 만세시위의 전개와 성격
            • (1) 서울의 만세운동
            • (2) 지방의 움직임과 만세시위
          • 6) 6·10만세운동의 이념
          • 7) 6·10만세운동과 그 영향
        • 2. 신간회운동
          • 1) 창립 배경
          • 2) 신간회의 창립
            • (1) 사회주의자들의 신간회운동론
          • 3) 복대표대회와 신간회의 정비
            • (1) 복대표대회 개최와 규약 개정
            • (2) 복대표대회 선출 간부진의 성격
          • 4) 지회의 설립과 활동
            • (1) 지회의 설립
            • (2) 지회의 성격과 활동
          • 5) 신간회의 해소
            • (1) 신간회 해소론
            • (2) 신간회지회의 해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일제시기 농민운동의 성격
          • 2) 일제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민의 처지
          • 3)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 4) 농민운동의 전개
            • (1) 1920년대 전반기
            • (2)1920년대 후반기
          • 5) 1920년대 농민운동의 특징
        • 2. 노동운동
          • 1) 노동운동 전개의 배경
            • (1) 노동자계급의 상태
            • (2) 사회주의의 보급
          • 2) 노동조합의 조직
            • (1) 전국적 노동조합
            • (2) 지방 노동조합의 조직
            •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 3) 노동조합의 조직 내 사업과 공장 내 활동
          •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 5) 노동조합의 작업부와 생산조합의 조직
          • 6) 노동조합의 문화활동
            • (1) 노동자 교육활동
            • (2) 언론·출판 활동
            • (3) 연예·체육 활동
            • (4) 봉건적 사회제도·문화 타파운동
          • 7) 노동조합의 국내적·국제적 연대
            • (1) 국내에서의 민족·민중 연대
            • (2) 세계 노동자계급과의 동지적 연대
          • 8)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 (1) 1920년대 전반기 파업투쟁
            • (2) 1920년대 후반기 파업투쟁
            • (3) 1929년의 원산총파업
        • 3. 여성운동
          • 1) 국내외 항일여성운동
            • (1) 국내 항일여성운동
            • (2) 해외 항일여성운동
          • 2) 한국여성운동의 확대와 발전
            • (1) 서울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2) 지방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3) 기독교 여성의 여성운동: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와 조선여자
          • 3) 여성 경제의식 성장과 경제자립운동
            • (1) 부녀들의 조선물산장려운동
            • (2) 여성의 경제적 자립활동
          • 4)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대두와 확대
            • (1) 조선여성동우회의 조직과 활동
            • (2)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분파적 확대
            • (3)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지방 확대
          • 5) 근우회의 조직과 활동
            • (1) 근우회 조직의 배경
            • (2)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 (3) 근우회 활동과 그 성격
            • (4) 근우회의 해소
        • 4. 형평운동
          • 1) 형평사의 창립배경
          • 2) 형평사의 창립
            • (1) 형평사의 창립 과정
            • (2) 형평사 창립에 대한 사회의 반응
          • 3) 형평사의 분열과 그 극복
            • (1) 형평혁신동맹의 창립
            • (2)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의 합동
          • 4) 형평사의 조직
            • (1) 중앙본부의 조직
            • (2) 지분사의 조직
            •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 (4) 하위단체의 조직과 활동
          • 5) 형평사의 활동
            • (1) 차별철폐와 인권신장운동
            • (2) 생활생존권 수호운동
            •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 (4) 지방순회 활동
            • (5) 상호부조활동
          • 6) 형평사의 해소
            •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 (2) 형평사내 급진·온건파의 갈등
            •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 (4)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과 형평사의 종언
        • 5. 청년운동
          • 1) 청년운동의 발생배경
            • (1) 청년의 역사적 등장
            • (2) 청년단체의 출현
            • (3) 조선청년의 현실
          • 2) 조선청년회연합회와 초기 청년단체의 활동
            • (1) 조선청년회연합회의 결성과 ‘문화운동’
            • (2) 초기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3) 조선청년총동맹과 청년운동의 조직적 진출
            • (1) 전조선청년당대회와 청년운동의 분화
            • (2)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 (3)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4) 청년운동의 방향전환과 민족협동전선
            • (1) 조선청년총동맹의 ‘신운동방침’
            • (2)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5) 고려공산청년회와 사회주의 청년운동
            • (1)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출현
            • (2) 고려공산청년회의 결성과 조직 변화
            • (3) 고려공산청년회의 청년운동 방침과 주요 활동
          • 6)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에 대한 대책
            • (1)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 지도방침
            • (2) ‘중견청년’의 양성
        • 6. 학생운동
          • 1) 일제하 학생운동의 배경
            • (1) 근대학생운동의 본질
            • (2) 일제하 한국학생운동의 성격
          • 2) 1920년대 이전의 학생운동
            • (1) 개화·애국계몽운동기의 학생운동
            • (2) 2·8학생운동
            • (3) 3·1운동과 3·5학생운동
          • 3) 1920년대 학생운동의 기저
            • (1) 학생단체
            • (2) 동맹휴학
          • 4) 6·10학생운동
            • (1) 6·10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6·10학생운동의 추진
            • (3) 6·10학생운동의 전개
          • 5) 광주학생운동
            • (1) 광주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광주학생운동의 전개
            • (3)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조선공산당의 창건

