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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본 한국사] “신헌” 에 대한 검색 결과 총 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하고, 조선국 정부는 판중추부사 신헌(申櫶)과 부총관 윤자승(尹滋承)을 가려 뽑아 각자 받든 유지(諭旨)에 따라 조관(條款)을 의논해 결정하고 왼편에 열거한다. 제1관 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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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 수호 조규 부록, 조·일 무역 규칙
하였고, 조선국 정부는 대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과 부대관(副大官) 도총부 부총관 윤자승(尹滋承)을 파견해서 강화부에서 같이 만나, 일본력(日本曆) 메이지(明治) 9년 2월 26일, 조선력(朝鮮曆) 병자년(1876) 2월 초2일에 협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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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 수호 통상 조약
초6일 전권대관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신헌(申櫶) 전권부관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김홍집(金弘集) 대미국 1882년 5월 22일 전권대신 해군 총병 슈펠트[薛裴爾] 「Original Chinese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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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접근에 대한 정세 인식
이어졌다. 당시 접견대관이었던 신헌(申櫶, 1811~1884)은 조약 교섭의 현장에서 일본이 병력을 크게 과장하거나 군사 훈련을 단행하는 등 무력으로 위협을 시도하자 백성의 동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최대한 일본측을 자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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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의 일본 통상 추진
측 접견대관 신헌(申櫶)은 2월 12일(음력 1월 18일) 회견 자리에서 일본 측 전권대신 구로다(黑田)가 ‘조선 지방에 관(館)을 열고 함께 통상하자’라고 한 것에 대해, ‘300년 동안 어느 때라도 통상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갑자기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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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의 형성-오세창의 회고
신헌(申櫶) 대신의 아래에서 크게 활동했다. 또 중국으로부터 그림이나 글씨를 다수 매입하여 귀국하였다. 아버지 오경석이 중국으로부터 신사상을 품고 귀국하였는데, 평소 가장 친교가 있는 친구 중에 대치(大致) 유홍기(劉鴻基)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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