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1. 미군정기의 사회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3년에 걸친 미군정 기간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갑작스럽게 단절된 가운데 격렬한 좌우 갈등이 전개되면서 전후의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던 과정이었다. 즉 미군정기의 사회는 기존의 체제는 갑작스럽게 단절되었지만 새로운 체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격렬한 갈등, 극심한 혼란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의 초래는 다음 두 차원의 영향 때문이라 하겠다.
그 하나의 차원은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야기되었던 사회경제적인 혼란상이다. 일제는 식민통치 말기에 중일전쟁 및 대동아전쟁을 위한 전시체제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으로 이러한 전시체제는 한꺼번에 붕괴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러한 단절적 사태에 의한 당시의 사회경제적 혼란상은 대단히 심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적 혼란이다. 당시 이러한 경제적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만주-조선-일본으로 이어진 일제의 식민지 경제권이 붕괴했을 뿐만 아니라, 미·소군의 남북 분할 점령으로 인해 남북의 경제적 연결도 단절된 가운데, 일본인 기술자마저 철수하자 일제의 전시경제가 하루아침에 붕괴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혼란 또한 극심했는데, 귀환동포문제 및 식량부족사태 등 해방과 더불어 새롭게 제기되었던 제반 문제들이 당시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해방과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왔으나 이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준비되지 못한 가운데 그들은 당시의 혼란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배급제 중심의 일제의 전시식량정책 대신 실시된 미군정의 식량정책의 실패는 식량부족사태를 극도로 악화시켰던 것이다.
한편 미군정기 사회에 영향을 미쳤던 또 다른 차원은 냉전적·정치적 갈등이었다. 해방은 일제 때부터 심화되어 왔던, 그러나 일제의 식민통치에 의해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사회내부의 계급적·민족적 갈등을 일시에 분출하게끔 만들었다. 나아가, 이같이 분출된 계급적·민족적 갈등은 정부수립을 둘러싼 주도권과 그 주도권의 향방에 따라 좌우될 체제 선택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미·소 및 좌우의 냉전적·정치적 갈등과 결합되었다. 이 같은 갈등 속에서 민중의 제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함으로써 그들과 결합할 수 있었던 좌파세력은 민중을 조직화하여 이를 자신의 지지·동원세력으로 활용코자 했다. 반면 미군정과 우파세력은 좌파세력의 이 같은 시도를 저지하고 분쇄함으로써 자신들이 주도하는 정부수립과 체제의 구축을 도모하고자 했다. 이렇듯 민중과 결합된 좌파세력을 한 축으로 하고 이에 맞선 우파세력 및 미군정을 다른 한 축으로 했던 당시의 냉전적·정치적 갈등은 미군정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