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Ⅴ. 과학과 예술4. 체육·무용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민족말살책동과 민족체육의 수난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본격적인 전시체제를 발동하는 동시에 이른바 ‘내선일체’를 강조하여 조선민족의 황국신민화정책을 본격화하였다. 그리하여 신사참배에 이은 황국신민서사와 창씨개명, 그리고 조선어 사용금지 등을 추진함으로써, 조선 민족성의 말살을 획책하였다. 또한 전쟁인력의 확보를 위해<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여 조선청년 수만 명을 지원병 형태로 전쟁에 끌어들이는가 하면, 1943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여 약 20만 명이 징집되었고, ‘학도지원병’제도가 강행되어 약 4,500명의 전문학교학생과 대학생들이 전쟁터로 끌려나갔다. 이와 함께 일제는 모집·징용·보국대·근로동원·정신대 등을 통한 조선인의 희생을 대량으로 강요한 노동력의 강제수탈을 시행하였다. 특히 중일전쟁 이후에는<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곧이어 1939년에<국민징용령>을 실시하여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하였다.581)

 이러한 민족말살정책을 조선의 체육계에도 적용하기 위해 일제는 우선 학교체육정책의 개편을 시도하였다. 그 내용은 학교체조 교수요목을 통해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27년에 개정한 학교체조 교수요목은 유희와 경기 중심이었으나, 1937년에는 군사능력을 강화시키는 내용으로 개정을 꾀하였다. 그러나 1938년 3월에는 새로이 개정된<조선교육령>에 의거하여 식민지교육에서 민족말살정책을 본격화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요구에 부응하는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체조 교수요목이 다시 개정되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國體明徵’·‘內鮮一體’·‘忍苦鍛鍊’으로서, 특히 인고단련은 체육교과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학교체육에 ‘황국신민체조’를 도입하였다.582) 이는 종래의 학교체조에다 劒의 요소를 넣어 심신을 단련하는 형식으로 만든 체조로서, 일본의 武道精神을 함양함으로써 황국신민의 기백을 양성한다는 목적을 띤 것이었다.583) 그 결과 이후 학교체조는 유희중심의 서구 체조가 사라지고 순 일본식의 체조가 행해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학교체육은 자연히 중일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능력의 제고를 위한 군사훈련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국가총동원법>을 실시하면서 ‘국민정신총력연맹조선지부’를 설치하기에 앞서 조선인 민간단체의 일본화정책에 의거하여 조선체육회의 해산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전시체제의 순응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조선 체육단체의 통제방침을 세워 나갔다. 그러한 조치는 1938년 5월 12일 당시 ‘체육단체도 전면적 통제’라는≪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즉 총독부 학무국에서 조선의 체육운동을 철저히 강화하기 위해 체육기관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기로 하고 7월 초순경에 통제안을 발표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또한 일제는 당시 조선내에 90여 개의 체육단체를 통합한다는 방침과 함께 전국의 도·군·읍의 체육협회를 통일적으로 통제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584)

 결국 1938년 7월 4일 ‘체육기관의 일원화’라는 미명하에 조선체육회가 당시 경성의 또 다른 일본인 체육단체인 조선체육협회에 흡수·통합되었다.585) 이로써 1920년 이후 조선체육계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었던 조선체육회는 일제의 강제에 의해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 뿐 아니라 민간단체로 구성된 체육기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탄압이 가해졌던 것이다.

 조선체육회가 강제 통합된 이후 일제는 조선내의 무도계 통합을 착수해 나갔다. 당시 황국신민체조가 일본의 고유한 검도를 변용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무도는 군국주의 체육을 실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분야였다. 그러자 일제는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일본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도조직을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586) 이에 따라 1938년 7월 1일부터 조선인 유도단체인 조선무도관·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유도부·조선강무관·조선연무관을 동경 講道館의 조선지부로 통합하였다.

 또한 1938년 9월 3일에는 전조선 사회체육 운동단체를 통제하기로 하고 그 지도기준과 통제계통을 발표하였다.587) 이때 발표된 지도기준에 따르면 체육운동단체는 대소공사의 구별없이 국민체력향상기관으로서 긴요하기 때문에 그 조직을 강화하여 내선일체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실행방법으로서 합동체조·체조대회·단체행진·무도경기의 실행 그리고 체육운동 경기회나 체육대회시에 궁성요배·일본기 게양 등을 하며 일본군가를 부르고 경기용어를 일어로 사용토록 하였다.

