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협회를 중심으로 나라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
고종은 그 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여 자주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