(1) 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 조직을 위한 창당대회는 일경의 눈을 돌리기 위해 표면적으로 전조선기자대회와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를 준비하면서 ‘비밀리’에 개최되었다. 이것이 1차당대회였다.

 황금정(현 을지로)의 중국음식점인 아서원에서 열린 창립대회에는 金在鳳·金洛俊(金燦)·金若水·朱鍾建·尹德炳·陳秉基·趙東祜·曺奉岩·宋奉瑀·金尙珠·兪鎭熙·獨孤佺·鄭雲海·崔元澤·李鳳洙·金基洙·申東浩·朴憲永·洪悳裕 등 총 19인이 참석하였다.160)

 1차당대회 직후 1925년 8월 8일 상해로 파견된 조동호의 코민테른<보고>는 창당대회에 참가한 19명의 대표들의 소속 및 지역분포를 언급하고 있다. 조동호는 대표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1차당 시기 19명의 출석대표 가운데 지방 대표들은 대부분 꼬르뷰로 국내부의 각 지역 야체이카 책임자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161) 이를 종합하여 각 대표의 야체이카별 분포를 재구성해 보면<표 1>과 같다.

소속단체 및 지역 참석자(출생지) 소속분파
화요회 박헌영(충남 예산)

조봉암(경기 강화)
화요파

화요파
북풍회 김약수(경남 동래)

송봉우(경남 하동)
북풍파

북풍파
조선노농총동맹 윤덕병(서울) 화요파
조선청년총동맹 김 찬 (함북 명천) 화요파
동아일보 조동호(충북 옥천) 화요파
조선일보 이봉수(강원 춘천) 상해파
신의주 독고전(평북 의주) 화요파
평양 진병기(경북 칠곡) 화요파
인천 홍덕유(경기 수원) 화요파
광주 신동호(전남 광주) 화요파
순천 김기수(전남 순천) 화요파
대구 최원택(경북 대구)

정운해(경북 대구)
화요파

북풍파
안동 김재봉(경북 안동) 화요파
마산 김상주(경남 마산) 화요파
김해 유진희(충남 예산) 상해파
진주 강달영(경남 진주) 화요파(불참)
동래 주종건(함남 함흥) 상해파

<표 1>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참가자 야체이카별 분포

*T.H.Cho, Report:Delegate of KCP, Aug.8, 1925, pp.117∼126, РЦХИДНИ ф.495 оп.135 д.110;<金洛俊調書(1931)>,≪韓國共産主義運動史(資料編 1)≫(高麗大 亞細亞問題硏究所, 1979);강만길·성대경 엮음,≪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참조.

 지역대표들은 대체로 그들의 출신지역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들 중 꼬르뷰로 국내부 때 진주지역 야체이카 대표였던 강달영은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천과 동래 지역은 꼬르뷰로 당시에는 안기성·백광흠으로 되어 있었고 김해지역은 꼬르뷰로 이후에 신설된 야체이카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역에 야체이카 근거지를 가지지 않았던 홍덕유와 상해파 출신인 주종건·유진희가 대신 출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조선노동당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다.

