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317년
무자(戊子) 34년이다.
전(前) 예조 판서 김창협(金昌協)이 죽었다. 김창협은 자(字)는 중화(仲和)이고, 호(號)는 농암(農巖)으로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일찍이 지위가 높고 명성이 있었으나 집안이 화를 당한 이후 은거하여 학문에만 힘썼다. 누차 정경(正卿)과 문형(文衡)의 벼슬을 올려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58세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무자(戊子) 34년이다.
전(前) 예조 판서 김창협(金昌協)이 죽었다. 김창협은 자(字)는 중화(仲和)이고, 호(號)는 농암(農巖)으로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일찍이 지위가 높고 명성이 있었으나 집안이 화를 당한 이후 은거하여 학문에만 힘썼다. 누차 정경(正卿)과 문형(文衡)의 벼슬을 올려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58세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