 1941년 8월 1일 조선체육협회는 조선학생체육총연맹를 흡수하였다.588) 이 단체는 1937년 조선내의 전문학교·대학의 스포츠단체를 통제하고자 결성된 단체였는데, 이 시기에 와서 국민총력학교연맹의 발족으로 조선체육협회에 통합되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의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체제강화에 따른 체육통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종래 일본인이 중심이 된 민간단체로서, 조선체육계를 통제해 왔던 조선체육협회가 1942년 2월 18일 조선체육진흥회로 통합된 것에서 확인된다. 조선체육진흥회의 발족은 당시 관서체육회를 비롯한 전국의 조선인 체육단체를 모두 해체하고 일원적으로 통합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589) 결국 조선체육진흥회는 일제 말기 조선내 체육분야에서의 황국신민화를 주도하고 전시체제하의 국방체육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유일한 통제기관이었다.

 이후 조선의 체육은 정상적인 체육발달은 기대할 수 없었고, 오로지 전쟁준비를 위한 체력증강·전투훈련만이 체육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졌다. 실제로 일제는 1942년 4월<朝鮮學徒體育大會實施要綱>과<學校體育刷新指導方針>을 발표하였는데, 그 골격은 승패를 배척하고 황국신민의 자질향상과 전력증강에 맞는 경기만을 시행하도록 규정하였다.590) 이 조치로 모든 체육대회의 개최나 참가는 조선총독부의 승인이나 허가없이는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그 이전에 각 지방체육단체에 의해 개최되었던 전조선 체육대회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학교단위의 해외원정경기도 원칙적으로 봉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울러 1942년에는 만 18세와 19세의 조선청년 남녀에게 체력검사를 실시하여 전시인력확보를 도모하였다.591)

 1943년 5월 15일에는<決戰下 一般國民體育實施要綱>을 다시 제정하여 일반인들에까지 체육 통제를 단행하였다.592) 이 요강은 1944년부터 시행된 징병제에 대비하기 위해 전력증강에 목표를 두고 반포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일제는 1943년부터 전시체력의 증대를 위해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에게 남녀 체력장 검정제를 실시하였다. 이때 남자는 체력장 검정종목(단거리·장거리·도약·투척·운반·매달리기)과 체조·행군·육상·수영·씨름·총검술·사격·해양훈련·항공훈련·기갑훈련·기마·雪上운동·빙상운동이 채택되었으며, 여자는 체력장 검정종목(경보·도약·투척·운반·도수체조)과 체조·행군·육상·수영·구기·설상운동·빙상운동이 채택되었다.593) 이러한 조치는 전조선의 전시동원체제를 갖추고 대비하기 위한 기도로서, 민족체육의 존립을 위협하는 민족말살책동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조선 체육은 정상적인 발전이 거의 불가능하였고 일제에 의해 민족체육의 존립 기반조차 말살됨으로써 일대 암흑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각종 경기대회에서 조선인들이 보여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은 작지만 조선인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1940년 부산에서 개최된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의 부정에 대항하여 조선인 중학생들이 독립만세를 불렀던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594)

 결국 일제하 민족체육은 암울했던 민족수난 시기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지성과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귀중한 버팀목이 되었다. 동시에 국가를 잃은 조선인들에게는 경기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희망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체육을 통한 일제에 대한 저항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항일투쟁적 성격을 지님으로써 일제하 독립운동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581)1939년부터 1945년까지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0만 명에서 146만 명에 이른다(강만길,≪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1984, 34∼37쪽).
582)나현성, 앞의 책, 220쪽.
583)朝鮮總督府 學務局,≪朝鮮における敎育革新の全貌≫(1938), 149∼150쪽.
584)≪조선일보≫, 1938년 5월 12일.
585)조선체육회, 앞의 책, 88쪽.
586)≪조선일보≫, 1938년 5월 12일.
587)≪동아일보≫, 1938년 9월 3일.
588)≪경성일보≫, 1941년 8월 1일.
589)≪경성일보≫, 1942년 2월 15일.
590)조선총독부 학무국 학무과 편,≪현행조선교육법규≫(조선행정학회, 1942), 206쪽.
591)≪매일신보≫, 1942년 3월 1일.
592)경성일보사,≪朝鮮年鑑≫(1943), 539∼540쪽.
593)경성일보사, 위의 책, 539∼540쪽.
594)이학래, 앞의 책, 213∼214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