 이들 19명 중 김재봉·김약수·김찬·유진희·조동호·주종건·정운해 등 7인으로 이루어진 중앙집행위원회가 구성되었다. 7인의 중앙위원들은 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다음과 같이 각 부서를 조직했다.162)

① 비서부 ② 검사부 ③ 조직부 ④ 조사부 ⑤ 정치경제부 ⑥ 선전부 ⑦ 노농부

 1차당의 책임비서는 김재봉이었다. 조직부는 김찬이 지도했다. 정치경제부는 유진희, 간부국은 김약수, 조사부는 주종건, 선전부는 조동호, 노농부는 정운해가 지도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 검사위원에는 윤덕병·조봉암·송봉우가 선출되었다. 당대회는 조선공산당의 창건을 알리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모스크바로 조동호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163) 집행위원 가운데 김재봉·김찬·조동호 등 3명은 화요파 성원이며, 김약수·정운해 등 2인은 북풍파, 유진희·주종건 등 2명은 상해파 출신이었다.

 1차당 창당 시기에 전체 당원수는 120명이었다. 이를 개별적으로 살펴 보면 국내 그룹 20명, 북성회(일본) 7명, 이르쿠츠크 그룹 5명, 상해그룹 2명, 중립그룹 86명 등이었다.164)

 대회에서는 건설된 당이 진정한 조선공산당으로서 간주될 것과 그 승인을 코민테른에 요청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조동호와 조봉암이 파견대표로 선출되었다. 또한 당원자격을 위한 후보 심사에 매우 엄격한 요건을 갖는다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당의 강령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현재의 활동에 조응하여 결정되었고 완성을 차후로 연기하였다. 당의 규약은 통과되었고 실질적으로 완성되었다.165)

 조선공산당의 당규약은 1926년 6∼7월에 걸친 조공의 2차 검거 당시 압수된 증거물에서 보여진다. 당규약인<조선공산당당칙>은 일제 당국에 따르면 1926년 3월부터 5월까지 강달영·홍덕유 등이 작성하여 이를 국제공산당에 보고한 것으로, 그 내용은 총칙·당원·기관·기본기관·군(부)기관·도기관·중앙기관·재정기관·프랙션·벌칙·고려공산청년회와의 관계 및 부칙의 12장 95개조로 이루어져 있었다.166) 이 규약은 1차당대회의 규약과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1차당 시기 규약은 러시아공산당 규약을 조선의 조건에 맞추어 고친 것이었다.167)

 조동호의<보고>가운데<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른 당의 계획>은 당시 조선의 정세를 분석한 것으로 강령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조선의 경제적 상황의 악화로 모든 화폐유통이 일본인 자본의 수중으로 장악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인 빈농들은 생활을 위하여 일본인 이주자들의 토지를 경작할 수밖에 없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인의 재정적 이익을 강탈하고 일본인 이민을 고무하면서 전조선의 농업력을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조선공산당은 독립운동이 조선인 전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바라보았고 또한 그것이 조선프롤레타리아가 일본자본주의에 대해 서 있는 동일한 전선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168)

 이러한 정세인식하에서 조선공산당은 첫째, 공산당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포함하는 조선인민의 일반적 운동을 지원해야 하고, 둘째 조선인민 일반이 다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공산당은 조선의 자본가뿐만 아니라 일본의 자본가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결정을 채택했다.169)

 조선공산당은 이 결정 외에 “① 일본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자, ② 코민테른의 깃발 아래로 오라, ③ 독립운동을 지속하자, ④ 노동자·농민의 조직을 위해 성실히 활동하자, ⑤ ‘동양척식회사’를 박살내자, ⑥ 기독교를 타도하자”170)는 투쟁슬로건을 통과시켰다. 또한 당은 조직활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그로부터 모든 다른 브랜치 활동을 발전시킬 것과 월간지·팸플릿·비밀 출판소 설치 등 출판활동과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연구소 설치계획과 교육활동 등 일상적 활동 프로그램을 결정하였다.171)

