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본조기(本朝紀)폐왕(廢王) 연산군(燕山君)

기원후 107년 무오 [연산군 4년]

이미 죽은 판서 김종직(金宗直)을 추죄(追罪)하여 부관 참시하였다. 헌납(獻納) 김일손(金馹孫)을 죽이고, 전 좌랑(佐郞) 김굉필(金宏弼) 등을 장형(杖刑)한 후에 유배하였다. 처음 김일손이 역사를 편수하면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기록하였다. 이극돈(李克墩)이 역사를 편수하면서 김일손이 쓴 글을 보고 유자광(柳子光)에게 말하였다. 유자광은 평소 김종직을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말하기를, “그 글이 광묘(光廟)1)를 나무라고 배척하였다.”라고 하고, 마침내 사옥(史獄)을 일으켰다. 연산군이 죽은 김종직을 추죄하여 부관 참시하였다. 김일손과 김굉필 등은 모두 김종직의 문도(門徒)로서 화를 당하니, 일시에 명현(名賢)들이 죽거나 유배되어 거의 없었다.

○ 12월에 대왕대비 한씨(韓氏) 【예종의 왕비】 가 승하하였다. 【창릉(昌陵)에 부장(附葬)하였다.】

1)광릉(光陵)으로 곧 세조(世祖)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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