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1. 병참기지화정책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일제가 도발한 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한 군수물자 보급지로 규정된 조선 경제는 군수부문의 급성장으로 경공업(식료품공업·방직공업), 중화학공업(화학공업·금속공업·기계기구공업)으로 나눈 공장생산의 업종별 구성의 추이에서 이전과 달리 ‘고도화’ 현상을 보였다. 즉<표 1>에서 각년별로 양자의 비중을 보면 1931년(65.8%:18.3%), 1937년(53.4%:33.4%), 1939년(44.2%:43.6%), 1942년(38.7%:46.9%)에 이르는 동안 1930년대 전반기까지의 경공업 절대 우위에서 1939년을 경계로 중화학공업 우위로 반전되었다. 1930년대 이후 공장(5인 이상 고용)의 생산액(이하 공산액)은 ‘조선공업화’ 정책 시행기간인 1931∼1936년간(2.62배)은 물론 ‘병참기지화’ 정책 시행기간인 1936∼1942년간(2.59배)에도 급증 추이를 보였다. [공산액/농산액] 비율도 1931년(39.1%) 이후 계속 급증하여 1936년(59.6%)에는 절반을 넘었고 1940년(80.1%)과 1941년(89.7%)에는 근접한 수준으로 좁혀졌다.

물론 이 시기의 공업화는 몇 가지 점에서 뚜렷한 한계가 수반된 것이었다. 첫째 1939년에도 가내공업(4인 이하 고용) 생산액이 공산액의 22%를 차지하여017) 시장장악력이 제한적이었다. 둘째 공산액은 급증했지만 적어도 1941년까지 농산액에 미치지 못했고 공산품 원료로 쓰인 농산액까지 공산액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중은 더 떨어진다. 또 이 시기 경제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물가를 감안하면 공산액의 실제증가율은 명목증가율 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었다. 예를 들어 통제경제 초기인 1936∼1939년간의 공산액 증가율(2.03배)은 실제보다 낮게 잡힌 물가상승율(1.64배)에 따르더라도 실질 증가율(1.24배)과 큰 차이를 보였다. 셋째 공산액은 1943년 이후 전황이 일본에게 불리해지고 연합국의 봉쇄정책이 강화되자 수송이 두절되어 원활한 원자재 공급에 제동이 걸리면서 절대액 자체가 감소 추이로 반전되었다. 생산성, 즉 노동생산성과 공장의 평균생산액도 1940년대 들어 격감 추이를 보였다.

연도 공장수

(F)
고용 노동자수 공장생산액(만엔)과 주요업종별

비중(%)
평균생산액

(엔)
전 년 비

증가율(%)
총인원

(N)
기술자

(S)
S/N

(%)
총 액

(P)
방직 금속 기계

기구
화학 식료

공장

(P/F)
노동자

(P/N)
P P/F P/N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

1941

1942

1943

1944
4,613

4,643

4,838

5,126

5,635

5,927

6,298

6,624

6,953

7,142

10,889

12,669

13,293

 
106,781

110,650

120,320

138,809

168,771

188,250

207,002

230,996

270,439

294,971

301,752

331,181

362,953

 
3,262

3,340

3,568

4,171

4,871

5,051

5,592

7,152

8,250

10,406




6,129
3.1

3.0

3.0

3.0

2.9

2.7

2.7

3.1

3.1

3.5




 
27,515.1

32,327.1

38,482.2

48,652.2

64,398.7

72,031.9

96,736.5

116,711.5

145,983.2

164,504.7

172,222.5

186,391.2

205,000.0

200,000.0
8.9

9.5

10.1

10.2

11.1

12.5

12.7

13.4

13.2

14.0


16.8

16.8

 
5.9

6.7

7.6

8.5

3.3

3.9

4.7

7.4

9.0

8.8


11.1

14.6

 
0.8

0.7

0.8

1.0

1.0

1.0

1.1

1.8

3.2

4.2


5.7

5.6

 
11.6

10.9

13.5

14.0

18.3

22.6

27.6

27.2

31.4

39.4


30.1

29.3

 
56.9

59.4

52.3

53.3

50.6

44.5

40.7

38.4

31.0

18.5


21.9

19.5

 
59,647

69,625

79,542

94,913

114,283

121,532

153,599

176,195

209,957

230,334

158,162

147,124

154,217

 
2,577

2,922

3,198

3,505

3,816

3,826

4,673

5,053

5,398

5,577

5,707

5,628

5,648

 

17.5

19.0

26.4

32.4

11.9

34.3

20.6

25.1

12.7

4.7

8.2


 

16.7

14.2

19.3

20.4

6.3

26.4

14.7

19.2

9.7

-31.3

-7.0


 

