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 “신헌” 에 대한 검색 결과 총 1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 (3) 조일수호조규 성립과 전근대 조일 통교체제의 붕괴
- 접견대관 申櫶과 尹滋承이 일본측의 무력 위협하에 일본측의 서계를 접수함과 동시에 黑田淸隆(쿠로다 키요타카)·井上馨(이노우에 카오루)과의 사이에 朝日修好條規가 맺어졌다. 조일수호조규는 일본이 주장하는 萬國公法의...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 추사체의 출현과 유행
- 강하게 받은 서예가로는 趙熙龍·이상적·方羲鏞·許維·申櫶·李昰應·田琦 등의 후배나 제자, 그리고 아우 金命喜(1788∼?)·金相喜(1794∼?), 손자 金商佑(1817∼?)·金商懋(1819∼?) 및 인척 閔台鎬(1834∼1884)·閔奎鎬(1836∼1878)...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接見大官(申櫶, 1810∼1888)이나 의정부 관원들에게 서함을 보내어 강화에 반대할 것을 종용하는 한편 정부의 연약한 외교를 통박하였다. 儒林에서도 척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 대표적 인물이 李恒老의 문인 崔益鉉(1833∼1906)이었다....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 梁憲洙, 총융사 申觀浩[申櫶], 강화유수 李章濂은 대원군 집권기에 중앙군영의 대장직에 등용되었다. 또 이들은 경복궁 중건사업에도 참가하였다. 훈련대장 任泰瑛, 금위대장 이경하, 어영대장 許棨, 총융사 李顯稷, 우포장 李周喆 등이...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1) 운요호사건과 조선정부의 대응
- 신헌을 접견대관으로 선정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두 대신은 2월 5일 江華府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신헌을 접견대관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조선정부는 쿠로다 일행의 출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2) 조일수호조규의 내용과 성격
- 申櫶, 都總府總管 尹滋承을 簡拔하여 各其 奉承한 論旨에 遵據하여 議決한 條款을 左에 開列한다. 255) 이 글에서 인용한<조일수호조규>의 원문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편≪구한국외교자료집≫을 이용하였다....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1) 수신사파견과 개화정책의 모색
- 미야모토 오카즈)·노무라 야수시(野村靖) 일행도 신헌과 윤자승에게 향후 6개월 이내에 사신을 파견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260) ≪日省錄≫고종 13년 2월 6일.田保橋潔, 앞의 책, 상, 558쪽. 이러한 일본정부의...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 申櫶·副摠管尹滋承, 各遵所奉諭旨, 議立條款, 開列于左. 第1款 朝鮮國自主之邦, 保有與日本國平等之權, 嗣後兩國欲表和親之實, 須以彼此同等之禮相待, 不可毫有侵越猜嫌, 宜先將從前爲交情阻塞之患諸例規,...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2) 조미조약의 성립과 속방조회
- 국왕이 신헌을 접견대관에 내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국왕이 신헌의 직함을 밝히지 않은 채 인천으로 보내어 협상을 담당케 하고, 김홍집을 그 부관, 徐相雨(1831∼?)를 從事官에 差下하는(3월 24일) 기이한 발령을...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 초기 개화정책의 추진배경과 그 성격
- 파견하였다. 강화도조약 체결 후 전권대신 신헌의 보고에 대해 고종은 다음과 같이 당면한 개혁정책의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신헌이 아뢰기를 ‘저들이 말하기를 지금 천하의 각국이 군사를 쓰는 때를 당하여 귀국...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