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한 후 임시정부는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을 모색하였다. 당시 독립운동전선은 중경의 임시정부와 더불어 延安을 중심으로 한 朝鮮獨立同盟과 朝鮮義勇軍, 그리고 국내의 朝鮮建國同盟이 주요 세력을 형성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이들과의 통일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그 중에서도 독립동맹과는 서신과 대표 파견을 통해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은 지역적 기반이나 정치적 이념이 달랐지만, 그 실체를 서로 인정하며 존중하고 있었다. 1941년 10월 연안에서 개최된 東方各民族反파쇼大會에서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명예주석단에 추대한 것이나, 독립동맹 晉西北分盟 성립대회에서 김구의 초상화를 孫文·蔣介石·毛澤東의 것과 함께 대회장에 내걸었다는 것이966) 그것의 일단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독립동맹은 임시정부에 대해 대립적·경쟁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강령에 “본 동맹은 조선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지방단체”로 명시한 것이 그것이다.967) 독립동맹이 자신의 위상을 ‘하나의 지방단체’로 자임한 것은 중경의 임시정부를 민족운동의 중앙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독립동맹 사이에는 지속적인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독립동맹의 간부인 金學武가 중경과 연안을 오가며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독립동맹 위원장 金枓奉의 서신연락을 담당하였다고 한다.968) 조직적인 연락체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편을 통해 상호간에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 중경에 있던 민족혁명당의 김원봉도 연안의 김두봉·武亭과 별도의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969)

이러한 상호간의 신뢰와 연락에 기초하여 임시정부는 독립동맹과의 통일을 추진하였다. 좌익세력이 참여한 이후 임시정부가 대내적으로 추진한 과제의 하나는 민족독립운동의 최고 영도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한 방안들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확대 개조,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 5당 통일회의 등의 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970)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연안의 독립동맹, 국내의 건국동맹 등과의 통일문제가 제기되었다.

임시정부는 1944년에 들어와 독립동맹과의 통일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44년 3월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독립동맹 위원장인 김두봉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 그러한 시도였다. 이 서신에서 “老身이 一次赴延하면 中韓兩方面이 歡迎할 可望이 있겠는지”라 하여,971) 김구는 자신이 직접 연안에 갈 뜻을 밝히고 있다. 김구가 연안에 가고자 한 것은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의 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립동맹측에서도 통일전선에 대한 희망을 표시하였다. 1944년 4월 임시정부가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하였을 때, 독립동맹은 이를 축하하면서 “일체의 혁명세력이 모두 완전히 통일되고 단결하여 대규모의 항일투쟁을 전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다.972) 이것이 김구가 제안한 연안행에 대한 독립동맹측의 화답이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양측이 모두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1944년 말에 이르면 통일에 대한 논의는 좀더 구체화된 단계로 발전하였던 것 같다. 1944년 10월 16일 김두봉이 김구에게 보낸 서신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김두봉은 김구의 연안행을 환영한다고 하면서 “지역·파벌을 불문하고 誠心團結할 것과 서로 연락을 취하여 압록강에서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면 자신이 나서서 알선해보겠다”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973)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이 압록강에서 만나 군대를 조직하여 국내로 진입하자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논의가 구체화되자 임시정부는 연안으로 대표를 보냈다. 연안에 파견될 인사로는 국무위원 장건상이 선임되었고, 그는 1945년 5월 서안을 거쳐 연안에 도착하였다.974) 장건상은 연안에서 독립동맹 위원장 김두봉을 비롯한 간부들을 만났다. 양측의 제안이나 교섭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건상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김두봉을 만나 좌우 통일전선을 중경에서 결성하자고 제의했더니 찬성해요. 자기가 중경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다른 간부들도 모두 찬성이었어요. 그 때는 일제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을 때였으니까 우리가 하루빨리 뭉쳐 해방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던 때였습니다(李庭植 면담, 金學俊 편집 해설,≪혁명가들의 항일회상≫, 민음사, 1988, 211쪽).

단편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임시정부와 독립동맹 사이에는 중경에 모여 통일전선문제를 협의하자는 데 합의를 이루었고, 김두봉 자신이 중경으로 가서 이 문제를 협의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경에서의 회의는 성사되지 못하였다. 일제의 패망소식이 먼저 전해진 것이다. 즉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이 중경에 모여 회의를 개최한다는데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 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연안의 독립동맹과 더불어 임시정부는 국내와도 긴밀한 연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1944년 10월 3일 국내비밀공작을 진행하기 위하여 주석이 주관하는 國內工作委員會를 설치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보면,975) 적어도 임시정부는 국내와의 연계를 도모하고 있었다. 그리고 國內工作員을 파견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白昌燮이 임시정부 요인들의 동의를 얻어 1945년 4월 국내에 잠입하였다는 증언이 있고,976) 文德鴻은 국내공작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부산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977) 아직 구체적인 실상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임시정부에서는 국내와의 연계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공작원들을 국내로 파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임시정부가 국내와 연계하려는 노력을 추진한 것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도모하고 있었다. 1944년 8월 呂運亨의 주도로 결성된 朝鮮建國同盟이 그러한 단체였다. 건국동맹은 북만주·북경·연안 등 중국 여러 지역에 연락원들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락원들을 통해 건국동맹은 화북의 독립동맹과 연계를 맺는 한편, 임시정부와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1945년 5월 말 “重慶 臨時政府 요인에게 국내사정을 전달하고 내외가 상응하여 協同戰線을 형성할 연락을 하기 위하여 崔謹愚를 파견하였는데”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978)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위해 건국동맹은 최근우를 북경에 파견하였지만, 임시정부와의 직접적인 연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연안의 독립동맹, 국내의 건국동맹과 통일 및 연계를 추진하고자 했던 임시정부의 노력은 일제의 패망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유효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임시정부가 중경에서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하였고, 이를 배경으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통일을 추진하였다는 점이다. 1940년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이 상호 통일을 이루려는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향후 민족통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주요한 민족적 자산이자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韓詩俊>

966)염인호,≪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나남출판, 2001), 154∼155쪽.
967)<華北朝鮮獨立同盟綱領>(金正明,≪朝鮮獨立運動≫5), 992∼993쪽.
968)韓洪九,<華北朝鮮獨立同盟의 조직과 활동>(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88), 67쪽.
969)鄭秉峻,<해방 직전 임시정부의 민족통일전선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80주년기념논문집≫하, 국가보훈처, 1999), 576쪽.
970)鄭秉峻, 위의 글, 563∼573쪽.
971)당시의 서신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1948년 2월 김구가 김두봉에게 남북협상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1944년에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서신의 내용을 회상하고 있다(<金九 金奎植이 金枓奉에게 보낸 서신>, 대한매일신보사,≪白凡金九全集≫8, 1999, 721∼726쪽).
97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8, 198∼199쪽.
973)대한매일신보사,≪白凡金九全集≫8, 722쪽.
974)鄭秉峻, 앞의 글, 578쪽.
975)<國內工作委員會設置案>(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 1, 527쪽).
976)鄭秉峻, 앞의 글, 582쪽.
977)鮮于鎭 선생의 증언(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에 국내공작원으로 파견된 사실을 보여주는 文德鴻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978)李萬珪,≪呂運亨先生鬪爭史≫(民主文化社, 1946), 17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