13.4

9.5

9.6

8.9

0.3

22.1

8.1

6.8

3.3

2.3

-1.4


 
기간별 증가율 (배)
1931

∼36
1.29 1.76 1.55   2.62 3.70 1.76 3.21 5.09 2.05 2.04 1.49      
1936

∼42
2.14 1.76     2.59 3.47 7.32 14.32 3.46 1.27 1.21 1.47      
1942

∼43
1.05 1.10                          

<표 1>1930년대 이후 공장(5인 이상 고용) 및 생산액 추이

*≪朝鮮經濟年報≫Ⅰ(1948), 100쪽;≪朝鮮總督府統計年報≫(1940), 112∼119쪽. 1941년 이후는≪朝鮮經濟統計要覽≫(1949), 69∼70쪽.
비고:1943년, 1944년 생산액은 예정치임. 1944년의 기술자 수는 토목건축 부문(2,347명)을 뺀 인원임.

<표 1>에서 공산액 추이를 보면 예정치인 1944년부터 감소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1943년의 추정치를 15억여 엔으로 집계한 다른 자료018)가 전후에 발표되어 훨씬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면, 공산액은 1943년부터 심각한 상태에 빠져 1942∼1943년간에 극심한 감소율(-19.5%)을 보였다. 즉 공장 생산은 1939년까지 비교적 순조롭게 증가했지만, 이미 1940년부터 자재난에 봉착하여 조업이 연기되거나 예정된 사업 착수가 중지되는 경우가 많아019) 일제가 독려하는 의도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940년대에는 모든 가용자원을 군수생산에 집중하고 통제 강도를 높였지만 공산액 증가율이 둔화되었고 1943년 경부터 절대액 자체가 감소했다. 1938년에<국가총동원법>과 더불어 시행된 물자동원계획이 1940년부터 중점주의 생산방침으로, 생산력확충계획이 설비확장보다 기존설비를 최대한 활용한 단기적 생산량 극대화방침으로 바뀐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바로 이런 와중에서 일제는 1941년 말 미국과의 전쟁까지 도발한 것이다. 전쟁 도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2년 미드웨이해전의 대패 이후 선박 상실이 급증함에 따라 수송력이 두절됨으로써 물자난과 생산력 감소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각년별 공산액 증가율도 1940년 경부터 격감했는데 1936∼1937년간(34.3%)부터 1938∼1939년간(25.1%)까지는 대단히 높았지만, 1939∼1940년간(12.7%)에 격감한 이후 1940∼1941년간(4.7%), 1941∼1942년간(8.2%)에는 현격하게 떨어졌다. 1940∼1942년간에도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률에 가까웠고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공산액은 대체로 1940년 경부터 실질적으로 또는 절대액 면에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들었다. 다만 1931∼1936년간의 증가율(2.62배)에 비해 기간이 짧은 3년간인 1936∼1939년간의 증가율(2.03배)이 비교적 높았던 것은 만주침략 이후 신설되기 시작한 공장들이 1937년 경부터 조업에 착수된 경우가 많았고 중국침략 이후 건설된 공장들도 시국의 중대함에 비추어 바로 조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산액 감소는 생산성의 격감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936∼1942년간에〔공장수(2.14배)<생산액(2.59배)〕증가율 관계를 보였지만 단위공장의 생산성, 즉 공장의 평균생산액 증가율(1.21배)은 이전 시기보다 크게 둔화되었다. 각년별 증가율 추이를 보면 1936∼1937년간(26.4%) 이후 떨어져 1939∼1940년간(9.7%)에 격감한 이후 마이너스로 반전되었는데 1940∼1941년간(-31.3%)의 감소율이 특히 컸고 1941∼1942년간(-7.0%)의 감소율도 적지 않았다.

노동자수는 1931∼1936년간(1.76배)에 이어 1936∼1943년간(1.93배)에도 급증했지만 노동생산성, 즉 노동자의 평균생산액은 1940년대에 격감 추이를 보였다. 노동생산성의 각년별 증가율을 보면, 1936∼1937년간(22.1%)을 정점으로 1937∼1938년간(9.1%)에 격감한 후 1940∼1941년간(2.3%)까지 매년 떨어졌으며 1941∼1942년간(-1.4%)에 마이너스로 반전되었다.

