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상고사(上古史) - 제1편 부여족(扶餘族)의 창립과 한족(漢族)의 침입 시대

제3장 위유(衛劉)의 일침(佚侵)

위만(衛滿)이 기준(箕準)을 내쫓고,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고 요하(遼河)의 남쪽 수천 리 땅을 차지하였다. 그의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 지나(支那) 한(漢)나라의 요동 도위(遼東都尉) 섭하(涉何)를 공격하여 죽이자 한나라 무제(武帝) 유철(劉徹)이 그 장수 양복(楊僕)과 순체(荀彘)를 시켜 5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게 하니, 우거가 한나라 군대에 맞서서 여러 차례 그들을 격파하였다. 이에 한나라가 제남 태수(濟南太守) 공손수(公孫遂)를 보내 군사를 더욱 많이 징발하여 매우 은밀하게 공격해 오니, 우거의 신하인 상참(相參)이 그의 군주 우거를 암살하고 마침내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위씨의 왕업을 이은 햇수는 87년이었다.

한나라가 그 땅을 나누어 4개의 군[四郡]을 설치하였으나, 후에 고구려(高句麗)에 의해 축출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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