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국사학
일제 강점기의 한국사 연구 역시 국어·국문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민족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일제의 식민주의사학이 세력을 떨치는 상황에서, 한국사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되는 일이었다. 특히 일제의 국권침탈이 본격화되던 한말에 출발한 계몽적인 민족주의사학은 보다 성숙해지면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이해되었다. 朴殷植과 申采浩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1930년대 국내에서는 ‘朝鮮學運動’이 전개되었는데, 安在鴻·鄭寅普·文一平 등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사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1920년대 이후 한국사 연구는 좀더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보편성이 강조된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이해하고자 한 사회경제사학과, 문헌고증을 중시한 실증사학이 민족주의사학과 더불어 식민지 시기의 한국사 연구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白南雲·李淸源 등이 사회경제사학을 대표한다면, 李丙燾·李相佰 등이 실증사학을 대표한다고 하겠다. 민족주의사학자들이 전통교육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들은 주로 일본에서 근대교육을 이수하고 있었다. 나아가 이 세 가지 연구방법론을 통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물론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전개된 역사학 연구를 동일한 기준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특징적인 학문적 조류를 강조한 편의적인 분류이다.184)
일제의 관학자들이 주도한 식민주의사학은 한국사의 왜곡과 말살에 뜻을 두고 있었다. 즉 식민주의사학은 타율성과 정체성을 내세우며 일제의 한국 침략의 정당성과 그 지배의 합리화를 기도하였던 것이다. 바로 일제 강점기에 식민주의사관이 극성을 부렸는데, 민족주의사학뿐 아니라 사회경제사학과 실증사학 역시 그 극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184) | 일제 강점기의 역사학 전반에 관해서는 다음이 참조된다. 이 글의 전개에 있어 별도의 인용이 없어도 이들 연구를 기초로 하였다. 金容燮,<우리나라 近代歷史學의 發達>1·2(≪文學과知性≫4·9, 1971·1972). 李基白,<國史學>(≪韓國現代文化史大系≫2,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77). 姜萬吉,<日帝時代의 反植民史學論>(≪韓國史學史의 硏究≫, 乙酉文化社, 1985). 鄭在貞,<日帝時代 歷史學의 思潮와 歷史意識>(≪韓國思想史大系≫6,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3). 李萬烈,<日帝下의 文化運動>(≪韓國現代史의 諸問題≫, 乙酉文化社, 1987). 이철성,<식민지시기 역사인식과 역사서술>(≪한국사≫23, 한길사, 1994). 조동걸·한영우·박찬승 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비평사, 1994. 김기승,<식민사학과 반식민사학>(≪한국역사입문≫3, 풀빛, 1995). 趙東杰,≪現代韓國史學史≫(나남,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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