 1차당 대회에서는 조선혁명의 과제가 심의되었으며, 그것을 당면 단계에서는 민족해방혁명·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였다. 대회는 국내의 모든 애국적 세력과의 동맹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이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전위적 역할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172)

 대회에서는 당의 사회적 구성에 대해, 공산주의조직 가운데에서 노동자·농민은 극소수인데 반해 소부르주아지·인텔리켄차 및 학생들이 압도적인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점을 고려하여 대회는 노동자·농민 계층의 확대를 위해서 노농국을 창설할 것을 결정했다. 대회와 이후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에서 본질적인 난관으로 부딪친 것은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최소한의 정도에서나마 실현하고 지방 당조직·위원회·야체이카를 창설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173)

 창건된 당은 강령을 채택하지 않고 이를 중앙집행위원회에 위임했다. 그뒤 1928년 조공이 해체될 때까지 세 차례의 당대회를 통해 강령에 대한 공식적 논의와 채택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해에서 발행된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불꽃≫에 수록된<조선공산당선언>은 1926년 7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의 이름으로 강령적 문헌이 제시되어 있다.174)

 이것은 1차 조선공산당사건 당시 검거를 피해 상해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1930년 체포된 화요파의 具然欽이 밝힌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구연흠은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는 과연 어떠한 사명을 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1926년 6월 7일에 발표된<조선공산당선언서>를 빌려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구연흠은 “조선공산당은 어떤 강령을 세웠는가”라고 말하면서 먼저 “당면한 투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의 압박으로부터 조선을 절대 해방하는 데 있다”고 말한 후 당면한 정치적 요구에 대해서≪불꽃≫의 강령과 동일한 내용의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175)

 <조선공산당선언>에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되 국가의 최고 및 일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조직한 직접·비밀(무기명투표)·보통 및 평등의 선거로 성립한 입법부에 있을 일, 주 8시간노동제 실시, 직업조합의 조직 및 동맹파업의 자유, 야간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 산모의 산전 2주·산후 4주간 노동금지, 대토지소유자·회사 및 은행이 점유한 토지를 몰수하여 국가의 토지와 함께 농민에게 교부할 일, 소작료를 3할 이내로 할 일, 농민조합을 법률로 승인할 일 등 40개 항에 이르는 강령적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176) 그 내용은 대체로 일반 민주주의적 과제, 즉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내용으로 하는 최소강령적 성격을 띠고 있다.

 <조선공산당선언>에는 1910년 이래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의 본질과 3·1운동, 6·10만세운동 등 조선민중의 투쟁에 대해서 약술하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의 완전한 해방의 과제를 실행하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대립한 조선의 모든 역량을 집합하여 민족혁명유일전선을 작성하고 적의 營壘를 향하여 정확한 공격을 준비 또한 개시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여 ‘민족혁명유일전선’을 위해 전민족의 87%를 구성하는 노동자·농민계급과 도시소부르주아·지식인 및 부르주아와의 연합을 제시하고 있다.177)

 또한<조선공산당선언>은 조선공산당이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대본영(국제공산당)의 一分隊로 압박받는 조선군중을 세계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과 세계 무산자혁명, 특히 일본의 사회주의혁명과 또 쏘베트사회주의연합공화국과 밀접한 동맹을 지어 그들의 제국주의자에 대한 투쟁을 지도할 것178)이라고 하여 세계혁명운동과의 국제적 연대를 천명하였다.

 1차당대회 다음날인 1925년 4월 18일 조선공산당은 산하에 고려공산청년회(이하 공청)를 조직하였다. 공청은 15세부터 30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제1차 창립대표회는 10개도에 산재한 28개 세포회의 대표 19인과 조선공산당대표로 김찬 등 20인이 참석하였다. 박헌영과 조봉암이 1921년부터 1925년 4월까지 고려공산중앙총국의 사업경과를 보고하였다.179) 공청은 국제공청 동양부위원회에서 제정한<고려공청강령>을 채용하고 대회준비위원회에서 작성한 규약을 통과시켰다. 또한 공청은 1925년 4월 21일 제1차 공청중앙간부회를 열어 책임비서로 박헌영을 선출하였다.180)

160)<金洛俊調書(1931)>(金俊燁·金昌順 編,≪韓國共産主義運動史(資料篇 I)≫, 高麗大 亞細亞問題硏究所, 1979), 16쪽.

