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2권 대한민국의 성립Ⅱ. 통일국가 수립운동1. 광복 전후의 통일국가 수립운동2)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대립(4) 신탁통치 문제와 좌우의 갈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1. 해방 이전 미·소의 대한정책
          • 1) 미국의 전후 대한정책 형성
          • 2) 해방 이전 소련의 대한정책
        • 2. 해방 이후 미·소의 점령정책
          • 1) 분할점령과 미·소의 초기 점령정책
          • 2)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과 미·소공동위원회(1946∼1947)
          • 3) 점령에서 분단으로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광복 전후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 (1) 제2차 세계대전과 해방
            • (2) 해방정국과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 (3) 조선인민공화국의 탄생과 좌절
          • 2)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대립
            • (1) 모스크바 결정과 국내의 파장
            • (2) 우익세력의 통일전선-비상국민회의
            • (3) 좌익세력의 통일전선-민주주의민족전선
            • (4) 신탁통치 문제와 좌우의 갈등
            • (5) 탁치문제에 대한 논쟁
            • (6) 신탁통치 문제 이후의 정국
        • 2. 주요 정치세력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우익 정치세력의 노선과 활동
            • (1) 한국민주당
            • (2) 임시정부세력과 한국독립당
            • (3) 이승만
          • 2) 좌익 정치세력의 노선과 활동
            • (1) 조선공산당
            • (2)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
            • (3) 조선신민당
            • (4) 삼당합동과 남조선노동당
          • 3) 중도세력과 좌우합작운동
            • (1) 국민당
            • (2) 미·소공동위원회 이전의 좌우합작 노력
            • (3) 좌우합작위원회
            • (4) 민주주의독립전선과 민족자주연맹
          • 4) 남북지도자회의-연석회의와 남북협상
            • (1) 김구·김규식의 남북요인회담 제의
            • (2) 북의 연석회의 제안
            • (3) 연석회의와 남북협상
            • (4) 평가와 의의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1. 미군정기의 사회
          • 1) 미군정기의 사회경제적 상황
            • (1) 경제적 혼란
            • (2) 사회적 혼란
          • 2) 미군정기의 사회갈등
            • (1) 노동문제
            • (2) 농업문제
          • 3) 9월총파업과 10월항쟁
            • (1) 9월총파업
            • (2) 10월항쟁
        • 2. 미군정기의 경제
          • 1) 해방의 경제적 의미
          • 2) 농지개혁과 식량공출
            • (1) 농지개혁
            • (2) 식량공출
          • 3) 공업생산의 소장과 귀속사업체 처리
            • (1) 공업생산의 소장
            • (2) 귀속재산의 처리와 자본의 재편
          • 4) 노동자의 존재 양태와 노동운동
            • (1) 노동자의 존재 양태와 미군정의 노동정책
          • 5) 금융·재정과 무역·원조
            • (1) 미군정기의 금융·재정
            • (2) 미군정기의 무역·원조·남북교역
        • 3. 미군정기의 문화
          • 1) 문학
            • (1) 해방공간의 소설
            • (2) 해방공간의 시
            • (3) 문학운동
          • 2) 미술
            • (1) 해방공간과 미술단체
            • (2) 왜색과 민족미술
            • (3) 미술의 대중화와 생활화
            • (4) 미술대학의 출현
          • 3) 음악
            • (1) 시기구분과 음악사적 특징
            • (2) 제1기 음악
            • (3) 제2기의 음악 전개
            • (4) 제3기의 음악전개
          • 4) 연극·영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1. 대한민국의 수립
          • 1) 단정노선의 확정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입국
            • (1) 미·소공동위원회의 최종적 결렬과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
            • (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입국과 남한단선 결정
          • 2) 5·10선거와 대한민국의 수립
            • (1) 단선을 앞둔 미군정·과도정부의 준비
            • (2) 단선에 대한 국내 정치세력의 대응
            • (3) 5·10선거와 그 결과
            • (4) 제헌국회와 정부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해방 후 북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 수립과 소련군 주둔
            • (1) 소련군의 북한 진주
            • (2)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성립과 개편
            • (3) 스딸린 비밀전문과 서북5도행정국
          • 2) 정당들의 조직과 활동
            • (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 (2) 조선민주당
            • (3) 북조선천도교청우당
            • (4) 조선신민당
          • 3)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민주개혁’
            • (1) ‘탁치정국’을 전후한 좌우대립
            •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
            • (3) ‘민주개혁’
          • 4) 북조선노동당 창당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1)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 (2) 1946년 11월 인민위원회 선거
            • (3)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5) 헌법 제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헌법 제정
            • (2) 북한에서의 분단정부 수립
(4) 신탁통치 문제와 좌우의 갈등
가. 좌익세력과 찬탁논리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반탁운동이 해방정국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익세력은 어떤 성명을 발표하거나 행동을 감행하기가 어려웠다. 이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세력이 주도해 나가고 있었던 반탁국민총동원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고,190) 12월 31일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명의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게 통일위원회 구성을 제의하였다.

 좌익세력을 대변하고 있던 중앙인민위원회는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을 동시에 해체하고 단일정부의 창설을 요구하고 있었고, 민족통일에 대한 문제는 통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에서 통일정부 수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주장하면서 1946년 1월 2일 오전 10시까지 대답을 요구하였다. 임시정부측은 송부된 공문이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위원회 명의로 되어 있어, 서식상 접수키 곤란하다는 이유로 반송해 버렸다.

