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동국역사 권1(삼국기(三國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임진(壬辰) [32년]

【신라 유리왕 8년 ○ 고구려 대무신왕 14년 ○ 백제 다루왕 4년 ○ 동한 광무제 건무 8년 ○ 일황 수인 61년 ○ 서력 기원 32년】

여름 4월에 고구려(高句麗)가 낙랑(樂浪)을 습격하여 항복을 받아 냈다. 이에 앞서 왕자 호동(好童)이 남옥저(南沃沮)를 돌아다닐 때에 낙랑 왕 최리(崔理)가 호동을 아껴 말하기를, “그대의 외모를 보니 일반 사람이 아닌 듯하다.”고 하며 드디어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다. 그때에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어서 만약 적병이 있으면 저절로 울렸다. 호동이 장차 돌아올 때에 그 부인에게 몰래 이야기하기를, “당신이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을 찢고 파괴하면 내가 당신을 예(禮)를 다해 맞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부인이 곧 무기고에 있는 북의 한 면과 나팔의 입구를 찢고 파괴하여 호동에게 보답하였다. 호동이 돌아와서 왕에게 낙랑을 습격할 것을 권하였다. 최리가 북과 나팔이 울리지 않은 것을 보고 대비하지 않았다. 고구려 병사가 성 아래에 몰래 이르니 그제야 비로소 북과 나팔이 모두 파괴되었음을 알고 결국 그 딸을 죽이고 나아가 항복하였다.

○ 11월에 고구려 왕자 호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동이 용모가 매우 아름답고 왕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이에 이르러서 왕의 원비(元妃)가 적통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참소(讒訴)하여 말하기를, “호동이 저에게 무례하게 굴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었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권하여 솔직하게 아뢰라고 하였으나 호동이 말하기를, “이것은 모친의 악함을 드러내어 부친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다.”라 하고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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