Шабшина Ф. И., ИСТОРИЯ КОРЕИКОГО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ГО ДВИЖЕНИЯ (1918-1945 ГГ.), АКАДЕМИЯ НАУКСССР, МОСКВа, 1988, p.100.
161) 꼬르뷰로 국내부의 각 야체이카 책임자는 다음과 같다. 시대일보-홍남표, 조선일보-김재봉, 조선노농총동맹-권오설, 신사상연구회(화요회)-홍증식, 신흥청년동맹-전무, 신의주-독고전, 평양-진병기, 재령-미상, 함흥-미상, 인천-안기성, 대구-최원택, 동래-백광흠, 마산-김명규, 진주-강달영, 광주-신동호(<金洛俊調書>(金俊燁·金昌順 編,≪韓國共産主義運動史(資料篇 I)≫, 高麗大 亞細亞問題硏究所, 1979), 13∼14쪽).
162) T.H.Cho, 앞의 글, 119∼120쪽.
163) Шабшина Ф. И., 앞의 책, 100∼101쪽.
164) T.H.Cho, 앞의 글, 119쪽.
165) 위와 같음.
166)朝鮮總督部 警務局,<朝鮮共産黨事件ノ檢擧顚末(1926년 8월)>(≪朝鮮共産黨關係雜件≫1, 高麗書林, 1990), 564∼565쪽.

梶村秀樹·姜德相 編, (≪現代史資料≫29, みすず書房, 1972), 37쪽.
167)코민테른 집행위원회 동양부앞,<조선공산당대표 조동호(장국보)의 보고(1925. 12 .25)>(러시아현대사문서보관연구센터, 495-135-110), 9쪽.
168) T.H.Cho, 앞의 글, 125∼126쪽.
169) T.H.Cho, 위의 글, 126쪽.
170) 위와 같음.
171) 위와 같음.
172) Шабшина Ф. И., 앞의 책, 100쪽.
173) Искрин, Зарождение и развитие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ой движения в Корее, 1929. 5. 6(Ф.495 Оп.135 д.168a, 146∼186·248쪽). Шабшина Ф. И., 위의 책, 100쪽에서 재인용.
174)<朝鮮共産黨宣言>(≪불꽃≫제7호, 1926년 9월 1일).
175) 具然欽,<朝鮮共産黨과 高麗共産靑年會大獄記>(在上海重光總領事,≪공산당간부 구연흠의 취조에 관한 보고(1930년 10월 4일)≫, 姜德相·梶村秀樹 편,≪現代史資料≫29, みすず書房, 1972), 419∼420쪽.
176)<朝鮮共産黨宣言>(≪불꽃≫제7호, 1926년 9월 10일).
177)<선언>은 “부르주아는 혁명의 주력대로 될 능력이 없으나 그들도 또한 제국주의자들의 압박을 받아 불만족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아직까지 그 자체 내에 혁명적 소질이 없지 아니하므로 혁명의 선봉대와 직접 동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부르주아계급까지를 민족해방투쟁의 동맹세력으로 파악하였다(<朝鮮共産黨宣言>,≪불꽃≫제七호, 1926년 9월 1일).
178)<조선공산당선언>(≪불꽃≫제7호, 1926년 9월 1일), 353쪽.
179)<高麗共靑 一般進行情況>(РЦХИДНИ ф.533 оп.10 д.1908)과<고려공산청년회 제1차 창립대표회 회의록>(РЦХИДНИ ф.533 оп.10 д.1891). 이 자료에는 고려공산청년회의 조직경과와 국제공청, 조공과의 관계 등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高麗共靑 一般進行情況>에서는 1921년 국제공산청년회(КИМ) 제2차 대회 이후인 1921년 8월 국제공청의 지시로 조직된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이 조직되었는데 공청은 이를 자신의 조직적 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180)<고려공산청년회 제1차 창립대표회 회의록>(РЦХИДНИ ф.533 оп.10 д.1891), 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