회사의 납입자본 증가 추이는 1931∼1936년간(2.01배)에 비해 1936∼1941년간(2.34배)에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1934∼1935년간(37.0%)부터 1938∼1939년간(37.3%)까지, 즉 중국침략을 전후한 시기에 급증했을 뿐 일제가 자금동원에 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1940∼1941년간(5.4%)에는 격감했다. 자본생산성(공산액/납입자본금 비율)의 각년별 추이를 보면 투자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납입자본이 급증하는 1934∼1935년간(-3.4%)과 1935∼1936년간(-8.6%)의 마이너스 성장률은 투자와 공장가동의 시차 때문이기도 하지만 1938∼1939년간(-8.9%) 이후에도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전시체제에 따른 생산독려 속에서도 생산량이 조선경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동원한 투자액을 따르지 못하여 투자효율은 현저하게 격감하고 있었다.020)

이처럼 각 부문의 생산성이 격감하는 와중에서 공장수가 1940년대에도 계속 늘어났다는 것은 사실상 휴폐업 된 경우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공장가동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던 당시의 현실을 반증한다. 한편 1943년의 공산액 추정치를 15억여 엔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42∼1943년간에 공장생산성(-23.3%)과 노동생산성(-26.6%)이 격감했고 이러한 추이는 일제가 패전할 때까지 더욱 심해져 갔다.

공산액의 업종별 추이와 특징을 살펴보자. 이전까지 가장 비중이 컸던 식료품공업은 1931∼1932년간(56.9∼59.4%)에만 늘어났을 뿐 이후 다른 업종의 급증으로 계속 감소하다가 1939년에 화학공업에 수위를 내주었고 특히 1940년(18.5%)에 격감하여 1936∼1942년간의 증가율(1.27배)도 가장 낮았다. 비료 및 군수원료의 생산이 급증하여 화학공업은 1931∼1936년간(5.09배, 11.6∼22.6%)에 급증했고 1939년(31.4%)에 최다비중을 차지한 이후 1940년(39.4%)에는 압도적인 업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기초부문인 산·알칼리공업은 물론 유기화학공업 부문이 거의 없이 약품 및 염료 공업의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했다. 방직공업은 1931년(8.9%), 1937년(12.7%), 1942년(16.8%)에 이르는 동안 계속 확대되어 1936∼1942년간 증가율(3.47배)도 대단히 높았다. 특히 면방직공업은 ‘일본권’과의 종속적 분업연관 속에서 중국침략 이후 늘어난 군수요를 충족시키고, 일본이 군수공업에 치중하면서 발생한 필수품 공급의 부족을 보완하는 역할 때문에 크게 성장했다. 이 기간 면방직업의 경영주체는 경성방직 외에는 대부분 일본자본이었는데 면방직업도 1940년대 이후에는 목화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정체 또는 축소되는 처지에 놓였다.

금속공업은 1931∼1936년간(5.9∼3.9%)의 완만한 감소 추이에서 1937년(4.7%) 이후 늘어나 1942년(11.1%)과 추정치인 1943년(14.6%)에 급증했는데 1936∼1942년간의 증가율(7.32배)도 대단히 높았다. 기계기구공업은 1936∼1942년간(14.3배, 1.0∼5.7%)에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비중이 작았고 2∼3개 대공장을 제외하면 소규모 수준이었다. 금속·기계기구공업의 비중은 1938년(9.2%)에 비해 1942년(16.8%)에 늘어났지만, 일본의 경우 1938년(41%)에 이미 절대적 비중을 점했고 1940년대에 70%로021) 급증한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일본권’의 종속적 고리로 규정된 가운데 선철이나 鋼 등 군수용 광물의 이출과 공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금속·기계기구공업의 제한적 성장도 생산수단의 생산보다 수리·조립 수준에 머물러 일본으로부터 중공업제품 수입의 급증을 수반했다. 1940년에도 기계기구 자급률은 제조가공용 기계 19.6%, 차량·선박·자동차 및 부속품 등 수송수단에서 29.5%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는 4∼7%의 낮은 수준이었고 공작기계나 철도기관차의 경우는 전무했다.022)

017)≪朝鮮經濟統計要覽≫(1949), 71쪽. 이 비율은 1935년(35%)에 비해 크게 축소된 것이었다.
018)大藏省管理局,≪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第6分冊, 19∼20쪽.
019)川合彰武,≪朝鮮工業の現段階≫(東洋經濟新報社, 1943), 229∼230쪽.
020)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연 도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 1941 기간별

증가율(배)
1931

∼36
1936

∼41
납입자본금(만엔) 35,923 37,525 39,324 43,151 59,128 72,326 93,467 102,814 141,159 160,372 168,954 2.01 2.34
전년비증가율(%)   4.5 4.8 9.7 37.0 22.3 29.2 10.0 37.3 13.6 5.4    
자본생산성 0.77 0.86 0.98 1.13 1.09 1.00 1.04 1.14 1.03 1.03 1.02 1.30 1.02
전년비증가율(%)   12.5 13.6 15.2 -3.4 -8.6 3.9 9.7 -8.9 -0.8 -0.6    

(<표 1>,≪朝鮮總督府統計年報≫, 각년판).
*공산액에는 회사가 아닌 소공장 생산액도 포함되지만 추이 파악에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021)川合彰武, 앞의 책, 309쪽.
022)朝鮮銀行調査部,≪朝鮮經濟年報≫Ⅰ(1948), 10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