 이 내용을 보면 1월 2일 오전 10시까지 회답을 요구하는 시한부로 임정에 제의하여 국민의 관심을 좌우합작 통일정부 수립으로 돌리려 하고 있고, 신탁통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김구 중심의 임정측이 조선인민공화국의 중앙인민위원회를 동등한 자격으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고 볼 수 있다.191)

 해방정국의 큰 쟁점이었고 분단고착화의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던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 좌익측이 반탁 입장을 최초로 공식적 반응으로 보인 것은 반파쇼공동투쟁위원회가 발표한 다음의 신탁통치안 철폐 요구성명서에서였다.

미국 극동부 책임자 빈센트(John Carter Vincent) 같은 사람은 공공연하게 조선을 신탁 관리할 것이라 말하였고, 국내의 소수 매국매족적 반동분자들은 여기에 영합하여, 혹은 당분간 군정기가 필요하다고 하고, 혹은 3년 후가 아니면 독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반동분자들의 신탁통치는 결국 실현되고야 말았다. … 통일은 저해되고 따라서 신탁통치를 받는 결과에까지 빠지게 된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신탁통치를 절대 반대한다. 이 신탁의 철폐를 위해서는 이 민족통일전선을 좀더 공고하게 결성하여야 할 것을 또다시 제창한다(≪서울신문≫, 1945년 1월 1일).

 그런데 좌익측이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 입장을 보인 것은 1946년 1월 2일이다. 다시 말하면 1945년 10월 20일 빈센트 발언 이래 12월 28일 모스크바협정 발표 후 조선공산당이 모스크바협정 지지를 공식으로 표명한 1월 2일까지는 신탁통치 반대라는 점에서 좌·우 양파가 일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된다. 반탁 일변도의 정국 흐름에서 1월 2일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의 다음과 같은 모스크바 3상회의 지지성명서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정국을 진전시키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1. 8월 15일을 계기로 한 조선 해방은 우리의 힘이 아니고 세계 민주주의 연합국의 용감한 군대의 힘으로 된 것이며 조선을 자주독립국가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위대한 역사적 단계였다.

2. 3상회담의 결정은 조선민족해방을 확보하는 진보적 결정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정권 수립과 조선의 민주주의적 발달을 원조하여 조선의 완전 독립을 전적으로 완성하여 세계 문명국가의 지위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의 위대한 일보 진전이다.

3. 이 결정은 現下 국제 정세뿐만 아니라 조선 국내 정세에 비추어 조선민족의 이익을 존중하는 가장 적절한 국제적·국내적 해결이며 세계의 평화 유지와 인류의 민주주의화에 최적한 결정이라고 확신하여 본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① 모스크바 3상회담의 진보적 결정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민주주의 연합국과 같이 조선의 민주주의정부 결정의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민주주의 제국의 원조와 협력에 의하여 우리 조국을 민주주의적 문명국가의 수준에 도달시키기 위하여 투쟁을 약속함.

② 전 조선 인민 각 민주주의 정당과 사회단체는 모스크바 3상회담의 완전한 실천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여야 하며…

③ 각 인민위원회와 諸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는 본 결정을 민족 대중에게 이해 보급시키며 나라를 사랑하는 전 인민은 본 결정을 깊이 인식하고…(≪朝鮮日報≫, 1946년 1월 4일).

 또한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모스크바 3상회담의 결정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이번 회담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또 한 걸음 진보이다. … 臨時的 조선 민주주의정부를 조직한다는 同 건의문에 있어서 이러한 국제적 결정은 今日 조선을 위하여 가장 정당한 것이라고 우리는 인정한다(≪中央日報≫, 1946년 1월 3일).

 좌익계열의 성명 내용을 보면 당시 반탁 열기를 반영하듯이 국민 감정을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듯 신탁이라는 말 대신 모스크바 3상회담 결정이라는 말로써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처럼 찬탁이라는 말 그 자체가 민중의 감정에 반하는 것이었고, 당시 좌익세력은 기본적으로는 소련 점령군의 노선에 따르고 있었으므로 신탁통치에 대한 공산당으로서의 공식적 태도도 소련 점령군의 견해가 분명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1월 2일에서야 그들은 보다 분명한 찬탁 입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렇다면 좌익측이 그러한 태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해방정국의 두 주역이 미국과 소련임이 분명하고 냉전 논리가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우선은 소련과의 어떤 관계 혹은 영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192)

 좌익과 우익 어느 한 세력이 해방정국의 장을 좌우할 정도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음도 좌익세력 중 어느 개인 집단이 설사 한민족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반탁 의사를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해방정국은 각 정파의 이합집산 주도권 쟁취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어느 정치세력이든 당시 반탁의 분위기에 반하는 논리의 성명서나 입장을 표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좌익세력의 반탁에서 찬탁으로의 태도 변화는 해방정국 어느 정치세력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190)≪서울신문≫, 1946년 1월 1일.
191)≪서울신문≫, 1946년 1월 2일.
192)당시 조선공산당 총비서인 박헌영은 평양에 송환되어 소련측으로부터 신탁 지지 지령을 받고 1월 2일 서울에 귀환,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고 중앙위원들의 반대를 꺾고 찬탁노선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金南植,≪南勞黨硏究≫, 돌베개, 1984, 250∼25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